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적인 환경 가운데 나타나는 우울증
교회 안에서 두드러지는 우울증의 증상들은 무엇인가? 우울증의 증상들과 원인들에 대한 이해는 정신의학적인 관점에서 필요한 부분에서만 간략하게 언급하도록 한다.
1. 그리스도인의 신앙과 우울증과의 관계성
우울증은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문제가 생김으로써 우울증에 걸릴 수도 있지만, 우울증에 걸림으로써 하나님과의 관계에 문제가 생기기도 한다. 더 나아가 하나님과의 관계에는 문제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우울증에 걸리는 경우도 있다는 점을 이해할 필요가 있다.
신앙인들이 과연 우울증에 걸릴 수 있는가? 하는 질문은 성경에 나타난 많은 신앙인들의 모습 속에서 대답되어질 수 있다. 욥, 모세, 엘리야, 예레미야, 바울 까지도 우울의 감정들을 경험한 분이었다. 시편에서도 우울증과 유사한 상태의 표현이 있음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시편 22편을 대표적인 예로 들을 수 있는데, "내 하나님이여 내 하나님이여 어찌 나를 버리셨나이까?(거절감, 소외감)...내 하나님이여 낮에도 부르짖고 밤에도 잠잠치 아니하오나(수면장애)...나는 벌레요 사람이 아니라(열등감) 사람의 훼방 거리요 백성의 조롱거리니이다(수치감)...나를 멀리하지 마옵소서 환난이 가깝고 도울 자 없나이다.(무력감)...나는 물같이 쏟아졌으며 내 모든 뼈는 어그러졌으며 내 마음은 촛밀 같아서 내 속에서 녹았으며(체증감소, 절망감) 내 힘이 말라 질그릇 조각 같고(에너지 감소) 내 혀가 잇틀에 붙었나이다 주께서 또 나를 사망의 진토에 두셨나이다(죽음의 희구 또는 소진)"여기서 우리가 주목해야 할 사실은 하나님은 이같은 시편 기자들의 표현을 정죄하시지 않았다는 것이다. 신앙인들이 경험할 수 있는 부정적인 감정 상태 자체를 정죄하시거나 불신앙으로 몰아세우지 않으셨고 그 상태를 직면하고 딛고 일어서서 회복의 노래를 부를 수 있도록 인도하시는 하나님이신 것을 발견하게 되었다.
이세벨의 위협을 받은 엘리야가 보여준 모습은 반응성 우울증적인 증상과 유사한 것이었다:
"스스로 광야로 들어가"(왕상19:4)-사회적 철퇴; "한 로뎀나무 아래 앉아서 죽기를 구하여 가로되"(4절)-절망감과 죽음을 동경; "오직 나만 남았거늘"(10, 14절)-무력감과 외로움; "나는 내 열조보다 낫지 못하리니이다"(4절)-열등감; "로뎀나무 아래 누워 자다니"(5절)-신체적 탈진. 흥미로운 사실은 하나님께서 탈진과 우울에 빠진 엘리야를 정죄하거나 영적인 어떤 치료책을 제시하기 전에 천사를 보내셔서 그의 지친 심신을 어루만지시고 까마귀를 통하여 물과 떡을 공급하여 먹게 하시는 재충전의 방법을 사용하셨다는 점이다. 엘리야는 "그 식물의 힘을 의지하여" 사십주 사십야의 광야 길을 행할 수 있었다.
성경을 통해 나타나는 신앙인들의 삶은 긍정적인 감정들과 부정적인 감정들이 교차하는 것이었으며 항상 좋은 감정만을 칭찬하거나 격려하는 것이 아니라는 점을 우리들에게 깨우쳐주고 있다.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통과"하는 삶을 살기도 하고 신앙의 선배들이 명명했던 "영혼의 어두운 밤"을 통과하기도 하는 삶을 오히려 인정하고 있다. 따라서 우울증은 그 증상을 겪는 신앙인을 신앙의 여정에서 부정적으로 이끌어갈 위험성도 내포하고 잇지만 신앙의 성숙을 일어나게 하는 도전의 경험이 될 수 있다.
2. 신앙의 모습으로 가장된 우울증의 양상들
신앙적 행동으로 위장된 우울증의 증상은 대표적으로 형식주의와 외식주의를 들을 수 있다. 겉으로는 쾌활한 척, 기쁜 척 떠들지만 속으로는 울고 있는 성도들이 있다. 따라서 교회에 와서 보여주는 성도들의 겉모습만 보고 그들의 상태를 파악하는 목회자가 있다면 그는 성도들의 실제 삶의 내면을 들여다보지 못하고 속임을 당하고 있다.
주일성수, 십일조, 성경공부, 철야기도회 참석 등과 같은 외적인 모습으로 성도들의 신앙을 측정하는 교회의 틀 속에서는 성도들의 우울증이라는 모습을 수면 밖으로 그 모습을 드러내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 그 모습을 드러내지 않을 때 병은 치료되지 않고 만성화되어 나중에는 치료하기 힘들 정도가 된다.
조울증의 경우는 우울증보다 더 위험한데 교회봉사에서 불규칙적이며 예측할 수 없는 행동을 하는 사람에게서 찾아 볼 수 있다. 열심히 있고 소위 '뜨거울' 때는 지나칠 정도이지만 어느 주일부터는 예배에도 출석하지 않고 맡은 부서의 일도 무책임하게 하는 성도들을 보게 된다. 비현실적인 사고를 신앙과 동일시하고 교회사역을 충동적으로 이것저것 막 벌여놓거나 교인들의 상태를 고려하지 않고 신앙이라는 이름으로 교회당 건축과 같은 비현실적인 일들을 시작하는 것과 같은 행동도 목회자들이 가질 수 있는 조울증의 증상일 수도 있음을 목회자들 스스로가 인식하는 것이 필요하다. 시도하다가 잘되지 않으면 나름대로의 합리화'의 방어기제를 사용하여 성도들에게 하나님의 뜻으로 믿으라고 강요하는 것은 건강한 목회자가 아니다.
성도들의 경우에는 하나님의 말씀과 설교를 통해 자신에게 대해 갖고 있는 기대의 수준과 실제 신앙생활 사이의 괴리감이 클수록 우울증에 취약할 수 있다. 우울증 환자들은 보통 자존감이 낮으며 완벽주의적인 성향을 갖고 있는데 내적인 평안함이 없으며 자주 자신을 정죄하는 전쟁을 내면에서 치르는 경우가 많다.
특히 완벽주의적인 양심의 발달로 인하여 자기 수용의 정도가 낮으며 자신의 장점보다는 단점을 더 부각시켜 인식하는 고질적인 패배자가 우울증 환자이다. 지나친 양심은 폭군적으로 자신을 힘들게 하며 수반되는 감정은 수치감과 죄책감 그리고 열등감이다. 우리가 알아야 할 것은 신앙인의 양심은 양심자체가 우리의 기준이 될 수 없다는 것이다. 오히려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올바른 이해에 기초하여 자신의 연약함을 수용하면서도 자신의 장점을 살려나가는 것이 건강하며 성숙해져 가는 신앙의 태도일 것이다.
(이관직/총신대신대원 목회상담학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