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 사이트는 [회원가입]을 하신 후에 내용들을 보실 수가 있습니다. 

회원가입 후, 하루 정도 기다리시면 정식회원으로 등록해 드리며 모든 내용을 다 보실 수 있습니다. 

사역의 특성상, 불가피한 절차임을 이해 바랍니다. 

자세한 사항은 drcharleshong@gmail.com 으로 문의 바랍니다.

오늘도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가 충만하시기를  기도 드립니다. 

Shalom aleikhem !

שָׁלוֹם עֲלֵיכֶם


 auto
 
작성일 : 22-04-21 20:31
세족식 어떻게 보아야 하나?
인쇄
 글쓴이 : 창암
조회 : 1,402  

교파와 교단을 불문하고 직원 임직식을 할 때 임직하는 직원의 발을 씻어주는 의식인 세족식(洗足式)을 하는 교회를 종종 볼 수 있다. 선배 직분자들이 임직하는 후배들의 발을 씻어주는 장면은 교회에서 직원이 군림하는 자가 아니라 섬기는 자임을 이제 갓 임직하는 후배들에게 가장 웅변적으로 보여주는 모습이라 할 수 있다. 장로 임직식에서 담임목사가 직접 장로 임직자의 발을 씻는 장면은 진짜 감동적이다. 목사와 장로 사이에 갈등이 많은 이때 이는 우리 모두의 마음에 큰 감동을 준다.

이러한 세족식은 본래 고난 주간 목요일, 최후의 만찬에서 성찬을 제정하신 그날 예수님께서 한 명 한 명 제자들의 발을 씻으신 것에서 유래되었다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이 세족식이 교회를 넘어 사회의 일반 기관에서도 널리 사용되고 있다. 어느 보훈단체에서 국가유공자들의 발을 씻어주는 기사를 본 적이 있다. 국가를 위해 헌신한 유공자들의 발을 씻는 의식을 통해 작으나마 그들을 위로하려고 했을 것이다. 특히 학교에서 스승의 은혜를 기리고 감사하는 스승의 날에 학생이 스승의 발을 씻는 것이 아니라 스승이 학생의 발을 씻어주는 모습은 스승이 이런 분임을 학생들에게 감동적으로 보여주었다.

이같이 사회에서도 널리 감동적으로 통용되는 세족식, 이 세족식을 교회에서 임직식이나 혹은 주일의 특별한 행사에서, 아니 심지어 성찬과 함께 사용하는 것을 어떻게 봐야 할까? 이 세족식이라는 의식은 과연 예수님이 우리가 그대로 따라 하도록 본을 보여주신 행동일까?

16세기 종교개혁 시대에 재세례파라는 무리가 있었는데 이들 가운데 일부는 유아세례를 거부하거나 인정하지 않기에 유아 시에 세례를 받았지만 성인이 되어서 다시 재 세례를 받는다는 뜻에서 이 이름이 부쳐졌다. 그런데 이들은 특별히 ‘화평’이라는 가치를 중시하면서 세족식을 시행하였다고 알려지고 있다. 이들은 세족식이 성찬이나 세례처럼 ‘성례’라고 보았다. 예수님은 예배의 대상일 뿐 아니라 나아가 우리가 닮고 따라야 할 ‘본’(모범)인데, 세족식은 바로 예수님이 친히 제정하신 것으로서 신자들이 반드시 예수님을 따라가기 위해 시행해야 할 의식으로 이해한 것이다. 오늘날 이들의 후예 중에 ‘아미시’(Amish)라 불리는 자들이 미국 등에 흩어져 사는데 지금도 이들은 그들의 선조인 재세례파의 전통을 따라 성찬식이 있는 주일에는 성찬식 마친 후에 세족식을 시행한다고 한다. 이들은 평화주의자로서 반전운동에 앞장서고 있다.

   세족식은 과연 교회의 좋은 전통으로 교회생활에서 자리 잡을 수는 없는 것일까? 사회에서도 통용될 만큼 사랑과 섬김이라는 정신을 고취 시키는 좋은 도구이며, 오히려 이러한 정신이 사라지고 있는 이 시대에 감동을 주는 의식으로 받으면 되지 않을까? 이 세족식을 어떻게 이해하는 것이 바람직할까? 다음 몇 가지로 이 세족식의 문제를 정리하고자 한다.

   첫째, 고난주간 목요일에 일어난 예수님이 제자들의 발을 씻으신 행위, 즉 세족 행위는 성경 요한복음 13장에 나온다. 이 성경 본문을 자세히 보면 예수님이 제자들의 발을 씻으신 행위는 일차적으로 우리의 구원을 위한 행동이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뿐 아니라 예수님이 종의 형체로 이 땅에 오시고 지상에서 자기를 낮추신 모든 것이 다 우리의 구원을 위한 것이었다.

