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편에 이어서 교제치 말아여 할 대상들과 교제를 끊어야 할 이유들:
성경이 성도들에게 위의 네 부류의 사람들과 교제를 끊으라고 가르치는 이유들은 무엇인가?
교회의 본질 때문에
성경적 분리의 첫번째 이유는 교회의 본질 때문이다. 교회는 근본적으로 구원 받은 성도들의 모임이며, 참된 성도라면 성경적 교리를 믿고 성경적 교훈에 순종할 것이 기대된다. 그러므로 교회의 이러한 본질적 성격에 배치되는 요소들, 곧 불신앙, 이단들, 회개치 않는 죄들, 고의적 불순종 등은 교회에서 마땅히 배격되고 제거되어야 한다.
예를 들어, 오늘날 자유주의자들이나 자유주의 교회들과의 연합 전도 활동이 겉보기에 큰 결실이 있는 것 같으나, 성경이 그러한 잘못된 교제를 금하기 때문에 우리는 어떤 구실도 용납하지 말고 그런 활동을 반대하고 배격해야 한다. 우리의 일차적 관심은 주의 명령에 대한 순종에 있다. 기독교는 물량주의, 숫자주의, 실용주의가 아니고 오직 하나님께 순종하는 성경주의, 진리주의이다.
교회의 순결성 때문에
성경적 분리의 두 번째 이유는 교회의 순결성 때문이다. 교회는 거룩하며 또한 거룩해야 한다. 이것은 교리적으로 뿐만 아니라 또한 윤리적으로도 그러해야 한다. 에베소서 5:26, 27, "이는 곧 물로 씻어 말씀으로 깨끗하게 하사 거룩하게 하시고 자기 앞에 영광스러운 교회로 세우사 티나 주름잡힌 것이나 이런 것들이 없이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려 하심이니라." 비록 지상에 완전한 교회가 없겠지만, 우리는 순결한 교회, 흠 없는 교회를 건립하기 위해 최선을 다해야 한다. 그러므로 우리는 뻔뻔스런 불신앙이나 고의적 불순종을 교회 안에 용납해서는 안된다.
악의 전염성 때문에
성경적 분리의 세 번째 이유는 악의 전염성 때문이다. 교리적 오류이든지 윤리적 오류이든지 간에, 죄악은 누룩처럼 교회 안에 나쁜 영향을 끼친다. 그러므로 악의 전염성 때문에 교회는 악을 제거하고 악과의 교제를 단절하는 것이 필요한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교회는 곧 부패되고 속화될 것이다. 고린도전서 5:6, "너희의 자랑하는 것이 옳지 아니하도다. 적은 누룩이 온 덩어리에 퍼지는 것을 알지 못하느냐?" 갈라디아서 5:9, "적은 누룩이 온 덩이에 퍼지느니라." 디모데후서 2:17, "저희 말은 독한 창질의 썩어져감과 같은데."
하나님의 명예 때문에
성경적 분리의 네 번째 이유는 하나님의 명예 때문이다. 교회가 윤리적 죄악을 포용하면, 세상이 교회를 비난할 뿐만 아니라, 또한 하나님과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도 비난하고 조롱할 것이다. 그러므로 교회는 하나님의 명예를 위해서도 그 성결성을 유지해야 한다. 로마서 2:24, "기록된 바와 같이 하나님의 이름이 너희로 인하여 이방인 중에서 모독을 받는도다."
교제를 끊는 방법들
성경은 성도들에게 어떤 방법으로 교제를 끊으라고 가르치는가?
오류는 지적되어야
우선, 교회 지도자들의 잘못된 교훈과 입장과 활동들은 지적되고 비평되어야 한다. 어떤 이들은 말하기를, '교훈들을 비평하고, 교훈하는 자들을 비평하지는 말라'고 하지만, 교훈과 교훈하는 자는 분리되기 어렵다. 밴가드(Vanguard) 1999년 6월호는 다음과 같이 적절히 말했다:
첫째로, 사람들의 이름들을 드는 것은 성경적이다. 바울은 긍정적으로 활동들을 추천하기 위해 사람의 이름을 들었고(고전 16장; 빌 2:25; 골 4장), 부정적으로 활동들을 경고하기 위해서도 그렇게 하였다(딤전 1장, '후메내오와 알렉산더'; 딤후 2장, '후메내오와 빌레도'; 딤후 4장, '알렉산더'). 요한도 또한 구체적으로 사람의 이름을 들었다(요삼 9, 10, '디오드레베').
