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책 “복음을 부끄러워하는 교회” (Ashamed of the Gospel) 초판이 서점에서 막 판매되기 시작될 무렵인 1993년도까지 인터넷을 가장 일찍 접해 본 사람들을 제외하고는 아무도 웹(the Web)을 구경하기는 고사하고 들어본 적도 없었다. 대부분 사람은 웹이 오늘날 우리가 알고 있듯이 세상을 그렇게 갑자기, 획기적으로 변화시켜 놓으리라고는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
어느 날 나는 우리 교회의 미래 사역을 계획하고 의논하는 회의에서, 월드 와이드 웹이 앞으로 우리의 라디오 방송과 설교 테이프를 통한 사역을 확장하는데 있어서 결국 주된 매체의 역할을 하게 될 것이라는 말을 들었다. (그 당시에는 라디오와 카세트테이프가 우리가 사용하던 유일한 오디오 매체였다). 그때 나는 그건 좀 지나친 과장이라고 생각했다. “차 안에서 인터넷에 접속할 수는 없죠. 설령 접속할 수 있다고 해도, 누가 차에 컴퓨터를 들고 타려고 하겠어요. 차 안과 같이 좁은 공간에서는 누구나 카세트테이프가 훨씬 편리하다고 느낄 거예요.”라고 나는 그들의 오류를 지적했다.
기술에 관한한 나는 명백히 문외한이었다.
세상이 새로운 미디어 기술을 따라 잡는 속도는 실로 상상하기 어려울 정도였다. 인터넷 커뮤니케이션의 편의성과 속도는 우리 삶의 거의 모든 영역을 바꾸어 놓았다. 수많은 정보(틀린 정보를 포함하여)에 손쉽게 접근하는 인터넷은 사람들이 생각하고, 배우고, 의사 결정을 내리는 방식을 이전과 완전히 다르게 변모시켰다. 누구든지 큰 비용을 들이지 않고 블로그를 개설할 수 있고, 컴퓨터(혹은 스마트폰)와 인터넷만 연결되어 있으면 순식간에 자기 생각을 전 세계에 알릴 수 있다. 청중을 모으는 데 능숙한 사람들은 수많은 팔로워(follower)들을 거느리고 있으며, 그들이 이렇게 자신의 의견을 전파하는 데 있어 반드시 특정한 지위와 자격을 갖출 필요도 없다.
다양한 의견과 수많은 정보가 온라인상에서 짧은 시간 안에 전 세계에 회자 된다는 사실은, 즉흥적인 생각을 전달하는 언어들이 세심한 연구를 거쳐 나온 논문들보다 훨씬 더 큰 영향력을 미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사실, 오늘날은 무엇이 진실이냐 거짓이냐 하는 문제보다 자신의 의견을 교환하는 방식이 더 중요하게 여겨지는 것 같다.
대부분 사람은 본능적으로 사려 깊게 쓰인 글보다 간결하고 재치 있는 농담성의 논평을 더 좋아하는 경향이 있다. 그래서 거의 모든 경우에 형식이 내용보다 우선순위를 차지한다.
텔레비전 방송의 사회자들도 토론 참가자를 손님으로 공개토론회에 초청해 놓고, 자신들이 원하는 대로 프로그램을 진행하기 위해 그들의 식견을 다 들어 보기도 전에 시청자들이 어떻게 생각하든 말든 중간에 말을 끊는다. 그들에게 중요한 것은 본질이 아니라 프로그램 자체이다. 단순히 시청률을 높이는 일이 진실을 더 널리 전하는 유일한 방법이라고 믿는다. (오늘날 수많은 교회가 가진 생각도 이와 크게 다르지 않다).
사람들이 주목하는 시간은 점점 짧아지고 있고, 그에 따라 읽고 쓰는 능력은 현저히 저하되고 있으며, 논리적인 글들은 불필요하게 상세하다는 이유로 흔히 외면을 당한다. 웹은 어떻게 “느끼느냐”라는 문제가 어떻게 “생각하느냐”라는 문제보다 중요하게 여김을 받는 오늘날의 문화에 더 잘 맞는다. 인터넷 사이트 운영자들은 각자의 의견을 교환하는 수많은 토론방을 개설하는데, 때로 이런 공간이 폭언과 악성 댓글이 넘쳐 나는 싸움터로 오용되는 경우가 많다. 또한, 인터넷 토론장은 사용자들이 그들 자신의 정신을 지배하고 있는 신성 모독과 적의를 표출하는 부정적인 통로로 사용되기도 한다. 만일 당신이 인간의 타락성에 대한 풍부한 예를 보여주는 명백한 증거를 보기를 원한다면, 신학적인 논쟁을 벌이는데 몰입해 있는 사이트들을 포함하여, 무절제하게 자신들의 생각을 쏟아 내는 인터넷 토론장을 한번 들어가 살펴보라.
인터넷은, 이 모든 역기능에도 불구하고 포스트모더니즘이 번성할 수 있는 이상적인 환경을 만들어 준 것이 아니라, 더욱 정확히 표현하자면, 바로 이러한 역기능들 “때문에” 포스트모더니즘이 더 활개 치고 번성하게 된 것이라고 말 할 수 있다.
존 멕아더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