왕의 직분을 가지신 그리스도는 낮아지신 지위와 신분에서, 특히 성육신, 고난, 십자가의 죽음, 장사지내심, 음부 하강을 통해 우리의 구원을 위하셨다. 예수님이 베드로의 발을 씻은 것은 무엇보다 베드로의 구원을 위해 극도로 자기를 낮추신 구원의 행위였다. 그런데 베드로는 예수님의 이 행동을 알지 못하였기에 “내 발을 절대로 씻지 못하시리이다”라고 했고, 이에 대해 예수님은 “내가 너를 씻어주지 아니하면 네가 나와 상관이 없느니라”(요한복음 13장 8절)고 하셨다. 이 말은 그리스도의 낮아지심, 발 씻으심, 사랑과 섬김에 상관없는 자는 곧 예수 그리스도와 상관없는 자라는 뜻이다.

   이런 관점에서 교회 역사를 보면 세족식을 두고 진짜 위험한 극단적인 경향이 항상 있었는데 그것은 바로 세족식을 우리 구원과 무관하게 순전히 도덕적인 ‘본’으로만 삼는 것이다! 내 구원과 상관없이 그냥 사랑과 섬김과 희생이라는 도덕적인 덕목을 실천하는 상징으로만 보는 것이다. 교회에서 세족식을 할 때 우리가 우선 염두에 두어야 할 것은 바로 이 점이다. 

우리는 교회 역사가 주는 경고에 주목해야 한다. 사회 곳곳에서 도덕적 실천을 목표로 이 의식을 시행한다고 할지라도 신자들은 교회에서 세족식을 나의 구원을 위해 독생자 예수님께서 어떻게 하나님의 본체이심에도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오히려 자기를 비워 종의 형체를 가져 사람들과 같이 되셨고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서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신 구원의 행위로 먼저 깊이 알고 잠잠해야 한다.

    둘째, 세족식을 둘러싸고 교회역사에 나타난 두 번째 극단적인 경향은 예수님이 제자들의 발을 씻어주신 다음에 하신 말씀, “너희도 발을 씻어주는 것이 옳으니라 내가 너희에게 행한 것 같이 너희도 행하게 하려 하여 본을 보였노라....너희가 이것을 알고 행하면 복이 있으리라”(요한복음 13장 14-15, 17)을 경시하고 제자들의 발을 씻어주신 것을 우리가 행하도록 예수님이 친히 보여주신 ‘본’이라고 하신 점을 도외시한 것이다.

   오늘날 주를 위해 무언가를 하겠다는 열심과 열정, 헌신은 있는데, 베드로처럼 주와 함께 죽고자 하는 자들은 있으나 그리스도께서 가장 낮아지신 이 사랑을 충분히 알고 이를 본으로 여기고 알고 행하는 이가 적다(베드로전서 2장 21절, 빌립보서 2장 5-8절). 오늘 우리가 얼마나 예수님이 우리가 그대로 행하도록 본을 보여주신 섬김과 사랑에 죄를 짓고 얼마나 우리가 이 거룩한 부르심에 초라하게 반응하는지, 우리가 얼마나 요한복음 13장 말씀에서 멀리 떠나있는지, 그리스도를 따라갈 수 없다는 말로 우리가 얼마나 변명하며 그리스도는 거룩하고 우리는 죄인이라는 말로 정당화시키는지...

   따라서 예수님이 본을 보이신 세족 행위는 예수님이 제자들의 발을 씻는 장면이 나오는 요한복음 13장 34절에서 말씀하신 ‘새 계명’과 연관된다: “새 계명을 너희에게 주노니 서로 사랑하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예수님이 우리에게 세족 행위를 통해 보여주는 본은 바로 우리에게 말씀하신 새 계명을 가리키고 있다. 이 새 계명을 우리가 실천하도록 예수님이 본을 보이신 것이다. 세족식이나 세족 행위 자체가 목적이 아닌 것이

  셋째, 따라서 문제는 세족식이라는 의식은 흉내 내면서도 이를 서로 사랑하라는 새 계명과 연관시키지 않는 자세와 행위에 있다. 이 점에서 세족식을 세례와 성찬처럼 성례라고 보는 것은 나가도 너무 잘못 한참 나간 것이라 할 수 있다. 세족식이라는 의식을 자칫 성례로 보는 위험을 경고하는 것은 물론, 나아가 사랑을 실천하는 것보다는 이 의식 자체를 시행하는 것에 너무 역점을 두는 현 풍조를 경계하라는 취지였을 것이다.

 따라서 우리는 세족식이나 세족 행위를 그저 사랑을 실천하기 위한 예수님의 행위로 본다든지 그래서 이를 우리가 모방해야 한다는 생각과 거리를 둘뿐 아니라, 이를 지나치게 성례로 보는 것은 물론, 이를 하나의 깜짝 쇼처럼 보여주기식이나, 혹은 한순간의 감동을 주는 것으로만 대하는 것을 경계해야 할 것이다.

