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면 성경을 어떻게 해석하는가?
우선 알아야 할 것은 성경은 하나님이 바로 그 저자이시고 디모데후서 3:16절 말씀대로 하나님이 “입김을 불어넣어서” 기록했지만 그 기록은 인간의 언어로 기록되었다는 점이다. 옛날 독일의 신학자였던 Richard Rothe 라는 사람은 성경의 언어는 이상하여 어느 헬라의 학자의 언어와도 다른 이상한 말이라고 해서 이 세상 어떤 사람도 알 수 없는 “하나님만 아는 말” 이라고 주장한 적이 있는데 그런 것이 아니고 성경의 언어는 인간의 언어 좀 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구약은 당시 히브리인들의 모국어인 히브리어로 대부분 기록되었고 극히 적은 부분이 아람어(Aramaic)로 기록되었고 신약의 경우는 모두 헬라어로 기록되었는데 헬라어는 크게 고전적 헬라어와 평민의 헬라어로 나누어진다. Classic Greek 이 있고 Hellenistic Greek 혹은 Koine Greek 이란 헬라어가 있다.
성경의 언어가 인간이 알아듣지 못하는 그런 언어가 아니고 기원 1세기 신약성경이 기록될 당시 일반이 가장 널리 사용하고 있던 평민의 헬라어라는 점을 말씀드렸지만 그렇다면 성경을 기록함에 있어서 기록방법은 어떠했을까? 성경기록자들은 누가를 제외하고는 무두 유대인들이다
그러므로 유대인들의 언어습관, 언어 어법과 유대인들의 관습, 속담, 유대인들이 사고방식 등이 성경에 그대로 나타난다. 이것을 무시하면 성경해석상에 이상한 문제가 발생한다. 예를 들면 로마인서 12장20절에 “원수가 주리거든 먹이고 목마르거든 마시우게 하라 그리하므로 그의 머리에 산 숯불을 얹으리라” 라는 말이 있는데 이를 문자 그대로 해석해서는 큰 일 날 것이다. 어떻게 산 사람의 머리 위에 산 숯불을 얹을 수 있단 말인가? 이것은 유대인의 관습에서 해석되어야 한다. 우리나라 속담에 “미운 놈 떡 한 개 더 주어라” 라는 말이 있듯, 유대나라에도 속담이 있다. “나를 괴롭히고 핍박하는 사람들을 후히 대하라” 라는 내용을 유대인들은 “저 사람 머리위에 산 숯불을 얹어 주어라” 라는 식으로 표현한다.
또한 마태복음 24:28절에 “주검이 있는 곳에는 독수리 떼가 모일지니라” 란 말도 별 신학적 의미가 있는 것이 아니다. 우리말에 “바늘 가는 곳에 실 간다” 란 말이 있다. 같은 말이다. 언어에는 수사학이 있으며 영상법도 있고 상징적 표현도 있다. 가령 예를 들어서 직유법과 은유법, 영상법을 보면 이런 것들이 있다. <불꽃 같은 눈동자로>, <병아리 나래 아래 품듯> , 이런 말들이 직유법이고 은유법은 누가복음 13:32에 나타난 ‘여우“ 처럼 또는 요한복음 1:29에 보면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 이라고 했는데 ”양“ 은 은유법으로 예수를 가리키는 말이다.
또 성경에는 다른 문학서적 처럼 영상법을 통해서 말씀하기도 한다. 이것은 특히 묵시 문학(Apocalyptic Literature)에 많이 나온다. 가령 바다에서 올라오는 <머리가 일곱이요 뿌리가 열인 짐승> 같은 것은 사탄이 악함을 나타내 주는 영상표현법이다 (계 13:1). 144,000 같은 숫자는 문자 그대로의 수가 아니라 상징적인 숫자 로 <구원 얻은 자 전체>를 말함이다. 그러므로 성경을 해석할 때 이런 일들을 문자 그대로 해석하면 이상한 결론에 도달한다. <붉은말> 은 쏘련이고 <흰말> 은 미국이라고 해석 하는 따위는 성경해석을 그르치는 좋은 예이다. 성경에는 성경해석의 원칙이 있다. 성경해석의 원칙을 따르지 아니하면 다른 복음을 따르는 결과가 된다.
성경이 왜 헬라어로 기록되었을까? 헬라어로 신약성경이 기록된 이유는 모든 언어 중에서 헬라어는 가장 문법이 정확하고 바른 뜻을 정확히 전달할 수 있기 때문이다. 가령 엡 2:8에 <우리가 믿음을 통해서 은혜로 구원을 얻었나니> 라는 대목에서 <구원을 얻었나니> 라는 말은 <완료형 남성 주격 북수 분사> 로 사용되었으니 한번 구원을 얻으면 구원을 잃지 않는다는 성경의 교리가 입증된다. 또한 요한일서 3:9에서 “하나님께로 난자마다 죄를 짓지 아니 하나니” 란 대목에서 <죄를 짓지 아니 한다> 는 말은 <직설법 현재 삼인칭 단수 동사> 이므로 <하나님에게로 난자는 상습적으로 계속해서 고의적으로 죄를 짓지 않는다> 는 문법적 설명을 통해서 거듭난 사람은 죄를 함부로 짓지 않는다는 교리가 입증된다.
종교개혁 이후의 성경해석 방법은 <Historico-Grammatico-Theological Interpretation> 즉 <역사적, 문법적 신학적 해석>이다. 성경구절을 해석할 때, 항상 이 세 가지에 초점을 맞추어야 한다.
옛날 Alexandria 에 Origen 이라는 헬라의 영지주의 철학에 물든 이단 신학자가 있었다 그는 성경의 모든 구절은 4가지의 의미가 있다고 주장했는데 그 네 가지란 <문자적 의미>, <도덕적 의미>. <풍자적 의미>, 그리고 <신학적 의미> 등이다 이것을 Origen 의 <사중해석법 (Origen's Quadruple Interpretation of the scripture)> 라고 한다.
