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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halom aleikhem !

שָׁלוֹם עֲלֵיכֶ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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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22-05-08 22:29
관상기도와 묵상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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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글쓴이 : 창암
조회 : 1,494  

오늘날 세계 교회는 묵상의 중요성을 심각할 정도로 망각하고 있다. 에드먼드 칼라미는 말하기를 "인간이 회개하지 않고 계속 죄들을 범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것은 묵상의 결핍 때문이다"라고 했다. 뿐만 아니라 묵상은 성화를 위해서도 필수적이다. 그리고 매주마다 설교를 듣는 성도는 묵상이 없으면 아무런 유익을 얻지 못한다. 이는 마치 성별된 동물이 식물을 되새김질 하지 않으면 어떤 음식도 소화할 수 없음과 같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날 교회 안에서 묵상은 거의 제대로 가르쳐지지 않고 있다.

물론 상당수의 교회는 나름대로 묵상을 가르치고 실천하기 위한 프로그램들을 운영하고 있다고 말한다. 그러나 정작 이렇게 묵상을 가르치고 프로그램을 운영한다는 교회들을 들여다보면 거의 대부분 심각한 상황에 놓여있는 것이 사실이다. 왜냐하면 대부분의 교회들이 하고 있는 묵상 프로그램들은 가톨릭적이거나 철학적인 묵상을 가르치고 있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서 성경이 요구하는 목표에 도달하기 위한 묵상이 아니라, 성경의 명령으로부터 더 멀어지게 만드는 사악한 프로그램이라는 말이다.

이는 상당수의 교회들이 전통적인 묵상이 무엇인지 전혀 알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면 오늘날 교회에서 가르치는 묵상에 어떤 문제가 있다는 것인지 질문을 하지 않을 수 없다. 기존의 묵상, 소위 Q.T(Quiet Time)라고 불리는 가르침들은 성경을 성령의 조명으로 읽도록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직관으로 읽도록 가르친다.

 그 결과 성경이 계시하는 하나님을 발견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원하는 하나님을 주관적으로 도출해내고 내 방식대로 하나님을 규정한다. 그리고 사람들은 말하기를 자신은 성경 말씀으로 응답을 받았노라고 주장한다. 이것은 제2계명, 즉 하나님을 형상화 하지 말라는 우상숭배에 해당되는 죄를 범하고 있는 것이 된다.

 비록 성경을 사용하기는 했을지 모르나 성경의 말씀을 이단처럼 자기 방식대로 해석하고 짜깁기 하여 자기가 숭배하고자 하는 하나님을 만들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이런 사람들은 출애굽기 32장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황금 송아지를 만들고 나서 “이는 너희를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낸 너희의 신이로다”(출 32:4)라는 식으로 말하는 것이다. 이런 행위는 비록 여호와라는 호칭은 사용하고 있으나 이름을 도용한 우상숭배에 불가하다.

 그러나 문제의 심각성은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오늘날 교회에서 가르쳐지는 묵상운동은 여기서 한 단계를 더 넘어서 ‘관상기도’로 향하고 있다는 것이 문제다.

 실제로 우리가 Q.T.라고 부르는 묵상운동은 로마 가톨릭의 관상 기도 방식에서 “관상기도”만 생략한 가르침이다. 아마도 Q.T.를 교회 안에 유입한 목회자들은 이것이 관상기도의 방식이라는 것을 이미 알고 있었을 것이라고 생각된다. 그런데 천주교에 거부감이 심한 한국교회에게 곧바로 관상기도를 가르치면 거부감이 생길 것을 염두에 두고, Q.T.라는 명칭으로 관상기도라는 최종 단계만 생략한 체 한국교회에 소개한 것으로 보인다.

 그러면 먼저 관상기도가 어떤 단계로 진행되는지 살펴보자. 이 부분을 살펴보면 누구든지 우리가 이제까지 교회에서 배운 Q.T.의 과정이 고스란히 들어갔다는 것을 쉽게 알 수 있을 것이다. 관상기도는 전체가 4단계로 되어 있다.

 첫째 단계는 ‘성경읽기’이다. 이 부분을 천주교에서는 ‘렉티오 디비나’(Lectio Divina)라고 한다.

두 번째 단계는 ‘묵상’이다. 이 부분을 천주교에서는 ‘메디타티오’(Meditatio)라고 한다. 이는 사고를 사용하여 직관적으로 이해하고 적용한 말씀을 자신에게 적용하는 것이다.

세 번째 단계는 ‘기도’이다. 이 부분을 천주교에서는 ‘오라티오’(Oratio)라고 한다. 이 단계는 자신이 이해하고 적용한 말씀을 기도로 하나님께 올려드리는 것이다.

마지막 네 번째 단계는 ‘관상’이다. 이 부분을 천주교에서는 ‘콘템플라티오’(Contemplatio)라고 하는데, 이는 소위 신에게 거하기, 혹은 합일(合一)을 이루기 위해 집중하는 것이다.

여기서 많은 성도들이 속는 부분은 묵상, 혹은 관상을 위해서 성경을 사용하고 있다는 점이다. 관상이든 묵상이든 성경을 사용하는데 무엇이 문제냐고 주장한다. 그러나 여기서 목회자들이 우려하고 있는 것은 그들이 성경을 사용하든, 사용하지 않던 궁극적인 목표가 자기 우상화에 있다는 점이다.