 < 발체: 개혁정론 >


 
 

일반형 뉴스형 사진형 Total 7,994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5744 청교도 가정관(5-5) 창암 05-14 1255
5743 스펄젼과 함께하는 아침묵상(5/15/22) 창암 05-14 1705
5742 청교도 가정관(5-4) 창암 05-13 1191
5741 스펄젼과 함께하는 아침묵상(5/14/22) 창암 05-13 1007
5740 청교도 가정관(5-3) 창암 05-12 1266
5739 스펄젼과 함께하는 아침묵상(5/13/22) 창암 05-12 1125
5738 청교도 가정관(5-2) 창암 05-11 1748
5737 스펄젼과 함께하는 아침묵상(5/12/22) 창암 05-11 1521
5736 청교도 가정관(5-1) 창암 05-10 1429
5735 스펄젼과 함께하는 아침묵상(5/11/22) 창암 05-10 1194
5734 고집부터 꺾어라... 창암 05-09 1925
5733 스펄젼과 함께하는 아침묵상(5/10/22) 창암 05-09 1275
5732 관상기도와 묵상의 차이.. 창암 05-08 1495
5731 스펄젼과 함께하는 아침묵상(5/9/22) 창암 05-08 1490
5730 스펄젼과 함께하는 아침묵상(5/8/22) 창암 05-07 1105
5729 칼빈주의적 예배의 이해(2-2) 창암 05-06 1444
5728 스펄젼과 함께하는 아침묵상(5/7/22) 창암 05-06 1247
5727 칼빈주의적 예배의 이해(2-1) 창암 05-05 1496
5726 스펄젼과 함께하는 아침묵상(5/6/22) 창암 05-05 1643
5725 복음을 파는 상점... 창암 05-04 1636
5724 스펄젼과 함께하는 아침묵상(5/5/22) 창암 05-04 1092
5723 교리공부, 이렇게 하자... 창암 05-03 1759
5722 스펄젼과 함께하는 아침묵상(5/4/22) 창암 05-03 1906
5721 신앙인도 우울증에 걸릴 수 있는가? (2-2) 창암 05-02 1410
5720 스펄젼과 함께하는 아침묵상(5/3/22) 창암 05-02 1100
5719 신앙인도 우울증에 걸릴 수 있는가? (2-1) 창암 05-01 1702
5718 스펄젼과 함께하는 아침묵상(5/2/22) 창암 05-01 1199
5717 스펄젼과 함께하는 아침묵상(5/1/22) 창암 04-30 1157
5716 말하는 이의 지식에 따라 다른 의미로 사용되고 있다.(2-2) 창암 04-29 1206
5715 스펄젼과 함께하는 아침묵상(4/30/22) 창암 04-29 924
5714 말하는 이의 지식에 따라 다른 의미로 사용되고 있다.(2-1) 창암 04-28 1748
5713 스펄젼과 함께하는 아침묵상(4/29/22) 창암 04-28 1492
5712 이 시대적 문화나 가치관이 성경 해석의 열쇠가 아니다.. 창암 04-27 1487
5711 스펄젼과 함께하는 아침묵상(4/28/22) 창암 04-27 1683
5710 보수 전 대통령 추모예배... 창암 04-26 1245
5709 스펄젼과 함께하는 아침묵상(4/27/22) 창암 04-26 1166
5708 교회 내 침투되어 있는 신사도 운동의 형태 (2-2) 창암 04-25 1196
5707 스펄젼과 함께하는 아침묵상(4/26/22) 창암 04-25 1289
5706 교회 내 침투되어 있는 신사도 운동의 형태 (2-1) 창암 04-24 1401
5705 스펄젼과 함께하는 아침묵상(4/25/22) 창암 04-24 1744
5704 스펄젼과 함께하는 아침묵상(4/24/22) 창암 04-23 1873
5703 자식을 대하는 태도... 창암 04-22 1552
5702 스펄젼과 함께하는 아침묵상(4/23/22) 창암 04-22 1770
5701 세족식 어떻게 보아야 하나? 창암 04-21 1403
5700 스펄젼과 함께하는 아침묵상(4/22/22) 창암 04-21 1063
5699 구원의 서정 (최종) 창암 04-20 1254
5698 스펄젼과 함께하는 아침묵상(4/21/22) 창암 04-20 1015
5697 구원의 서정(5) 창암 04-19 1693
5696 스펄젼과 함께하는 아침묵상(4/20/22) 창암 04-19 1967
5695 구원의 서정(4) 창암 04-18 1149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23  24  25  26  27  28  29  30  31  32  33  34  35  36  37  38  39  40  41  42  43  44  45  46  47  48  49  50  51  52  53  54  55  56  57  58  59  60  61  62  63  64  65  66  67  68  69  70  71  72  73  74  75  76  77  78  79  80  81  82  83  84  85  86  87  88  89  90  91  92  93  94  95  96  97  98  99  1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