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배란 일반적으로 하나님께 대하여 마음으로 경배하며 공동으로 말과 행동으로 표현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또는 예배는 영원자에 대한 피조자의 응답이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다. 또 미국의 대설교가 죤 멕카드는 “예배는 최상의 존재에게 표하는 경이이다. 그것은 최상의 존재에게 존경, 경의, 찬양, 영광을 드리는 것이다.-그러므로 예배는 드리는 것이다. 하나님께 경의와 존경을 드리는 것이다.
그래서 결국 일반적 의미에서의 예배란 경배로서의 예배, 말씀선포로서의 예배, 헌신으로서의 예배, 교제로서의 예배, 새롭게 되는 예배, 문답을 드림으로서의 예배, 생활로서의 예배를 지적하게 된다. 예배에 대한 바른 인식은 사람의 첫째 의무가 하나님께 영광을 들리는데 있으며 하나님은 자신을 위해 예배를 받으시고 참된 예배는 하나님의 영광으로 귀결된다. 그렇기 때문에 기독교의 예배는 하나님의 부르심과 은총의 계시가 창조와 구속의 역사 속에 나타났기에 거기에 대한 응답적 행위로 감사와 경배와 찬양을 드리는 것이다. 따라서 예배란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계시하신 것과 거기에 대한 인간의 응답으로서 대화와 만남으로 이해되어진다.
그런데 칼빈주의적 입장에서 예배의 이해는 위의 것들과 무엇이 다른가?
칼빈주의적 입장에서의 예배는 다음과 같은 강조점이 있을 수 있겠다. 우선 창조주 하나님과 피조물인 인간과의 관계성에서 예배의 의미를 찾는다. 칼빈은 인간에게는 신 의식이 있는데 이것이 종교의 씨앗으로서 하나님을 예배할 수 있는 기초가 되었다는 것이다. 그래서 칼빈은 인간이 다른 동물과 다른 점은 예배를 필요로 하기 때문이라고 했다. 칼빈주의적 예배 또는 개혁파 교회의 예배 이해는 우선 1542년에 나온 칼빈의 ‘교회기도의 본’과 1644년의 ‘공예배에 대한 웨스트민스터 규칙서’가 그 기초가 되는 것이다. 결국 칼빈주의적 예배 이해는 “하나님께서 영광을 받으시고 그의 교회가 축복받음으로써 하나님과 공동체로서의 그의 백성이 만나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다.
1)그러므로 예배는 만남이다.
예배는 개인적이고 정신적인 활동의 영역도 아니고 명상도 아니다. 명상은 종교적 행위이다. 그러나 예배는 그러한 종교적 명상과는 차원을 달리하는 인격과 인격의 만남이다. 하나님께서 십자가에서 외아들을 희생시켜 이룩하신 신비스런 구속을 통해 인간과 만나도록 하신 것이다. 그래서 아브라함 카이퍼는 예배를 가리켜 “화목된 공동체로서 하나님과의 만남”이란 말로 표현했다.
2)예배는 집단적 만남이다.
개인적이고 은밀하고 경건한 경험들도 일종의 예배라고 말할 수 있겠다. 그러나 엄밀히 말해 그것은 예배일 수 없다. 예배는 공동체로서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일과 기도로써 하나님께 아뢰는 예배 행위를 말한다. 그러므로 개인적 헌신, 친구들끼리의 헌신, 또는 경험이나 간증을 나누는 것 등은 집단적 예배일 수 없다.
3)예배는 규칙을 따라서 하는 집단적 만남이다.
여기서 규칙에 따른다는 것은 시간이나 장소 등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고 예배는 일정한 질서와 규범을 띠라 행해지는 것을 의미한다. 이런 예배의 질서를 이른바 예배의식이라고 부른다.
예배의식은 예배를 도와주는 것뿐이고 예배의식이 예배의 전부는 아닌 것이다. 그래서 개혁파교회 또는 장로교회는 그 나름대로의 예배의식을 갖게 되는 것이다. 따지고 보면 예배의식은 예배를 좀 더 바르게 하기 위한 조력자에 불과한 것이다. 그래서 예배의식과 예배는 구별되어야 하나 그 둘은 서로 나눌 수는 없는 것이다.
4)예배는 하나님과 그의 백성 사이에 일어나는 규칙적이고 집단적인 만남이다.
가끔 예배란 말을 대화로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다. 물론 예배 순서에는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는 순서도 있고 회중들이 응답하는 순서가 있어 예배를 대화로 생각하지 모르겠다. 그러나 예배가 대화란 말은 불완전하기 짝이 없다. 왜냐하면 대화란 동격인 상태에서의 행위이다. 그런데 예배는 하나님의 초청에 의해 하나님의 백성된 자들이 드리는 것이다. 대화는 이것저것 생각나는 대로 지껄이는 것이지만 예배는 그런 것이 아니고 하나님과 그의 백성이 규칙을 따라서 만나는 것이어야 한다.
5)예배는 하나님께 찬양을 돌리면서의 만남이다.
찬양은 예배에 있어 가장 중요한 목적이며 필수적 내용이다. 시편에서는 예배의 성격을 나타내는 근본적 단어 찬양이라는 말을 쓰고 있다. 또 다른 성경에서는 예배의 특징을 짓는 말로 여호와 하나님을 노래하고 그에게 영광을 돌리는 것을 의미한다. 그런데 이러한 찬양과 영광을 돌리는 예배는 예배자가 멋대로 하는 것이 아니라 경건한 두려움으로 죄를 고백하면서 하나님의 놀라운 구속의 은총을 바라보면서 예배하는 것이다.
6)예배는 축복받은 교회 안에서의 만남이다.
성도들은 예배를 통해 하나님께 모든 것을 드릴 뿐 아니라 받기도 한다. 그의 백성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축복은 교회에서 드리는 예배를 통한 결과이다. 그리고 하나님의 말씀은 예배를 통해서 받는 축복의 원천이다. 예배 시간에 받은 하나님의 말씀 자체가 축복이 되는 것이다. 예배시간에 하나님의 말씀은 네 번 정도 청중들에게 선포된다. 첫째는 예배가 시작될 때 성도들에게 문안의 말씀이 되겠고, 둘째는 죄의 고백에 따른 용서의 말씀이다. 그리고 셋째는 설교 시간에 성도들을 위로하며 감화하며 깨닫도록 하며 하나님께 헌신하게 하는 교훈의 말씀이다. 넷째는 한 주간 동안 승리의 생활을 하도록 그의 백성에게 약속하는 축복의 말씀이다. 이 같은 요소들은 칼빈주의적 교회 어디서나 볼 수 있는 예배의 한 모습일 것이다.
정성구 박사 (총신대 실천신학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