 관상기도에서 성경을 사용하는 이유는 단순히 집중을 위한 하나의 수단에 불가하다. 다시 말해서 불교인들이 관상을 위해 불경을 사용하는 것처럼, 혹은 이방 종교인들이 관상을 위해 촛불을 사용하는 것처럼, 관상을 하는 사람들에게 성경은 관상을 하기 위해 집중을 위한 수단에 불가하다. 그렇기 때문에 관상기도를 하는 사람들은 성경의 말씀을 읽는데 있어서 정확한 교리와 본문에 대한 이해는 중요하게 여기지 않는다. 이들이 중요하게 여기는 것은 자기 마음에 주관적으로(직관적으로) 와 닿는 말씀에 관심을 갖는다.

 그러면 이렇게 관상을 하는 것이 어찌하여 큰 문제가 된다는 것인지 궁금할 것이다. 그 이유는 관상의 목적이, 성경이 궁극적으로 목표하는 그리스도와의 연합에 있지 않고, 자신이 하나님과 합일하여 '신적인 존재가 된다는 것'을 목표로 한다는 데 있기 때문이다.

  이 사상은 성경의 사상이 아니라 신플라톤주의 사상이다. 이는 신플라톤주의자였던 플로티누스(Plotinus, 205-270)에 의하여 정리된 사상으로, 인간이 구원을 얻기 위해서는 영혼이 물질의 세계를 벗어나기 위해서 끊임없이 신(일자)를 관조(관상)하면서‘정화’를 통해서 '무아의 지경'에 도달함으로 ‘합일’(合一)을 추구해야 한다는 사상이다.

  이 사상을 추구하는 대표적인 종교가 바로 불교이다. 불교는 이 용어를 다르게 사용하고 있을 뿐, 내용에는 아무런 차이가 없다. 즉 불교는 관상생활을 통해서 이생의 자기 자신을 정화하고 잊어버려야 한다고 한다. 이것을 소위 해탈이라고 한다. 해탈은 일체의 기억, 감성 작용, 추론하는 이성 작용 등을 점차로 없애면서 '단일자'와의 무의식적 일치를 이루며, 이른바 탈현실적인(ecstasis) 일치를 이루는 것이다. 이렇게 해탈을 하게 되면서 그들은 부처라는 ‘일자(一者)’에 도달하려고 한다. 이것을 ‘성불’(成佛)한다고 한다. 불교는 신플라톤주의 사상을 이런 식으로 말하는 것이다.

 그런데 천주교의 관상기도도 동일한 체계를 가지고 있다. 천주교도 끊임없이 관상을 행함으로 '성인’(聖人)이 되는데 목표한다. 성인이 되면 공덕을 나누어 줄 수 있고, 구원의 중보자적 역할까지 한다. 합일을 통해서 감히 하나님이 된다고 말하지는 않지만 거의 하나님의 수준에 도달하려 하는 것이다. 실제로 교황은 그리스도의 이름을 다 사용하기도 한다. 이러한 천주교의 관상기도는 뉴에이지 운동과도 그대로 일치한다.

  그러면 기독교에서 추구하는 묵상은 관상과 어떻게 다른가? 가장 궁극적인 차이는 '합일이 아니라 연합'이라는 표현에서 나타난다. 우리는 하나님과 합일을 추구하는 것이 아니다. 우리는 신적인 존재가 되는 것이 아니라, 성자 예수 그리스도의 인성에 연합되는 것이다. 연합은 합일과는 근본적으로 다르다. 합일은 신과 내가 하나가 된다는 개념이다. 즉 피조물이 피조물의 한계를 넘어서는 것이다. 그러나 연합은 그리스도의 신성이 아닌 인성(마지막 아담)에 연합되는 것이다. 첫 아담의 타락에 연합되었던 인간이, 이제 칭의됨으로 말미암아 마지막 아담의 거룩에 연합되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파괴 되었던 하나님의 형상을 회복하는데 관심을 둔다는 말이다.

 그러므로 묵상은 하나님께서 인간을 본래 창조하신 창조 상태에 관심을 갖는다. 묵상은 육신을 벗는데 관심을 갖는 것이 아니라, 육신을 거룩하게 하는데 관심을 갖는다. 천주교나 불교처럼 성속(聖俗)을 나누는 것이 아니라, 사망이 생명에게 삼키게 되는 것에 관심을 둔다. 그러므로 기독교 신앙은 종말적으로 볼 때, 영혼만의 구원이 아니라 영혼과 육체 전인격의 구원을 소망한다. 이것이 기독교 묵상의 목표이다.

 그러나 사단은 처음 하와를 미혹했던 것과 동일한 방식으로 지금도 사람들을 미혹하고 있다. 사단은 네가 하나님처럼 될 수 있다고 미혹한다. 관상 기도는 태초의 하와에게 사용했던 사단의 달콤한 미혹이 또 다른 방식으로 사람들에게 다가오는 방식이다. 원죄 없는 하와가 이러한 달콤한 미혹에 미혹되었다고 한다면, 원죄를 품은 인류에게 이 미혹은 무엇보다 달콤한 미혹이 될 것은 자명하다.

 마지막 때가 가까워 올수록 정신을 차리고 깨어 근신해 할 것이다.

김민호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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