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도의 순종에는 두 가지가 있습니다.
능동적인 순종 즉 Active Obedience와 수동적인 순종 즉 Passive Obedience 입니다.
능동적인 순종이란 그가 그의 백성이 지키지 못하는 율법을 모두 지키신 순종을 말하고, 수동적인 순종이란 죄의 댓가는 죽음인고로 인간의 형상을 입고 오셔서 모든 고난을 몸소 친히 자원하여 당하시며 십가가에 죽어 주신 순종입니다. 이와 같은 순종이 우리를 구원으로 인도하는 칭의의 길을 열어 주신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3중직 중 “제사장직분” 만 강조하지만 그에게는 세 가지 직분이 있는데 제사장 직분 말고도, 선지자의 직분과 왕의 직분이 있습니다. 이것 또한 지켜야 합니다.
그리스도의 선지자의 직분은 말씀과 성령을 통해서 죄인을 구원하심이며 우리의 선지자의 직분은 성경말씀을 사모하고 말씀을 전하고 말씀을 지키는 일이요, 그리스도의 왕의 직분은 그가 우리를 다스리고 온 세상을 통치하는 것이며, 우리의 왕의 직분은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피조물을 다스리며 주님의 뜻을 이 땅에 이룩해 드리는 일이며, 예수님의 제사장의 직분은 그의 지상사역에서는 십자가를 지시고 골고다의 언덕에서 택한 자의 죄를 위해서 우리를 대속하고저 운명하시고 부활 승천했지만 지금은 승천하여 하늘에서 통치하시며 지금의 그의 제사장의 직분은 우리 성도들을 위해서 기도하시는 일인데 우리들 성도의 제사장의 직분은 나의 죄를 인하여 하나님에게 회개의 기도하며 이웃을 위해서 하나님에게 기도하는 것입니다. 제자상이란 백성을 대표하고 선지자는 하나님을 대표합니다.
이와 같이 주님의 3가지 직분과 우리의 3가지 직분이 있습니다.
개혁주의자들은 성경대로 믿고, 성경대로 그리스도에게 순종하면서 살아갑니다. 생활에 성경을 적용하는 실신한 생활은 모든 개혁주의의 시금석 (試金石, testing stone) 이 됩니다. 그를 왕으로 모시고 절대 순종하는 일입니다. 놀랍게도 오늘은 예수님의 선지자 직분과 왕의 직분은 무시해 버립니다. 선지자 직분을 무시 한다는 말은 그의 말씀을 훼파한다는 말이고 왕의 직분을 무시한다는 말은 주님의 뜻대로 살기를 기피하고 자기의 편한 대로 신앙생활하며 하나님의 뜻대로 살자면 말도 되지 않는 <율법주의자> 라고 매도하는 풍토로 변해 버렸습니다.
칭의를 얻으면, 다음에는 양자의 단계입니다.
하나님은 그의 백성을 불러 주시고 중생시키고, 의롭다고 인정하신 다음에는 양자로 삼아 주십니다. 이제 우리는 마귀의 자녀로부터 하나님의 자녀로 신분이 변해 지는 것입니다.
양자의 개념에서 오해가 있을 수 있습니다. 예수님이 성부를 “아버지“ 라고 부르는 것과 우리 서도가 하나님을 ”아버지“ 라고 부르는 차이가 있는가? 하는 문제인데. 물론 차이가 있습니다.
예수님이 성부를 아버지라고 부르는 것은 양자로서가 아닌 성 삼위일체의 제2위로서 부르시는 말이요, 우리가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르는 것은 죄인이며 하나님의 원수이던 우리가 하나님에게 입양되어 영의 아버지로 부르는 것 뿐입니다. 본문 로마서 8장에서 “아바” 란 말은 아람어 (Aramaic) 이지만 가장 친근감 있게 부르는 어법입니다. 우리는 이제 하나님의 집에 입양되어 하나님의 아들과 함께 후사가 되는 특권을 누리고 있습니다.
