Ⅲ. 직분의 종류와 각 직분회
1. 직분의 종류
앞에서도 언급했듯이 직분의 종류를 이야기하면서 항존직과 임시직을 잘 구분할 수 있어야 한다. 항존직이란 교회에 필수적으로 있어야만 하는 직분을 말하며, 임시직이란 지교회가 특별한 형편상 항존직 직분자를 두기 어려울 때 필요에 따라 임시적으로 두는 직분을 말한다. 많은 사람들이 오해하고 있듯이 항존직이란 말은 개인이 특정한 직분을 받게 되면 종신토록 그 직분을 가질 수 있다는 의미가 아니다. 항존직은 초대교회로부터 있어 왔으며 현재까지 교회 가운데 있으며 주님께서 재림하실 때까지 있어야 할 직분이다. 그것을 항존직이라 한다. 개혁교회(Reformed Church)들에서는 일반적으로 목사, 교사, 장로, 집사 등 네 직분을 두고 있으나
장로교에서는 목사, 장로, 집사 등 세 직분을 두고 있다. 장로교에서 세 직분을 두고 있는 것은 교사직분을 목사직분에 포함시키고 있기 때문이다. 이 글에서는 편의상 네 직분을 나누어 고찰하고자 한다.
(1) 목사와 교사
칼빈은 에베소서 4장 11절에 기록된 “사도들(Apostles), 선지자들(Prophets), 전도자들(Evangelists), 목사들(Pastors), 교사들(Teachers)”을 근거로 하여, 교회에 있어야 할 기초적인 직분을 이해했다. 그는 앞의 세 직분들은 사도교회에 있었던 특별한 직분들로서 그 이후 교회에서는 ‘필요에 따른 특별한 경우’에만 있을 수 있으며 교회에 상존하는 직분은 아니라고 보았다. 이에 반해 나중의 두 직분인 목사와 교사는 교회시대에 있는 항존적 직분으로 이해했다.
한편 에베소서 4장 11절에 기록된 교사와 목사를 동일한 직분으로 보기도 하는데 이는 장로교회의 직분론과 밀접한 관계를 가진다. 그렇게 이해하는 이들은 본문의 <τοὺς ποιμἑνες και διδἁσκαλοι>를 ‘목사들 즉 교사들’로 번역하여 연결된 하나의 직분으로 보는 것이다. 이 때 ‘목사들’이라는 단어 앞에는 정관사 <τοὺς>가 있고, 교사들 앞에는 그 정관사가 없으므로 ‘목사와 교사’를 하나로 보고 있다는 인상이 강조되며, 따라서 이 둘을 연결시키고 있는 접속사 <και>는 중언법(重言法)으로 이해해야 한다는 것이다. 대표적으로 루이스 벌코프 같은 학자가 에베소서 4장 11절의 ‘목사와 교사’라는 말을 두 종류의 다른 직분이 아니라 두 가지 연관된 기능을 가진 한 종류의 직분임이 분명하다고 주장하고 있다.
① 목사
이런 가운데서 보면 목사는 공예배에서의 말씀선포와 성례집행, 권징사역, 축도를 감당하는 직분이다. 거기에는 예배를 인도하는 것이 목사의 가장 중요한 직무임이 선명하게 드러나고 있다. 그 직분을 온전히 감당하기 위해서는 말씀에 익숙하여 교회의 인정을 받는 자로서 회중의 선임을 받아야 한다. 그러므로 그는 교회로부터 세움을 받아, 항상 성도들로부터 ‘배나 존경받는 자’(딤전5:17)로 남아 있어야 한다.
요즘 들어, 목사가 특권을 가진 자인 인 것으로 직분을 오해하는 자들은 여자목사제도 도입을 시도하고 있다. 이미 한국교회는 여자목사제도를 도입하는 분위기이지만 성경적인 명확한 검증이 필요하다. 목사는 결코 설교를 통해 자기 역량을 펼치는 통치자나 권력자가 아니다. 하나님께서 허락하시는 교회의 직분을 인간의 시대적 조류에 따라 결정한다는 생각을 가져서는 안된다.
