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서 성경해석 원칙은 <역사적 문법적, 신학적 방법>을 사용한다고 말했다. 이것은 아주 중요한 종교개혁의 성경해석 방법이다. 어떤 성경구절을 해석할 때 우선 역사적인 배경을 공부해야 한다. 어떤 시대적, 정치적, 종교적 배경 속에서 이 성경구절이 기록되었는가를 본다.
가령 마가복음은 어떤 문화적 정치적 환경 속에서 기록되었는가? 하박국은 어떤 역사적 배경에서 기록되었는가? 등을 연구한다. 마가는 로마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기 위하여 기록되었는데 예수님의 섬기는 종 됨을 기록하면서 가장 간결하고 명료한 문체로 기록되었다는 것을 안다. 학개서는 유대인들이 포로생활에서 돌아와서 성전 수축을 등한히 하고 개인의 가옥 수리만 열중인 유대백성에게 하나님은 학개 선지를 통해서 성전 수축을 명하는 배경이고 하박국은 하나님을 모르는 나라는 잘 되어 가는데 하나님의 백성은 왜 고통을 당해야 하는가? 그런 시대적 배경 속에서 선지자 하박국이 <결국은 아무리 핍박을 받고 어려움을 당해도 의인은 믿음으로 살고 구원의 하나님으로 인하여 감사 한다> 는 내용을 알아 두어야 한다.
역사적 배경을 알게 되면 다음은 골치 아픈(?) 문법적인 면을 해석해야 하는데 이것은 일반 평신도로서는 어렵다. 이유는 원어를 모르기 때문이다. 원어를 아는 사람만이 할 수 있는 작업이다. 일반 성도도 열심만 있다면 집에서 능히 헬라어를 자습할 수 있다. Princeton 신학교 신약학 교수였던 J. Gresham Machen 박사가 쓴 신약헬라어 입문 같은 문법책을 사서 스스로 매일 아침 조금씩 헬라어를 터득해 갈 수 있다. 구약의 히브리어도 공부해야 하지만 히브리어는 그 언어의 체계가 헬라어와는 전혀 다른 어족(語族) 인 <셈어족, Semitic Language> 에 속하여 일반 평신도가 공부하기는 심히 어려울 것이고 헬라어만 공부해 두어도 구약은 구약을 헬라어로 번역해 둔 칠십인역(七十人譯)이라는 책이 있으니 그 LXX (칠십인 역 성경을 나타내는 기호) 를 헬라어로 읽으면 헬라어만 알아도 신학 공부를 엉터리로 마친 웬만한 목사 보다 더 성경을 제대로 해석할 수 있다.
문법적인 해석의 좋은 예는 요한복음 3:16이다. 많은 분들이 “그를 믿으면” 이라고 해석하지만 문법적으로 그것은 그릇된 해석이다. 원문은 <믿고 있는 모든 사람> 은 즉 <everyone believing in Him> 의 의미이다. 요한일서 3:9에서도 "하나님께로서 난자는 죄를 짓지 아니 하나니" 에서 <죄를 도모지 짓지 않는다> 라는 말이 아니다. <죄를 상습적으로 짓지 아니한다> 는 의미이니 헬라어의 문법에서 <직설법 현재 형으로 부정문> 이니 <상습적으로 무엇을 계속 하지 않는다> 는 말이 된다. 엡 2:8에서도 “구원을 얻었나니” 에서도 <완료형 분사> 이므로 <한번 구원을 얻으면 영원토록 변치 않는다> 는 뜻이 헬라어의 완료형 의 성격에서 입증된다.
