교회에 출석하는 성도들에게 “당신이 믿는 신조가 무엇인가?” 라고 물으면 대개 “개혁주의” 라고 대답한다. 그러나 그렇게 말하는 그들의 신앙자세나 생활태도를 보면 전혀 개혁주의 와는 다르다. 거짓말을 한 것이다. 개혁주의 신앙은 날마다 성경에 가깝게 개혁해 나가자는 것인데 개혁주의 신앙을 좋아하고 신봉한다면서 생활이 정반대가 되면 그것은 두 가지 중 한가지이다.
첫째는 개혁주의가 좋다는 말은 들었으므로 자신의 신앙을 위장하려는 술책이고 다른 하나는 개혁주의를 도무지 모르기 때문이다. 개혁주의 신앙을 신봉하는 사람은 개혁주의 신앙고백서를 받아 들인다. 개혁주의 신앙고백서가 많이 있지만 그중에서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가 제일 세련되어 있다. 그래서 오늘은 1643-47에 영국에서 제정된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의 첫 부분인 제1장을 같이 공부하고자 한다. 목적은 개혁주의 신앙의 성경관을 정립하기 위함이다. 부디 다음 글을 읽고 다시 읽으면서 개혁주의 성경관을 정립하기 바란다.
제1장은 <Of the Holy scripture> 즉 <성경에 관하여> 라는 제목이 붙어 있고 모두 10절로 되어 있는데 지금부터 한절씩 원문을 읽고 해설을 가하고자 한다. 처음에는 신앙고백서의 내용을 그대로 인용했고, 그 다음엔 그 조항을 설명하는 형식을 취했다.
제 1절:
“자연의 빛과 또 창조의 섭리가 하나님의 선과 지혜와 권능을 나나태어 사람이 핑계할 수 없게 하나 그것들이 구원에 필요한 하나님과 그의 뜻에 관한 지식을 충분이 나타내지는 못한다. 그러므로 주님은 여러 때에 여러 방식으로 교회에 대하여 자신을 계시하시며 자기의 뜻을 선언하셨다. 그리고 후에는 진리를 더 잘 보존하시고 전파하시며, 또 육체의 부패와 사단과 세상의 악에 대항하여 교회를 더 견고하게 설립하고 위안하시기 위하여 그 동일한 진리를 전부 기록에 맡기시기를 기뻐하셨다. 이것이 성경을 가장 필요로 한 원인이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그의 백성에게 그의 뜻을 계시하신 옛 방법이 지금은 그쳤다.”
여기서 가르치는 교훈:
1. 세상에 하나님을 알만한 것이 하나님의 자연 계시로 나타나 있지만 그것만 가지고는 하나님의 뜻, 구원의 도리를 알 수 없기 때문에 하나님은 특별계시로 하나님의 말씀이 성경을 주셨다는 말이다. 계시 중에는 일반계시로 특별계시가 있는데 일반 계시는 자연을 통해서 하나님이 자신을 나타내신 방법이다. 길가에 아름다운 꽃이 피어 있다. 밤 하늘에 수많은 별들이 반짝인다. 태양계의 그 많은 혹성들이 서로 떨어지지 않고 서로 끌면서 자신을 유지해 나간다. 이 모든 것을 보고 이런 것들은 우연히 되어 진 것이 아니고 반드시 그 뒤에는 이 모든 것을 만드시고 운행해 가는 어떤 절대자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로마인서 1:19 을 읽어 보라. 그 절대자란 바로 천지 우주 만물을 창조하신 하나님 바로 그분이다. 그러나 이것만 가지고는 하나님의 성품이나, 하나님이 원하시는 하나님의 뜻, 구원의 계획 등에 대해서는 알 길이 없다. 길가에 피어 있는 코스모스가 하나님이 인간을 구원하시는 방법을 말해 주지 않는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우리에게 구원의 도리를 알게 하는 특별계시를 주셨다.
2. 두 번째로 배울 수 있는 교훈은 하나님의 특별계시인 성경을 기록하기 위하여 옛적에 하나님의 백성에게 주었던 여러 가지 방법 즉, 꿈, 환상, 방언(외국어) 등의 방법이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 제1장 해설, p.2 of ) 성경완성과 함께 끝났다는 말이다. 하나님은 그의 말씀을 주시기 위하여 여러 가지 방법을 동원했는데 꿈, 환상 천사의 방문 등 초자연적인 방법을 동원해서 성경을 기록하게 만들었으나 이제 하나님의 말씀이 완성된 후로는 그런 방법으로 역사하지 않는 다는 말이고 옛날과 같은 방법은 그쳤다는 말이다. 개혁주의는 <계시의 종결>을 믿는다. 순복음은 <계시의 계속>을 믿는다. 그래서 성경은 맨 끝 책인 요한계시록의 맨 마지막 장인 22장의 끝부분인 18-19절에서 “누구든지 이 예언의 말씀에 더 보태지도 더 감하지도 말라”고 엄히 경고하는 것이며 또한 히브리서 1:1에서도 이제 이런 방법들이 그쳤음으로 가르쳐 준다.
[출처]
「성경에 관하여」,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 제1장 해설 - 김명도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