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복주의, 율법주의, 방종주의와 더불어 한국교회를 어지럽히고 있는 다른 복음은 신비주의이다. 신비주의란 사도들이 증거했던 본래의 복음, 즉 예수 그리스도의 인격과 그분의 십자가와 부활의 복음보다, 초자연적이고 신비로운 현상에 주의를 집중하면서 신앙과 생활의 본질과 중심이 신비로운 현상의 나타남과 그로 인한 엑스터시(황홀한 기쁨과 쾌락)의 체험에 있다고 믿는 잘못된 신앙 양태이다. 그런 의미에서 신비주의는 일종의 종교적 쾌락주의라 정의내릴 수 있다.
극단적으로 종교적 쾌락을 좇는 신비주의자들은 대부분 삶에 있어 현실감각이 떨어지고, 현실에서 오는 도전과 고난, 고통, 고단함, 스트레스, 절망, 인간관계의 어려움 등에 대해 극단적으로 예민한 반응을 보인다. 그 결과 대체로 현실세계를 무시하거나 도피하려는 부정적·비관적·염세적 세계관을 지니고 살아간다.
신비주의자들의 세상 부정적 영성은 건강한 상식과 합리적인 판단력, 풍성한 신앙적 감성과 일상생활의 지혜를 무시하도록 이끌기 때문에, 윤리적 방종과 무책임을 부채질할 수 있다. 또 타인과의 건강하고 인격적인 상호관계를 정립하고 유지하는 것을 힘들어하고, 공동체의 책임있는 일원으로 살아가는 가치와 중요성을 바르게 인식하지 못하게 된다. 그 결과 극단적 개인주의 또는 고립주의에 빠져 우울하고 균형을 상실한 신앙생활을 초래할 수 있다.
오늘날 한국교회 내에서 신비주의적 신앙 양태를 부채질하고 있는 주된 세력은 소위 성령운동을 강조하는 극단적 오순절주의자들이나 은사주의자들이다. 이외에도 소위 신사도운동을 주도하는 자들 역시 신비주의적 신앙 양태를 부추기면서, 온건하고 균형잡힌 오순절주의자들과 은사주의자들에게도 경계의 대상이 되고 있다. 통칭해서 이런 극단주의자들에게서 나타나는 공통적인 현상은 성령 하나님에 대한 심각한 오해와 그 오해에 기초한 잘못된 신앙 양태들이다.
극단적인 신비주의자들은 성령의 인격성을 무시하고, 성령을 단순히 비인격적인 능력이나 힘이나 기(氣), 에너지나 영향력으로 이해한다. 그래서 언제든지 자신들의 뜻에 따라 이 비인격적인 능력과 힘과 에너지인 성령을 자기 멋대로 부릴 수 있다고 믿고 있다. 그래서 자신들이 언제 어디서든 성령을 불러 내리면 성령이 자신들의 말에 순종하여 그곳에 임한다고 믿으며, 성령을 조종해 자신들의 이기적인 목적을 달성할 수 있다고 믿고 또 그렇게 방자하게 행한다. 한 마디로 말해 성령을 자신의 종들 부리듯 부릴 수 있다고 믿고 있다.
문제는 이런 극단적인 신비주의자들이 성령집회나 은사집회 또는 신유집회라는 이름으로 아직 영적으로 미숙한 성도들을 심각하게 오도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어떤 집회에서는 이빨이 금니로 바뀌는 현상이 나타난다고 하여 수많은 사람들이 그런 신비한(어쩌면 매우 조야한) 현상들을 정신없이 좇게 만들고 있다. 어떤 집회에서는 신유를 강조하면서 실제 의학적인 판단으로는 치유되지 않았는데도 치유되었다는 거짓 증언을 하는 일들이 비일비재하다. 어떤 집회에서는 무분별하게 예언의 은사를 강조하면서, 예언 은사 학교를 만들어 예언의 은사를 훈련하는 자들도 나타나고 있다. 더욱 심각한 것은 마치 무속인들이 점집을 차려놓고 미래 일을 예언하고 재물을 탈취하는 현상과 비슷하게 소위 "예수 무당, 예수 점쟁이"들이 나타나 신비주의적 현상에 매료된 성도들을 심각하게 오도하는 점이다.
또 어떤 집회에서는 방언을 연습시키는 일들이 자행되고 있다. 방언의 은사가 성령께서 당신의 주권적인 뜻을 따라 당신이 선택한 사람들에게 주시는 것이 분명하다면, 연습을 통해 받을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은사라는 말 자체가 연습이라는 말과는 정면으로 배치되는 말임에도, 오늘날 수많은 사람들이 방언의 은사를 받기 위해 연습을 하는 해괴한 일들이 대낮에 버젓이 자행되고 있다. 이런 자들이 한국교회 내에서 큰 세력을 형성하고, 수많은 사람들에게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기 시작한지 이미 꽤 오래 됐다는 사실은 한국교회가 처한 위기 상황이 얼마나 심각한가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그렇다면 왜 한국교회의 지도자들과 성도들은 공히 신비주의적 신앙 양태에 쉽게 빠져드는 것일까? 여러 가지로 원인을 분석할 수 있겠지만, 무엇보다 한국인에게 뿌리박힌 무속적 종교성이 대표적 원인 중 하나임은 분명해 보인다. 무속종교 자체가 어떤 신적 존재(성경적으로 볼 때에는 귀신)를 불러 내리는 강신술과, 이 신적 존재가 행한다고 생각하는 신비로운 일들을 강조한다는 것은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이런 무속주의적 사고와 행태가 한국교회 안에 몰래 들어와 뿌리 내리면서 한국 기독교를 뿌리에서부터 부패시켜, 기독교의 정체성 자체를 혼란스럽게 하고, 한국의 기독교를 혼합적이고 이교적인 종교로 변질시켜가고 있는 것이다.
바로 이런 상황에서 한국교회가 새롭게 갱신되고 개혁되기 위해서는 한국교회 안에 들어와 있는 무속주의적, 이교주의적, 신비주의적 요소를 정확하게 분별해 내는 작업이 우선되어야 한다. 다시 말하면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에 뿌리 박힌 건강한 영적 분별력을 기르는 일에 있어서 성숙을 이루어야 한다. 그리고 나서 정확한 영적 분별력에 기초해서 잘못된 생각들과 관행들을 교회 내에서 몰아내는 구체적인 과업을 적극적으로 수행해야 한다. 이 일에는 신학자와 목회자의 구별이 있을 수 없고, 지도자와 피지도자의 구별이 무의미하다.
한국교회를 사랑하고, 한국교회의 미래를 염려하는 모든 진실된 그리스도인들은 이제 더 이상 개인적인 신앙생활에 머물러 있지 말고, 한국교회 내에 몰래 들어와서 엄청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는 신비주의적·무속주의적 신앙 양태를 과감하게 몰아내야 한다. 이런 거룩한 운동이 이 점진적으로, 그리고 참되게 열매를 맺어갈 때에야 비로소 한국교회는 새롭게 갱신되고 회복되는 복을 누릴 수 있게 될 것이다.
기독 일보/정성욱 교수(덴버신학대학원 조직신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