둘째로, 만일 우리가 사람들을 긍정적으로 칭찬하기를 기뻐한다면(예를 들어, 루터와 스펄전과 웨슬리의 전기들), 부정적으로 사람들의 이름들을 드는 것은 논리일관한 일이다. 하나님을 대적하는 도구가 되는 사람들에 대해 분명하게 말하는 것은 똑같이 정당하다. 더구나 우리가 글을 쓸 때, 우리는 사람들로 하여금 그들을 미워하라고 사람들의 이름을 밝히는 것이 아니고 그들을 조심하라고 하는 것이다(딤후 4:15).
셋째로, 사람들의 이름들을 드는 것은 실제적인 문제이다. 슬프게도, 사람들은 흔히 설교들보다 설교자들을 따른다. 그러므로 그러한 사람들에게 경고하기 위해, 우리는 사람들의 이름들을 들어야 한다.
넷째로, 사람들의 이름들을 드는 것은 역사적인 후원이 있는 일이다. 교회 역사를 통해 볼 때, 사람들은 그들이 반대하는 내용에 대해서 뿐만 아니라 반대하는 인물에 대해서도 분명하게 진술하기를 겁내지 않았다. 그러나 우리 시대에는, 사람들의 감정을 상하게 하지 않는 것이 사랑 안에서 진실을 말하는 것보다 흔히 더 중요한 것처럼 보인다.
교회적 교제를 단절해야
성경이 가르치는 분리는 일차적으로 교회적 교제의 단절을 의미한다. 그러므로 교회 안에 교제를 끊어야 할 대상자들이 있을 경우, 성도들은 성경이 가르친 대로 그리고 교회 헌법의 권징의 규칙을 따라 권계(勸戒, 권면과 충고), 수찬 정지(受餐停止, 성찬식에서 제외함), 제명 출교의 절차를 행해야 할 것이다(마 18:15-17).
비록 예수 그리스도께서 하나님과 사람들간의 막힌 담 뿐만 아니라 또한 인간들 상호간의 막힌 담도 허물어 뜨리신 위대한 화해자이시지만, 비록 그들 중 어떤 이들이 우리와 똑같이 주의 피로 구속받은 자들 곧 우리의 진정한 형제들이요 자매들이겠지만, 비록 우리가 그들 중 어떤 이들과 함께 천국에 들어갈지도 모르지만, 성경적 분리는 성경적 원리요 성경적 교훈이다.
불신앙, 이단들, 회개치 않는 악들, 고의적 불순종들에 대한 적절한 권징과 교제의 단절은 성경에 밝히 계시된 하나님의 뜻이요 명령이다. 고린도전서 5:11-13, "[이런 자와는] 사귀지도 말고 . . . 함께 먹지도 말라 . . . 이 악한 사람은 너희 중에서 내어 쫓으라." 데살로니가후서 3:14, "그 사람을 지목하여 사귀지 말고 저로 하여금 부끄럽게 하라." 그러므로 성경적 교회는 합법적인 권징과 교제의 단절을 성실히 실행해야 한다.
특히, 교회는 성경의 근본 교리들을 부정하는 자유주의 신학자들이나 목사들을 용납해서는 안된다. 그들은 마땅히 출교되어야 할 이단자들이다. 그러므로 교회가 교단의 신학교를 위해 교수를 청빙할 때 신학교 이사들은 먼저 청빙할 교수들의 신학 사상이 건전한 지를 신중하게 심사해야 한다.
또한 성경적 교회들은 자유주의 교회들이나 포용주의적 교회들과 교제하지 말아야 한다. 오늘날 기독교계는 대 교단들이 자유주의화 된 상황이므로, 소위 세계교회협의회(WCC)와 각 나라의 교회협의회(NCC)들은 잘못된 단체들이다. 그러므로 성경적 교회들은 이러한 단체들과 관련된 활동들을 반대해야 하고 거기에 참여치 말아야 한다.
특히, 빌리 그레이엄의 전도 활동과 같이 자유주의자들이나 자유주의 교회들과 협력하는 전도 활동은 명백히 비성경적이고 인본주의적이므로 우리는 그러한 활동을 인정하지 말고 또 거기에 참여하거나 그것을 후원하지도 말아야 한다.
또한, 자유주의와 보수주의를 망라한 초교파적 연합 집회들, 예를 들어 부활절 연합예배, 연합 성찬식, 그리고 성서공회, 기독교 방송국, 찬송가공회 등의 연합 활동들도 옳지 않다. 성경의 기본적 교리들을 믿는 교회들간의 초교파적 연합 활동들은 가능하고 또 필요하지만, 보수적 교회들과 자유적 교회들간의 연합 활동은 명백히 비성경적이다.
김효성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