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직분은 주님 이외에 달리 교회의 주인이 없음을 선포
우리가 고백하는 것처럼 교회의 주인은 오직 하나님 한분이시다. 교회는 주님께서 친히 피로 값주고 사신 거룩한 공동체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주인이신 하나님 이외에 어느 누구도 주인 행세를 하거나 주인을 대리하려 해서는 안된다. 모든 직분자들은 말씀을 통해 주님의 뜻을 알아가며 그의 직분적 요구에 순종해야만 하는 것이다.
교회에 직분제도가 있는 것은, 개인이 자기 취향이나 판단에 따라 교회를 움직이지 못하도록 하는 장치역할을 동반한다. 그러므로 교회 내에는 어느 누구도 절대적인 위치를 차지하는 자가 있어서는 안되며 허락된 직분들을 통해 공동으로 주님의 뜻을 이루어 가는 것이다. 직분은 개인의 능력을 나타내기 위한 수단으로서 의미가 있는 것이 아니라 주님의 몸된 교회를 세우기 위한 방편으로서 의미가 있는 것이다.
모든 직분자들은 누군가에 의해 임명받는 것이 아니라 교회 회중에 의해 선출된다. 그것은 교회공동체를 통한 하나님의 뜻을 받아들이는 것이며, 그 직분은 직분자 자신을 위한 것이 아니라 전체 교회 공동체를 위한 것이다. 그러므로 교회는 특정인의 능력이나 리더십에 의존하지 않는다.
직분에 관한 모든 권위는 오직 하나님의 말씀에 의해서 행사되어야만 한다.
물론 교회에는 다양한 능력들이 필요하지만 교회가 필요로 하는 능력은 개인의 특별한 재능이 아니라 주님으로부터 제시된 공적 직분 즉 은사인 것이다. 직분으로 드러나는 그런 집합적 은사들이 교회를 온전히 세워나가게 된다. 개혁교회에서 다양한 직분들이 필수적인 것은 교회의 주인이신 하나님의 뜻에 따라 그의 뜻을 이루기 위한 것이다.
3. 직분에 대한 오해
(1) 직분, 부수적 직분, 직책, 직임
직분은 교회의 필수요건이다. 즉 정상적인 교회에 직분이 없으면 안된다. 이에 반해 부수적 직분은 없어도 되며, 성장한 교회에서는 도리어 불필요한 것들이다. 한국교회에는 목사, 교사, 장로, 집사 이외에 부수적인 임시직분들이 많이 있다. 강도사, 전도사, 권사, 서리집사 등이 대표적이다. 그러나 엄밀한 의미에서는 강도사, 전도사를 직분으로 볼수 있느냐는 생각을 해 볼 때 그에 대한 답변을 하기 쉽지 않다. 즉 교회가 직분자로서 선출하지 않은 직분이 있을 수 있느냐 하는 문제에 직면하기 때문이다.
한국교회의 특이한 직분인 권사라는 명칭 자체는 성경에 전혀 언급이 없다. 그렇지만 또 다른 각도에서 보면 교회의 투표에 의해 선출된 직분자로서 권사라면 여자 안수집사로 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문제가 대두된다. 이는 디모데전서 3:10,11에 대한 해석에서 문제를 풀어갈 수 있을 것이다. 사도바울은 위 본문 구절에서 “이에 이 사람들을 먼저 시험하여 보고 그 후에 책망할 것이 없으면 집사의 직분을 하게 할 것이요, 여자들도 이와 같이 단정하고 참소하지 말며 절제하며 모든 일에 충성된 자라야 할찌니라”(한글개역)고 기록하고 있다. 이는 분명히 집사직분과 관련되는 구절이다.
우리가 여기서 관심을 기울이는 내용은 ‘여자들도 특정한 조건을 갖추면 집사가 될 수 있다’고 이해될 수 있는 11절의 기록이다. 그렇다면 과연 이 본문에서 말하는 ‘여자들’이란 독립적으로 쓰여진 단어인가 하는 문제에 직면하게 되며, 그것은 곧 성경이 여자집사를 인정하느냐 하는 문제와 연결된다. 만일 여기의 ‘여자들’이 독립적으로 쓰이고 있다면 여자 장립집사도 가능하며 직분에서 여자의 위치가 상당한 영향을 끼치게 된다. 특히 한국교회에서는 그렇다. 왜냐하면 전통적인 한국장로교에서는 여자 장립집사를 허용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여기서 말하는 ‘여자들’이 집사인 남편에게 종속된 의미로 쓰여지고 있다면 문제가 달라진다.
이제 직접적인 몇몇 성경 번역들을 우선 살펴보고자 한다. ‘여자들’을 독립적으로 사용함으로써 여자집사를 인정하는 듯한 인상을 주는 성경번역들은, 한글개역성경(여자들), 표준새번역(여자들), 새번역(여집사들), Jerusalem Bible(the women), NASB(Women), 新改譯(일본어성경: 婦人執事) 등이다. 그리고, ‘여자들’을 남자 집사의 부인으로 번역하고 있는 성경은 현대인의 성경(그들의 아내들), 공동번역(보조자의 아내들), KJV(their wives), NIV(their wives) 등이다. 이와같이 상이한 번역이 나오게 된 것은 11절과 12절의 연관성 문제 때문이다. 즉 12절에서 다시 ‘집사’가 ‘한 아내의 남편’이어야 함을 언급한 것은 앞의 내용과 별개로 볼 것인가 아니면 직접 연관된 내용으로 볼 것인가 하는 문제이다.