신학적 해석은 그 성경구절의 앞뒤를 보아서 신학적으로 이 말이 무슨 교리를 가르치는가 를 연구한다. 가령 요 3:16을 보면 처음에 “사랑하사” 라는 말이 먼저 나온다 그러므로 우리를 구원하시는 구속에서 <사랑>의 개념이 앞선다는 것을 안다. 그 다음 부분은 <주사 ,아들을> 이렇게 시작된다. 그러므로 <그 구속은 아들 예수에 의해서 이루어짐>을 안다. 성경의 다른 곳을 통해서 우리가 배우는 것은 믿음이란 우리가 스스로 믿게 되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의 선물인 것을 안다( 엡 2:8) 고로 <그런 믿음을 가지고 있는 사람은 누구나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누린다> 는 내용이니 <그리스도의 구속의 가장 기본 교리> 를 터득할 수 있다.
이제 중요한 부분을 말하고 저 한다. 성경을 해석할때 주의할 것 몇 가지가 있다.
첫째는 <특별은사 혹은 임시 은사> 이다. 이런 은사는 성경기록이 완성 될 때까지 하나님이 여러 가지 방법으로 역사하셨다. 히브리 1;1 이나 WCF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 1:1에 보면 이런 방법이 성경완성과 함께 지금은 끝났다고 가르쳐 준다. 이것을 <계시의 종결> 이라고 한다. 개혁주의는 계시의 종결을 믿는다. 지금은 하나님이 옛날 성경기록 당시처럼 그렇게 초자연적인 방법으로 역사하지 않으시고 기록된 말씀만 가지고 역사하신다는 것이 개혁주의 신앙의 골자 이다.
둘째로, 성경에 나오는 <이적> <기사> 를 모방해서는 안 된다. 사람들은 성경기록과정에서 일어나는 모든 초자연적 이적이나 기사를 모방하려한다. 가령 죽은 사람을 장사하지 않고 3개월 동안 놓아두고 살아나기를 기다리면서 계속 기도한다든지 병든 자를 고치기위해서 약을 쓰거나 병원에 가지 않고 기도만 한다든지 하는 일은 성경해석의 원칙을 모르는 사람들이 하는 일이다. “예수님이 하셨으니 나도 할 수 있고 내가 해야 한다“라는 말은 위험한 발상이다. 가령 예수를 모방한다면서 채찍에 노끈을 매어 잘 못 하는 교회에 들어가서 사람들을 마구 내 보내고 강대상을 뒤집어 엎을 수 없다. 주님이 그렇게 했다고 해서 우리가 그렇게 할 수는 없다. 흔히 이런 말을 한다. <예수님이라면 어떻게 했을까?> 라고 하지만 그것은 잘못 된 질문이다. 예수는 조물주인 하나님이시고 우리는 피조물이다. 그가 하는 일을 우리가 모두 할 수는 없다. 예수님의 기적과 이적은 항상 구원과 관계가 있다. 구원의 성질을 우리에게 가르쳐 주려는 목적이 있다. 오히려 이렇게 묻는 것이 당연하다 “예수님은 우리에게 어떻게 하기를 원하실까? ” 라고.
셋째로, 성경해석은 어디까지나 <성경을 성경으로 푸는 것 scripture is interpreted by scripture> 이며 <환상>이나 <계시> 이나 <경험>에 의존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오늘 너무 많은 사람들이 이런 오류에 빠지고 있다. 성경구절의 의미는 처음에서 끝까지 성경자체에서 그 바른 의미를 찾아야 한다. 모든 성경이 모두 일률적으로 뜻이 명확하지 않다
잘 이해하기 어려운 어두운 부분은 밝은 구절 즉 확실히 알 수 있는 구절에 비추어서 해석한다. 이것이 성경해석의 방법이다.
성경해석이나 신앙생활에서 인간의 경험은 가장 위험하다. 경험은 사람마다 각자 다르다. 누구의 경험이 옳은가? 성경해석은 경험이나 계시에 의존해서는 절대 안 되며 성경에서 답을 찾고 성경은 성경으로 풀어야 한다는 것을 잊지 말자. 부디 우리 모두 바른 성경해석으로 바른 말씀을 전하여 이 다음 그리스도 앞에 설때에 다른 복음을 전했다고 책망을 받지 않도록 주의 하자.
(고) Dr. 김명도 교수, Tyndale International University 초대 학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