양자에게는 사랑이 있습니다. 사랑하는 자에게는 가끔 징계가 있습니다. 그래서 히브리 12장 8절 이하에 <사랑의 징계>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징계가 없으면 사생자요 참 아들이 아니라> 고 하였습니다. <징계가 비록 그 당시에는 즐거워 보이지 않아도 이로 인하여 연단한 자에게는 의의 평강한 열매를 맺는다> 고 하였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아들과 딸이 된 사람은 가끔 하나님의 <사랑의 매> 를 맞게 되지만 그 모든 것은 우리의 유익을 위함입니다.
양자가 되면 하나님은 그 사람을 그냥 내어 버리지 않고, 눈동자처럼 사랑하여 길러 주십니다. 이것을 성화라고 합니다. 부르심에서 중생, 칭의, 양자 등은 모두 일시적으로 일어나는 현상이지만 성화는 독특하게 오래 지속하는 하나님의 사역입니다. 어린애가 출생하면 자라듯, 믿는 성도도 처음 예수를 믿고 중생하여 회심하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면 성장하여야 하는데 그 성장 과정을 성화라고 합니다. 어떤 분은 성장과정이 빨라서 믿은 지 얼마 되지 않았는데 벌써 신앙이 많이 성장한 것을 봅니다.
그런가하면 어떤 이들은 오래 믿었는데도 신앙이 별로 성장하지 못하는 이들이 있습니다. 모두 성장의 속도는 다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의 자녀들이 신앙이 성장하도록 원하십니다.
그런데 어떤 이들은 이 세상에서 우리의 성화가 끝난다고 가르치는 분들이 있습니다. 아르미니안 주의 사람들입니다. 이 들은 말하기를 우리가 이 세상에서 어느 시점에 다달으면 죄를 짓지 않게 되는 완전한 시점에 도달하게 된다고 가르칩니다. 이런 사람들을 완전주의자 (Perfectionists) 라고 합니다. 그러나 인간은 이 세상에서 완전에 이를 수는 없습니다. 아무리 우리의 성화가 극에 달한다고 해도 이 세상에서는 죄를 안 지을 만큼 거룩해 질수는 없다는 것이 성경적인 가르침입니다. 아브라함도, 모세도, 다윗도, 엘리야도 바울도 모두 죄를 지었습니다 <세상에 죄를 짓지 않는 사람은 없다>고 전도서 7:20에 말하며, 요한일서 1:10에 보면, <만일 우리가 범죄 하지 아니하였다 하면, 하나님을 거짓말 하는 자로 만드는 것이니 또한 그의 말씀이 우리 속에 있지 아니하니라> 라고 말씀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인간은 이 세상에서는 죄를 짓지 아니할 수 없습니다. 이유는 우리는 아직도 육신을 쓰고 있기 때문입니다. 예수를 믿을 때, 중생할 때, 우리 영혼은 거듭납니다 이것을 다른 말로는 롬 8:5에서 영혼이 부활했다고 합니다. 그러나 우리 육신은 아직 부활하지 못했습니다. 우리 육신이 부활하는 것은 주님이 재림할 때에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이 땅의 교회를 <전투적인 교회 Church Militant> 라고 합니다. 그 이유는 우리가 마귀와도 싸우고 우리 자신과도 싸우기 때문입니다. 이 땅에서는 싸움이 늘 지속됩니다. 그래서 이 땅의 성도를 전투적인 교회라고 하는 것입니다. 반대로 하늘에 올라가면 그곳의 교회를 승리의 교회 (Church Triumphant) 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곳에 올라가기 까지는 싸움은 계속됩니다.
그래서 <험하고 높은 이 길을 싸우면 나아가게> 되는 것입니다. 이 싸움에서 승리하는 길은 오직 말씀의 능력에 의지하는 길 뿐입니다. 그러므로 성경공부가 필요하고 효과적인 성경공부를 위해서는 뭐니 뭐니 해도 요리문답서 (웨스트민스터 요리문답서, 혹은 하이델베르크 요리문답서)를 철저하게 공부하는 것이 제일 좋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