그렇지만, 11절의 ‘여자들’에 대한 헬라 원문을 살펴보면 그 단어가 종속적이 아니라 독립적으로 사용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헬라어 성경원문에 비평의 여지가 없다면 우리는 여성의 집사안수 문제를 달리 생각해 보아야 한다. 뿐만 아니라 로마서 16:1에 언급된 ‘우리자매 뵈뵈’에서 ‘집사’를 일컫는 단어 διακονον이 쓰이고 있음은 눈여겨 볼만하다. 그렇다면 한국의 권사제도는 특이한 직분처럼 둘 것이 아니라 그 명칭을 바꾸어 여자 집사로 직분명을 바꾸어야 할 것이며, 그것은 남자 집사와 다른 요건인 별도의 제한 등은 바꾸어져야 할 것이다.
그와는 별도로 한국교회에 있는 서리집사 제도는 매우 특이하다. 엄밀한 의미에서는 그것을 과연 직분이라 해야할지 판단하기가 쉽지 않다. 현재 한국교회의 서리집사는 회중의 투표를 통해 선출된 직분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교회의 서리집사는 헌법상 교회에서 직분자로 인정받고 있다. 서리집사는 제직회에 참석하여 교회의 중요한 의결과정에 참여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원리적으로 보아 잘못된 것이다. 즉 교회 회중이 투표를 통해 그 일을 맡기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이 직분자회인 제직회에 참석해 직분수행에 참여하고 있기 때문이다.
한편 한국교회에는, 부수적 직분과는 또 다른 직책들이 많이 있다. 그것은 교회 가운데 특별한 일을 감당하기 위해 구성된 임시적 기관에서 일의 목적을 수행하기 위해 두는 일종의 직능이다. 교회내 다양한 기관들은 전도 사업이나 구제사업 혹은 교육, 친목 등 특정한 목적을 이루기 위해 설립된 교회내의 기구들이다. 각 기관들에는 회장과 총무, 서기 등 임원들이 있는데 그 임원들이 곧 여기에 속하며 그들은 각 기관에서 투표를 통해 선출된다. 여기서 우리가 주의해서 생각해 보아야 할 바는, 투표라는 과정은 동일하지만 직분자 선출을 위한 투표와 다른 임시적 기관에서의 시행되는 투표는 본질상 전혀 다른 성격을 지닌다는 점이다.
즉 직분자 선출을 위한 교회 회중의 투표에서는 사전 선거운동을 할 수 없다. 직분은 어떤 사람이 자기가 그 직분을 맡고 싶다고 해서 맡게되는 것이 결코 아니다. 직분자는 올바른 내적 소명과 외적 소명을 통해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가운데 교회로부터 세움을 받는 것이다. 그러나 다른 여러 기관들에서 회장이나 총무 등 임원을 선출할 때는 교회의 덕을 해치지 않는 범위내에서 선거운동을 할 수도 있고 투표 전 소견 발표를 할 수도 있다. 그것은 다수결의 원칙에 따라, 기관에서 목적하는 바 일을 수행하기 위해 특정한 직책을 맡기는 것이다.
한편 주일학교 교사, 성가대 대장, 지휘자 등은 교회에서 말하는 직분자가 아니며, 다른 직책들처럼 투표에 의해 선출되는 것도 아니다. 그들은 교회의 특정 기관에서 임명을 받아 직임을 행하게 된다. 우리가 여기서 잘 기억해야 할 바는 어떤 경우에도 직분보다 직책이나 직임이 더 중요시되어서는 안된다는 사실이다. 각 부서의 회장이나 성가대 지휘자와 같은 직책 및 직임보다는, 외적으로 그런 식으로 드러나지 않지만 교회의 회중에 의해 세움을 받은 집사직분이 본질적으로 훨씬 중요한 것이다. 그렇지만 한국교회에서는 직책이나 직임이 직분 보다 오히려 더 중요한 것으로 인식되는 경향이 있다. 즉 집사의 직분은 대중적인 것으로 생각하여 맡겨진 직분을 소홀히 하는 경향이 있으나 직분이 아닌 다른 직책들에 대해서는 최선을 다해 봉사하고 일하는 모습을 쉽게 볼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매우 잘못된 것이다. 나아가 부수적 직분자나 일부 직임자들 가운데는 유급직원으로 일하고 있기 때문에 그것이 마치 더 중요한 일인 것처럼 오해되고 있기도 하다. 교회에서 목사나 교사(신학교수)의 생활비를 부담하는 것은 자연스럽다. 교회가 선출을 통해 그들에게 직분을 맡기면서 그 일을 전담하도록 요구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목사나 교사로 세우기 위해 교회가 특별히 요구한 목사 후보생에게 생활비를 지급하는 것도 자연스럽다. 그렇지만 그 이외에 성가대 지휘자나 반주자 등 특정 직임자들에게 ‘사례비’ 명목의 일정액의 급여를 상시적으로 지급하는 것은 올바르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