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학은 왜 필요한가? 첫째로, 신학은 사람에게 있는 체계적 지식에 대한 기본적 욕구 때문에 필요하다. 지식의 체계화는 사람의 기본적 욕구이며, 진리의 지식에 대해서는 더욱 그러하다. 우리는 성경의 단편적 지식이나 하나님의 진리들의 단편적 지식뿐 아니라 성경 전체에 대해 또 하나님의 모든 진리들에 대해 체계적이게 알기를 원한다. 신학은 성경에 계시된 하나님의 진리들의 체계적 지식을 추구하기 때문에, 그것은 모든 진지한 성도들의 그 욕구에 충족이 될 것이다. 반틸은 “성경의 내용을 연구하여 체계적으로 정리하는 것은 하나님께서 주신 우리의 의무이다”라고 말했다.
둘째로, 신학은 하나님의 진리들의 효과적 전달을 위해 필요하다.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자들에게 전도할 때나 처음 믿는 자들을 가르칠 때, 우리는 먼저 하나님의 진리들을 체계적으로 이해하고 있어야 그것들을 효과적으로 전달할 수 있다. 하나님의 진리들은 논리정연하다. 그것들은 앞뒤가 모순되지 않는다. 하나님께서는 혼동의 하나님이 아니고 질서의 하나님이시다(고전 14:33). 논리정연하게 제시된 설교나 강의는 더욱 힘있고 효과적일 것이나, 혼란한 개념이나 모순된 논리는 그것의 능력을 감소시킬 것이다. 하나님께서 비록 단순히 사람의 논리로만 일하시는 것은 아니지만 사람의 논리에 맞지 않게 일하신다고 생각해서도 안 된다. 건전한 설교와 교훈은 반드시 건전한 논리를 가지고 있어야 한다. 훌륭한 설교자 촬스 스펄젼은 말하기를, “대 신학자들이 있기 전에는 대 전도자들이 결코 있지 못할 것이다. . . . 천박한 학생들 중에서 영혼을 움직이는 대 전도자들이 나오지 못할 것이다”라고 했다.
셋째로, 신학은 교회의 사상적 일체성을 위하여 필요하다. 교회의 하나 됨은 외적인 조직이 하나이기 전에 먼저 영적이며 교리적이다. 교회는 공통적 기독교 신앙 위에 한 몸을 이룬다. 정통신앙을 가진 자와 이단자가 하나가 될 수 없다. 사도 바울은 “다 같은 말을 하라”고 권면하였고(고전 1:10), 또 “믿음은 하나이요”라고 말했다(엡 4:5). 디도서 1:4에 언급된 ‘같은 믿음’(코이네 피스티스, common faith)은 모든 그리스도인들의 연합의 기초이다.
비록 신학들의 불완전함과 상호 차이가 교파 형성의 주요 원인이 되었지만, 참된 신학은 교회의 일체성의 방해물이 아니고 오히려 그 매개물이요 접착물이다. 사실, 사상적인 일치가 없는 조직체적 일치는 공허하며 위선적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진지한 성경 연구를 통해 신학적 일치를 추구해야 한다. 사도신경, 니케야-콘스탄티노플 신경,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과 같은 교회의 공적 신앙고백과, 핫지, 벌코프, 박형룡 등의 조직신학들은 교회의 일체성의 표시요 증거이다.
넷째로, 신학은 이단들을 배격하고 하나님의 진리들을 수호하기 위해 필요하다. 사실, 이 점은 역사상 신학 정립과 발전에 매우 중요하였다. 이단들은 성경의 일부분을 부정하거나 잘못 해석함으로써 생기는 경우가 많았다. 이단이 성경을 완전히 저버리는 경우는 쉽게 식별할 수 있겠지만, 성경을 가지고 잘못 해석하여 강조하거나 적용할 때 그들을 막아내기란 쉽지 않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모든 진리들에 대한 체계적인 바른 지식을 가지고 있지 않다면, 이단들의 교묘한 오류를 분별하고 폭로하고 배격하기 어려울 것이다. 이단들의 도전 앞에서, 교회는 진리들의 부분적 지식이 아닌, 전체적 체계적 지식을 필요로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목사들뿐 아니라, 일반 성도들도 체계적 성경 공부와 교리 공부, 즉 신학 공부가 필요한 것이다.
김효성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