예를 들면 그는 누가복음 10장에 나오는 선한 사마리아인의 구절을 이렇게 해석했다. <거기에 나오는 예루살렘은 교회이고 여리고는 세상이고 강도만난 사람은 교회에서 타락하여 세상으로 나가니 강도를 만났다. 강도는 마귀이다. 레위사람이나 제사장이 지나갔다 구약을 말한다. 구약으로도 그를 돕지 못했다. 사마리아 사람이 지나가다가 그를 돌보아 준다. 사마리아 사람은 바로 예수이다. 사마리아 사람이 그 당시 가장 천대시 받듯 예수님은 당시 모든 사람에게서 천대를 받았던 인물이다. 기름을 발라주었다. 예수님이 은혜를 베풀었다. 주막으로 데리고 갔다 주막은 술집, 그 술은 포도주, 포도주를 파는 곳은 교회, 그러므로 예수님은 그를 교회로 인도했다. 그리고 돈 두 입을 주면서 다시 올 때 까지 잘 보아 달라고 했다. 돈 두입은 구약과 신약이다. 주님이 재림할 때까지 교회가 잘 돌보아 줄 것을 당부했다> 라고 그럴듯하게 해석했다.
이렇게 해석하면서 Origen의 문자적 해석은 문자 그대로 어떤 사람이 예루살렘을 떠나 여리고로 내려가다가 강도를 만났다는 것이고, 도덕적 해석은 불쌍한 사람을 도와야 한다는 것이고 퐁자적 해석은 방금 위에서 말한 대로이고, 신학적 해석은 그리스도가 우리의 구원자 라는 것이다. 이런 방법으로 지금도 소위 영해 (靈解) 라는 것을 좋아 하는 분들이 많이 있다. 성경의 구절은 한 가지 뜻 만 가능하다는 것을 알자. 이렇게도 저렇게도 해석 할 수 없다는 것이다. 한 가지 이상 이렇게도 저렇게도 해석하면 그것은 이미 성경해석상에 문제가 있다는 것을 말한다.
성경 해석시 문자적으로 해석할 것이 있고, 상징적으로 해석할 구절이 있다. 일률적으로 모든 성경구절을 문자적으로만 해석할 수 없다. 가령 요한복음 2:19-20을 어떻게 해석하는가? 문자 그대로 46년간 걸려서 지은 성전을 사흘 만에 주님이 재건하신다는 말인가? 아니다. 그 뒤에 계속해서 읽어보면 주님은 그의 몸을 가르켜 하신 말씀임이 들어난다.
몸이 죽어도 삼일 만에 부활한다는 뜻이다. 요한계시록 11장의 <1260일이니 42달이나 한때와 두 때 반> 이니 하는 말은 모두 상징적이며 문자 그대로 해석해서는 안 된다. 요한계시록의 경우는 단 9:27절과 반드시 병행해서 해석해야 한다. 요한계시록 20장1-7절 사이에 6 번 나오는 <천년> 이라는 말은 문자적인가 아니면 상징적인가? 문자적이라면 성경이 기록된지 벌써 1,000년이 넘었으니 문자적이 아님을 금시 알 수 있다. 상징적이다. 우리는 이 숫자가 상징적인 것을 한다. <말세> 란 히브리 1:1이나 베드로전서 1:5이나 1:20등을 통해서 예수님의 초림부터 재림까지의 기간이 말세임을 안다. 그러므로 계시록 20장의 천년은 <문자적 천년>이 아니고<주님 재림 때까지 전 기간을 통한 기간>을 나타내는 상징적 숫자임을 알 수 있다.
성경 해석 시에 가장 오류를 범하기 쉬운 것은 성경의 문맥을 무시하고 선입견을 가지고 혹은 임의로 해석하는 방법이다. 가령 마가복음 3:29에 “성령을 훼방하는 자는 금세와 내세에 영영 구원이 없다“ 는 말에서 ”성령을 훼방한다“는 말이 무슨 말인가? 목사들, 특히 부흥사들 중에서 이 구절을 오해하는 분들이 예상외로 많다. 심지어 성령을 훼방하는 죄는 방언 못하는 죄라고 가르치는 목사도 있다. 성경을 해석하는 기본 지식이 없는 사람이다. 문제의 성경구절에서 앞뒤의 문맥 (context)을 읽어보면 예수님이 기적을 행하신 일을 지켜보고 있던 사람들이 “예수님이 행하신 기적은 본인이 하신 것이 아니고 귀신의 왕 바알세불(사탄의 이름중 하나) 의 힘을 빌려서 행한 것이라고 비난했다. 이때 주님께서 29절 말씀을 하신 것이다. 이 해석을 믿기 어려우면 성경 마가복음 3장29절 그 다음절인 30절을 보면 의미가 의심의 여지없이 아주 분명해 진다. ”이는 저희가 말하기를 저가 더러운 귀신이 들였다 함이라“ 라고 스스로 설명해 주고 있지 않은가? 이와같이 문맥을 통해서 성경을 해석하라. 성경에 지금 내가 연구하는 구절이 왜 기록되었는지 앞뒤를 읽으면서 문맥을 잡아라.
이와 같이 성경은 항상 문맥을 통해서 해석해야 한다. “문맥을 보지 않고 해석하면 궤변이 된다” 는 말이다. 얼마나 많은 설교자가 문맥을 무시하고 스스로 억지로 풀다가 이상한 교리를 만들어 내는가 우리들 주위에서 사이비 목사들을 보라, 바른 성경해석으로 바른 복음을 전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