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나 우리의 교리는 세계의 모든 영광 위에 우뚝 솟아나야 하고 일체의 세상의 권세가 정복할 수 없는 것이어야 합니다. 그것은 이 교리가 우리에게서 나온 것이 아니라 살아계신 그리스도에게서 나온 것이기 때문에 성부께서는 이 그리스도를 왕으로 세우셔서 바다에서부터 바다까지와 강에서부터 땅끝까지 다스리도록 하셨습니다(시 72:8). 그리고 이미 예언자가 주의 통치의 위엄에 대해 예언한 것처럼(단 2:32-35; 사 11:4; 시 2:9) 토기장이가 질그릇을 쳐서 산산이 부서뜨리듯 하나님은 철과 구리처럼 강하고 금과 은처럼 찬란한 온 세상을 그의 입의 막대기로 쳐서 흩어버리실 것입니다.
실제로 반대자들은 우리가 거짓되게 하나님의 말씀을 우리 자신의 구실로 삼아 오히려 그것을 악하게 부패시킨다고 외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악의에 찬 중상일 뿐만 아니라 심히 뻔뻔스러운 행동이라는 것은 폐하께서 우리의 고백을 읽으시면 폐의 분별력으로 판단하실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여기서 폐하의 열심과 관심을 일으키기 위해서 혹은 적어도 우리의 신앙고백을 읽을 수 있는 길을 마련해 드리기 위해 무엇인가 더 말씀드려야 하겠습니다. 바울은 모든 예언은 “믿음의 분수대로”(롬 12:6) 하라고 주장하여 성경해석의 명백한 표준을 세웠습니다. 그러므로 만약 이 표준에 따라 우리의 신앙이 검토되기만 한다면 승리는 분명히 우리의 것이 될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옷을 입기 위해 일체의 덕을 벗어 버렸다는 것, 하나님에 의해 생명의 충만함을 얻기 위해 우리에게는 어떤 선도 없다는 것, 바로 하나님이 주시는 자유를 얻기 위해 우리가 죄의 노예라는 것, 우리가 바로 하나님의 빛을 받아야 할 눈먼 자라는 것, 우리는 하나님에 의해 바로 세워져야 할 절름발이라는 것, 우리가 바로 하나님의 도우심을 받아야 할 약한 자라는 것, 그리고 하나님만이 영광을 받으셔야 하며, 하나님 안에서 우리 자신을 자랑하도록 하기 위해 자랑의 모든 기회를 우리에게서 제거하였다는 것, 이런 사실을 인식하는 것보다 더 신앙과 일치하는 것이 무엇이겠습니까? (고전 1:31; 고후 10:17)
우리가 이러한 사실과 이와 유사한 것을 말하면 반대자들은 우리의 말을 가로막고 그것은 자연의 맹목적인 빛, 가공적인 준비, 자유의지, 영원한 구원에 공로가 되는 선행, 그리고 일체의 공덕(superagatio)까지도 무너뜨리는 것이라고 불평합니다. 왜냐하면, 저들은 일체의 선, 덕, 의, 지혜에 대한 찬양과 영광이 전적으로 하나님께 돌려져야 한다는 것을 용납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어떤 사람이 생명의 샘에서 물을 너무 많이 마셨다고 책망받았다는 말을 우리는 아직 한 번도 들어본 적이 없습니다(요 4:14). 이와는 반대로 우리는 스스로 물을 저축하지 못할 터인 웅덩이를 판(렘 2:13) 사람들이 책망을 받은 것을 알고 있습니다. 더욱이 그리스도를 우리의 형제요 화목자로 믿는 곳에 하나님이 화목하게 하시는 아버지가 되신다는 것을 확신하는 것과 또 우리에게 말로 표현할 수 없는 큰 사랑으로 우리를 사랑하셔서 자기 아들을 아끼지 않으시고 모든 사람을 위해 내어주신(롬 8:32) 그 하나님으로부터 일체의 번영과 축복을 기대하는 것보다 더 신앙에 적합하고 또 신앙과 일체하는 것이 무엇이겠습니까?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