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다니엘서2장2절의 주석에서 -
우리는 꿈들이 다양한 원인들로부터 일어난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예를 들면, 우리의 일상의 생각들로부터 꿈을 꾸게 되기도 하는 것입니다. 만약 낮동안에 어떤 일에 대해서 곰곰이 생각하게 되었다면, 밤중 꿈 속에서 어떤 일이 일어나게 됩니다. 정신은 잠자는 중에 완전히 묻혀 있는 것이 아니고 얼마간의 지성의 씨앗을 유지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일상의 생각들이 어떻게 잠자는 동안에 되살아나는가, 그래서 다양한 정신과 몸의 정동들이 많은 꿈들을 산출하게 되는지를 경험은 우리들에게 충분하게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만약 어떤 이가 친구의 죽음이나 어떤 일을 상실하거나 어떤 상처나 재난을 경험하는 중에 그 슬픔 가운데서 잠자리에 들게 된다면, 그의 꿈들은 자신의 정신의 이전의 준비된 상태 속으로 들어갈 것입니다.
열병을 앓는 사람의 경우에서 우리가 보게 되는 것처럼, 몸 자체가 꿈을 야기하기도 합니다. 갈증이 심할 때 사람은 샘물, 화재, 그리고 비슷한 공상들을 상상하기도 합니다. 우리는 또한 무절제한 폭음이 잠을 잘 때 그 폭음한 사람을 어떻게 혼란스럽게 하는 지를 인식하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술 취한 사람들은 마치 말짱한 상태에 있는 것처럼 그들이 잠자는 중에 꿈을 꾸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꿈을 꾸게 되는 자연적인 원인들이 많이 있기 때문에, 모든 꿈들 속에서 신적인 개입이나 고정된 원인을 찾고자 하는 것은, 너무나도 정상적이지 못할 것입니다.
나는 고대의 역사들 속에서 연관되어지고 있는 사건들은 생략하겠습니다만, 분명히 줄리어스 시이저의 아내인 Calphurnia의 꿈은 공상적이라고 할 수 없을 것입니다. 그가 살해되기 전에, 그녀가 꿈을 꾸었는데, 그 꿈대로 “시이저가 죽음을 당했었다”고 보고되고들 있기 때문입니다.
그 동일한 것이 아우구스투스의 의사에 대해서도 말해질 수 있을 것입니다. 그 의사는 아우구스투스에게 Pharsalia의 전투가 벌어지는 날에 자신의 진영을 가마를 타고서는 떠나라고 권하였는데, 그가 그렇게 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꿈울 꾸었던 것 외에는 왜 그가 그렇게 권했는지에 대해서 설명할 이유가 없었습니다.
그렇게 해야 할 필요가 무엇이었을까요?
왜, 이런 일이 인간의 기교에 의해서 추측되어질 수는 없었을까요?
여러 가지 희귀한 설명들이 있을 것을 의심하지 않습니다만, 나는 이렇게 믿기로 선택할 수 있겠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말씀 속에 언급되어 있는 꿈들에 대해서 아직 언급하지 않겠습니다. 나는 단순히 이 주제에 대해서 세속인들이 생각할 수 없는 것들에 대해서만 말하려고 합니다.
비록 아리스토텔레스가 모든 의미의 점술(divination: ‘예언’이라고도 번역가능)을 자유롭게 거부하고서는, 그 사안에 대하여 가지고 있는 편견을 통해서, 그리고 신성의 본질을 인간의 독창성의 범위 안에 제한시키려고 열망하면서, 자신의 기민함으로 모든 일들을 파악하려고 하였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렇게 고백합니다.
모든 꿈들은 그저 아무렇게나(rashly) 꾸어지는 것이 아니고, 만티케이(μαντκη), 곧 “점술”(divination: 예언)이라는 그것들 중의 어떤 것들의 원천이라고 하였던 것입니다. 물론 그는 그것들이 지성에 속하는 것인지 아니면 정신의 감각적인 부분에 속하는 것인지에 대해서 논박하고서는, 결론을 내리기를 후자에 속하는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그 후, 꿈들이 그러한 종류의 원인들이거나 아니면 그 어떤 것인지에 대해서 질문을 받았을 때, 그는 그것들을, 단지, 생각하지 않는 중에 우발적으로 일어나는 현상들이나 사건들로서만 보려고 하였습니다. 그러면서, 꿈들이 하늘로부터 보내졌다는 것을 받아들이지 않으려고 하였습니다. 그렇게 할 수 없는 이유로서, 그는, 많은 바보같은 사람들이 꿈을 꾸는데, 그들 안에서는 가장 지혜로운 사람들과 꼭 같은 이유를 드러내고 있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그 다음에 언급하기를 그는 야생의 짐승들, 그 중에 어떤 것들, 예를 들면, 코끼리 같은 것은, 꿈을 꾼다고 언급합니다. 야생의 짐승들이 꿈을 꾸기 때문에, 그리고 지혜로운 자들은 가장 조악한 바보들보다 덜 꿈을 꾸기 때문에, 아리스토텔레스는 꿈들이 신적으로 영감되는 것이 가능할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않는 것입니다.
우리는 철학자들이 그 단어를 사용하고 있는 그 의미를 알고 있습니다. 그 단어에 대해서 성경은 대개 나쁜 의미로 사용하고 있습니다. 그는 꿈들이 그 대기의(aerial) 영감들에 의해서 발생하는 것이지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것이 아니라고 말합니다. 그가 말하기로는, 인간의 본성은 신적인 것이 아니고 더 열등한 것이지만 그것은 지상적인 것 이상인데, 천사적(angelic)인 것이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키케로는 이 주제에 대해서 아주 상세하게 그의 점술(Divination)에 대한 첫 번째 책에서 논설합니다: 플라톤의 아카데미의 제자이면서도 비록 두 번째 책에서는 그가 말하였던 모든 것을 반박하고 있지만 말입니다. 신적인 존재들에 존재에 대한 입증을 위한 다른 논증들 중에서, 그는 꿈을 첨가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만약 꿈속에서 어떤 “예언”(divination: 점술)이 있는 것이라면 하늘에 하나의 신성이 있다는 것이 뒤따릅니다. 왜냐하면 인간의 정신은 신적인 영감 없는 어떤 꿈도 생각할 수 없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키케로의 추론은 타당합니다: 만약 꿈 속에 예언(divination)이 있다면, 그러면 또한 하나의 신성도 있는 것입니다.
Marcobius에 의해서 제공된 구분이 언급할 가치가 있습니다. 비록 그가, 불완전한 인간됨을 통해서, 분별이나 정돈도 없이, 종(種: species)과 유(類: genera)를 무식하게도 혼동하고 있다 하더라도 말입니다. 그러면, 이것이 고정된 채로 남아 있어야 합니다. 곧, 꿈들 속에서 어떤 종류의 신적인 개입이 존재한다는 것에 관한 의견이 모든 인간의 심정 속에 성급하게 심겨지는 것이 아니라는 점 말입니다.
그래서, 호머가 표현하기를, 하나의 꿈이 쥬피터로부터 온다고 한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는 이것을 일반적인 것으로 의미해서 모든 꿈들에 아무렇게나 사용하고 있지 않습니다. 오히려 그는 자신이 그리고 있는 영웅들의 성격을 우리들 앞에 묘사할 때 그들이 그들의 잠 속에서 신적으로 교훈을 받게 되었기 때문에 그것을 언급하고 있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