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שָׁלוֹם עֲלֵיכֶ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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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22-07-01 07:40
신학의 성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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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글쓴이 : puffy
조회 : 1,263  

신학을 성경에 계시된 하나님의 진리들에 대한 체계적 지식이라고 정의할 때, 우리는 신학의 몇 가지 성격을 생각할 수 있다.

첫째로, 신학은 성경적이다. 하나님의 진리들은 성경에 계시되어 있고 성경 안에만 명확히 계시되어 있다. 그러므로 신학은 성경에서, 오직 성경에서만 나와야 한다. 성경 밖의 자료들은 성경의 진리들을 확증하는 보조물에 불과해야 한다. 신학은 성경적이어야 한다. 성경적 신학만 참된 신학이다. 성경을 떠나서 하나님과 그의 뜻을 논하는 모든 개념들과 사상들은 바른 신학이 될 수 없고 여러 가지 오류들에 떨어질 수밖에 없다.

그러므로 신학의 자료가 되는 성경을 믿지 않는 자유주의 신학은 그 시작부터 잘못이었고 그 결론도 잘못될 수밖에 없다. 그것은 결코 기독교 신학이 될 수 없다. 성경이 파괴되는 곳에서 신학을 논할 수 없고, 성경 없이 논의되는 신학은 기독교 신학이 될 수 없다. 더욱이, 자유주의 신학은 성경적 신학을 추구하는 대신 신학의 문화적 성격을 강조한다. 그러나 교회가 진리를 표현할 때 어떤 시대의 철학적 용어들을 사용할 수 있을지라도 그러한 용어들은 표현 형식에 불과하고 그 내용에 관한 것은 아니다. 신학은 순전히 성경의 계시 진리들을 체계화하는 것이어야 하며, 어느 시대, 어느 문화의 사상을 혼합한 것이 되어서는 안 된다. 만일 어떤 이의 신학사상이든지 비성경적 요소가 섞여 있다면, 우리는 그것을 비평하고 그 비성경적 요소들을 배제하여 순수한 성경적 신학을 정립해야 할 것이다.

둘째로, 신학은 교회적이다. 하나님의 진리는, 비록 처음에 개인이 깨닫고 믿고 고백하기 시작했을지라도, 곧 하나님의 백성들이 공동적으로 믿고 고백하는 진리가 된다. 교회는 하나님의 진리들을 선언하고 체계적으로 말할 권세를 주께로부터 받았다. 교회는 ‘진리의 기둥과 터[지주(支柱)]’이다(딤전 3:15). 교회의 교훈적 권세는 어느 시대까지의 교회나 교회 회의에 국한된 것이 아니고, 모든 시대의 모든 교회와 모든 교회 회의들이 가지는 권세이다. 그러므로 신학은 개인의 견해에 그쳐서는 안되며 교회의 공동적 신앙고백이어야 한다.

신학의 교회적 성격은 그것의 공동적 신앙고백의 측면에서뿐 아니라, 역사적 측면에서도 그러하다. 모든 시대의 교회들은 신학적 활동에 많은 힘을 기울여 왔다. 오늘 우리가 가진 신앙고백들은 전시대의 신앙의 선조들의 기도와 수고의 결실이며, 우리는 그 배후에 성령의 섭리적 지도와 도우심이 있었음을 의심할 수 없다. 그러므로 우리는 교회의 역사적 신조들과 신앙고백들을 중요하게 여겨야 한다.

이처럼 신학은 교회적 성격을 가지며, 따라서 바른 신학의 정립과 충실한 전달은 교회에 주어진 가장 중요한 임무 중의 하나이다. 특히 신학들이 난립하여 성경적인 신학을 알 수 없고, 성경적 믿음과 확신이 없고 신실함과 충성심이 없어 보이는 현시대에, 바른 신학의 정립과 전달은 더욱 절실한 시대적 과제이다.

