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중심
개혁 전통은 인본주의가 아니라 신본주의다. 그러므로 인간이 중심이 아니라 하나님이 처음과 마지막이며 우리 삶의 중심이다. 그리고 하나님만이 마지막에 영광을 받으신다. 일반적으로 하나님의 주권, 하나님 영광, 하나님의 주권사상의 논리적 귀결인 예정론과 동일시될 정도로 하나님 중심적 사상과 삶이 강조되었다. ‘개혁주의 정신의 기본은 경건한 삶에서 출발하기 때문에 개혁주의자들의 삶의 목표는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살아가는 것 (Soli Deo Gloria) (고전10:31;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1:1)이 되고, 이들의 삶의 자세는 하나님 앞에서 살아가는 삶의 모습(Coram Deo)으로 나타난다. 따라서 이렇게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나님 앞에서 살아가는 개혁주의자들은 그들이 어디에 있던지 복음의 전파와, 복음 위에 선 기독교문화 건설에 힘쓰는 것이다. 하나님 중심의 개혁교회 전통의 특성과 그 의미하는 바와 그것이 어떻게 우리 선교지에 적용되어야 할지 살펴보자.
우리는 성도들이 하나님 중심의 삶을 살아야 한다고 당연히 생각할 수 있지만, 우리와 신학적으로 반대 위치에 놓인 원죄를 부인한 펠라기안주의와 이와 유사한 신념을 가진 알미니안주의를 대조해 보면 하나님중심 사상이 모든 교회 전통이 아니라는 것을 금세 눈치 챌 수 있다. 개혁교회 교인들은 나의 회심, 나의 신앙, 나의 선한 삶에 신앙의 무게추를 두지 않고, 하나님의 선하심, 하나님의 은총 그리고 하나님의 주권적 의지가 나의 구원의 근본이라는 믿는다. 푸르만의 말처럼 칼빈의 진정한 유산은 모든 것(인간, 그리스도, 믿음, 세계, 성경, 삶)을 인간의 관점이 아니라 하나님의 관점에서 보려고 한 방법이다. 고려파 교회의 예배는 하나님만을 높이는 하나님 중심의 예배였는데 언제부터인가 예배가 인간의 마음을 위로하고 인간에게 해답을 주는 식의 예배로 바뀐 것을 우리는 감지하고 있다. 큐티의 목적부터 시작해서 교회 생활의 전반적인 프로그램이 사람 중심으로 바뀌어 간다는 것을 또한 쉽게 감지할 수 있다. 하나님 중심의 삶은 인간이 어디로부터 와서 어디로 가야 하는지를 알려주는 인생의 가장 중요한 질문에 대한 답이며, 만물과 생명의 주인이 있음을 고백케 하며 그리고 하나님께서 우리 인생의 주인 되심을 고백케 하는 것이다. 이는 우리의 힘으로 인생을 사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우리 삶을 설계하시고 책임 있게 인도해 가신다는 확신으로 인도한다. 이런 전통은 선교지에서 삶의 존재 이유와 목적을 개인에게 극대화한 다원주의 시대에 자기중심적으로 살아가는 대부분의 이교도들에게 전혀 다른 삶의 방식, 하나님 중심의 삶이 있다는 것을 보여줄 수 있다. 신 중심의 삶이 생활화 되어있는 극단적 이슬람권이나 힌두권에서는 하나님 중심의 삶이 이미 그들의 일상이기 때문에 큰 영향력을 기대 할 수 없겠지만, 불교권이나 다원주의의 영향 아래 놓여 있는 대부분의 선교지에서 하나님 중심의 삶의 심오한 비밀을 선교사의 삶을 통해 보여준다면 선교에 큰 도전을 줄 수 있을 것이다.
16세기 상황에서 하나님 중심의 신앙고백은 교황 중심의 로마교에 반대하는 것이었다. 개혁교회는 창조주 하나님과 인간을 엄격히 구별하며, 인간을 특수한 위치에 두는 신학을 용납하지 않는다. 이런 의미에서 원주민에 비해 비교적 우월한 위치에 설 수밖에 없는 선교사 개개인은 더욱 더 성육신 하신 예수님의 모습을 배워 낮은 자리에 처하는 리더십을 보여주어야 한다. 한국교회에 만연한 교권주의를 경험한 선교사들은 선교지에서 완전교회를 만들어 갈 때 교권주의의 빠지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 고신 선교사들은 1951년 총회에서 신사참배를 했던 교권주의자들에 의해 장로교 총회에서 퇴출당한 경험을 되새기며, 교권주의를 선교지에 뿌리내리지 않도록 해야 한다.
하나님의 주권과 예정론은 인간의 구원이 전적으로 하나님의 손에 달려있다는 고백이다. 이것은 하나님의 창조와 사랑 그리고 인간의 전적 타락에 대한 창세기의 고백으로 시작한다. 언약사상은 인간의 구원을 위한 중추적인 역할을 하며, 이 개혁교회 전통은 인간의 의지는 자유롭지 않으며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주어진 구속에 있어서 능동적 주도권을 쥘 수 없다고 고백하게 한다. 자유주의 신학과 구별되는 이 개혁전통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통해서 얻어지는 구속의 은혜에 대한 인격적인 고백과 삶의 전반에 걸친 변화를 선교지에서도 기대하게 만든다. 고려파 교회는 ‘예수가 주’라는 고백을 위해 신사참배를 거부한 고백교회의 전통을 가지고 있다.
하나님 주권 사상은 ‘우리가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에 대한 윤리적인 답을 준다. 칼빈은 그의 유명한 윤리 명제인 ‘하나님 앞에서’(Coram Deo)에서 이 사실을 말한다. 윤리적으로 부패한 로마교 성직자들과 교인들에 대해서 루터는 윤리적인 부분에서 철저한 개혁을 실천하지는 못했다. 반면 칼빈은 제네바 개혁에서 보여주었듯이 성도의 보다 철저한 윤리적인 삶을 요구했다. 그에게 있어서 권징은 교회의 참된 표지로 여겨질 정도로 개혁교회 전통은 철저히 개인의 삶과 사회 윤리에 관여한다. 초기 내한 선교사들 또한 구한말의 비윤리적인 사회상을 성경적으로 바로잡고자 노력했다. 개혁교회의 선교사들은 바른 치리의 행사를 통해 성도들의 개인 윤리가 하나님 앞에서 부끄러움이 없도록 지도해야 할 직무를 가진다.
권효상 목사
KPM 연구국장, 고려신학대학원 선교학 겸임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