그리고 목사가 해야할 일 중 하나는 교사 즉 신학교수들을 독려해야 한다는 점이다. 이는 교권적 감독이 아니라 신령한 독려여야 한다. 세상의 변화와 더불어 끊임없이 교회내부로 침투해 들어오는 비 신앙적 요소들에 대한 해답을 공교회적 입장에서 확인하기 위해 신학교수들에게 지속적인 답변을 요구함으로써, 목사와 교수들은 상호연관성 가운데 있어야 하는 것이다. 장로교에서 개혁교회와 달리 교사 즉 교수의 직분을 따로 두지 않는 것은 목사직분과 신학교수직분의 공교회 가운데서의 동등성과 밀접성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라 볼 수 있을 것이다.
교회내에서 목사에게 맡겨진 다양한 임무들 중 가장 중요한 사명은 역시 말씀선포이다. 이는 매주 회집되는 공예배 중에 이루어지는 목사의 직분적 사역이다. 말씀선포는 하나님의 뜻에 의해 이루어지는 예언적 성격을 지닌다. 이는 말씀선포가 개인적 성향에 따라 이루어지지 말아야 하는 이유를 극명하게 보여주고 있는 대목이다. 그리고 그와 더불어서 주어진 책무가 성례의 집행과 권징사역, 그리고 축도이다. 성례와 권징사역 및 축도는 말씀선포와 직접 연관되어 있으며, 이는 그리스도께 속함에 대한 고백과 교회의 순결유지 및 교회의 상속을 선포하며 그 은혜에 참여하는 것이다. 목사는 다른 직분과는 달리 소속이 노회이며 원리적으로 목사는 노회의 파송을 받아 지 교회에서 직분을 감당하는 자이다. 거기에는 지교회의 정치적 예속을 받지 않는 가운데 소신있게 직분을 감당하도록 하는 의미가 담겨있다. 그러나 노회가 임의로 특정 목사를 지교회에 파송하지 못하며 지교회의 청빙과 투표절차를 거쳐 2/3의 동의에 따라 노회가 파송하게 된다. 이는 노회와 지교회의 상호 독립적이면서도 의존적인 관계를 잘 표현하고 있는 것이다.
② 교사(신학교수)
장로교회에서는 교사직분을 독립된 직분으로 구분하지 않음으로써 목사직에 포함시키고 있다. 그러나 개혁교회에서는 교사를 일반목회자와 구분된 특별한 직분으로 이해하고 있다. 여기서 특별한 직분이란 직분자체의 의미에서도 그렇거니와 선임과정에서도 그렇다. 목사, 장로, 집사 등 다른 직분들이 노회와 지교회에 속한 직분인 데 반해 교사는 노회 뿐 아니라 공교회 즉 교단에 속한 직분이다. 그러므로 지교회의 청빙과 투표에 의한 선임이 아니라 전체 공교회에서 살펴 선임함으로써 말씀해석자와 교육자로서 교사직분을 맡기는 것이다. 그러므로 교수직은 공교회적 직분이며, 교수는 공교회의 신학적 일치와 유지를 위해 말씀을 끊임없이 해석해야 하는 직분자이다. 그들은 교회의 치리나 교회정치에서 중립적이어야 하는데, 이는 정치적 영향에 관계없이 순수하게 말씀을 잘 해석해야 할 의무가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교사 직분자의 직무를 요약하면 교회상속을 위한 목회자 양성과 말씀에 대한 공교회적 해석자로서의 직무이다. 목회자를 양육한다는 것은 말씀을 통한 교회의 상속이 그 중심적 의미를 가진다. 그리고 말씀해석에 대한 직무란 역사적 시대 속에 존재하는 교회를 위해 끊임없는 해석작업을 진행해 가는 것이다. 역사의 흐름 가운데 끊임없이 양산되는 세속적 사조를 신학적으로 해석하고 비판해야 하는 것은 교수(교사)의 중요한 책무이다. 그것을 통한 변증적 논설들이 목사들에게 제공되어, 교회 가운데 말씀이 올바르게 선포되도록 하는 봉사의 의무를 감당하게 된다. 주님의 몸된 교회 가운데 직접 말씀을 선포하며 가르치는 목사 직분이 매우 중요하며, 목사의 그 일을 위해 신학자들이 중요한 조력자 역할을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신학자 즉 교수들은 공교회가 맡긴 직무를 충실히 감당해야 하며, 목사는 공교회가 인정한 신학자들의 해석과 그 권위를 인정하고 교회 가운데 그것들을 잘 적용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