셋째로, 신학은 권위적이다. 신학이 성경적이라면, 그것은 또 권위적이다. 교회는 성경을 신적 권위로 인쳐진 하나님의 말씀으로 믿고 따른다. 성경의 신적 권위는 성경의 모든 진리들의 신적 권위를 의미한다. 그러므로 성경의 진리들을 체계적으로 정돈한 신학도 당연히 신적 권위를 가질 것이다. 만일 신학이 성경의 진리들을 바르고 충실하게 제시하고 진술한다면, 그 신학은 성경과 같이 신적 권위를 가질 것이다. 성경말씀이 신적 권위를 가지듯이, 성경적 신학은 신적 권위를 가질 것이라는 말이다.

물론 우리는 오직 성경만 최종적인 권위를 가짐을 믿는다. 우리는 신학이 성경과 달리 오류에 떨어질 가능성이 있음을 인정하며, 또한 오류에 떨어진 부분들은 언제든지 성경에 의해 교정될 수 있고 교정되어야 함을 믿는다. 오직 성경만 교회의 오류 없는 최종적 권위이다. 그러나 신학이 성경에 충실하고 그 진리를 바르게 제시하고 진술하는 한, 교회는 성경을 신적 권위의 말씀으로 존중하듯이, 그 성경적 신학도 신적 권위의 진술들로 존중해야 할 것이다.

넷째로, 신학은 불변적이다. 하나님의 모든 진리는 예수 그리스도와 사도들을 통해 충분히 계시되었다. 비록 사람의 이해의 부족 때문에 또 표현의 부족 때문에 그 모든 내용은 점진적으로 이해되고 표현된 점이 있다. 그것이 신학의 발전이라면 발전이다. 그렇지만 그것은 하나님의 계시 진리의 수정이나 첨가가 아니고, 단지 그 진리의 원만한 이해와 표현이었다. 주후 2세기에는 기독교의 변증 문제가 주로 논의되었고, 3세기와 4세기에는 하나님에 대한 교리가 주로 논의되었다. 5세기에는 사람에 대한 교리와 예수 그리스도에 관한 교리가 주로 논의되었고, 16세기 종교개혁 때에는 구원에 대한 교리와 교회에 대한 교리가 논의되었고, 근래에는 종말의 문제가 많이 논의되었다. 또 오늘날에는 자유주의 신학과 에큐메니칼 운동과 은사주의로 인해 교회에 대한 교리와 성령에 대한 교리가 많이 논의되고 있다. 또 하나님의 진리들의 정돈 방식도 발전하여 칼빈의 기독교강요보다 핫지의 조직신학은 더 정리되어 있고, 그것보다 벌코프의 조직신학이나 박형룡의 교의신학은 더 정리되어 있다고 보인다.

그러나 신학의 기본 내용에 관한 한, 그것이 신적 권위를 가진 한, 그것은 또한 불변적 성격을 가질 수밖에 없다. 성경의 내용이 변할 수 없듯이, 성경 진리들의 체계적 지식인 신학의 기본 내용은 변할 수 없다. 따라서 우리는 21세기에도 초대교회의 사도신경과 니케야-콘스탄티노플 신경과 칼케톤 신경을 믿고 고백하며, 17세기의 정통 신앙고백들, 예를 들어 벨직 신앙고백, 하이델베르그 요리문답, 도르트 신경,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과 대소요리문답을 성경 진리의 바른 증거로 믿고 고백하며 사랑한다. 또 우리는 오늘날에 죤 칼빈과 촬스 핫지 등의 정통적 개혁신학자들의 책들과 글들을 사랑한다.

그러므로 신학이 시대마다 변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자유주의적 개념은 매우 잘못된 것이다. 왜냐하면 신학의 근본적 내용의 불변성을 부정하는 것은 성경 진리들의 불변성을 부정하는 것과 같은 것이기 때문이다. 그것은 실로 이단적이다.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이 불변적이듯이, 성경적 신학은 그 기본 내용에 있어서 불변적이어야 한다. 시대는 변해도, 신앙의 내용은 변하지 않는다. 진리의 정돈 방식, 즉 신학 진술 방식은 변할 수 있어도, 그 근본 내용들은 변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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