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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halom aleikhem !

שָׁלוֹם עֲלֵיכֶ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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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22-01-27 17:19
청년의 때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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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글쓴이 : gopeace
조회 : 1,305  

청년의 때

존 칼빈

 

1. 도입: 왜 뻔한 말씀을 주시는가 - 무딘 영과 더딘 실천

지난 주일 우리는 본 시편의 논지가 무엇인지, 그 용도가 무엇인지 그리고 우리가 받을 수 있는 교훈이 무엇인지를 밝혔습니다. 그것은 신자가 가장 큰 애정을 가지고 하나님의 말씀을 읽고 그것을 확신하도록 부추김을 받는 법을 배우는 것입니다. 누구보다도 탁월한 다윗도 이것을 배워야 했다면, 아직도 이렇게 무지하고, 다윗처럼 하나님의 학교에서 유익을 얻기에는 너무도 거리가 먼 우리는 더 더욱 배워야 하지 않겠습니까? 사람들이 얼마나 냉담한지, 나귀처럼 자극 받지 않고는 깨닫지를 못합니다. 이런 까닭에 다윗은, 우리 각자가 하나님이 그의 율법과 성경 전체에서 우리에게 보여주시는 것을 보고 듣는 일에 전념할 경우, 이 지속적 연구에서 무슨 유익과 이득을 얻는가를 지적하는 것입니다.


이제 그는 “청년이 무엇으로 그의 길을 깨끗하게 할 것인가 주의 말씀을 따라 주의할 것이다,” 또는 “주의 보호 가운데 있을 것이다”라고 말합니다. 그가 여기서 지적하는 것은 만일 우리가 규정된 대로 순수하고 단순하게 우리의 삶을 정하려는 마음을 갖는다면 마땅히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선포하신 길을 견지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자신의 지각에 기대를 걸어서도 안되며, 자기 보기에 좋은 것을 만들어도 안되고, 다만 하나님이 우리를 다스리시고 우리는 단순히 그에게 순종해야 합니다. 


간단히 말해, 사람들의 모든 지혜와 그들의 삶의 모든 완전함은 하나님을 좇고 그의 뜻에 맡기는 것이라는 게 다윗의 논지입니다. 물론 이 말씀이 얼핏 보기에는 언급할 필요조차 없을 정도로 너무나 상식적인 게 사실입니다. 이것을 모르는 자가 누구며, 이것을 고백하지 않는 자가 누구이겠습니까? 고백으로 말하면 충분히 일상적인 것이지만, 그러나 여기 기록된 것을 확신하는 자는 얼마나 적습니까? 아니면 설령 우리 머리 속에 무슨 생각이 있다 하더라도 실천은 어떻습니까? 실천하는 자들은 매우 적잖습니까. 그러므로 이것이 쓸데없는 것이라고 생각하지 맙시다. 하나님의 영이 우리에게 제시하는 규칙은 우리의 삶을 그의 말씀에 따라 교정하는 것이요, 이것 없이는 모든 것이 쓰레기와 오물에 불과하며 우리가 길을 잃고 어떤 길도 잡을 수 없다는 것을 아는 것입니다. 우리가 보기에는 정반대 같지만 말입니다.

 

2. 왜 하필 청년인가


하지만 왜 여기서 특별히 청년이 언급되고 있는지를 살펴야 합니다. 사실 하나님이 그의 율법을 큰 자나 작은 자, 노인이나 젊은이 모두에게 주신 것은 확실합니다. 그리고 우리가 유년 시절부터 무덤에 이를 때까지 계속 배워야 하는 것도 확실합니다. 그렇다면 어째서 다윗은 이 율법의 가르침을 청년에게 제한하고 있습니까? 물론 이 가르침이 노인을 염두에 두지 않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나 그가 이렇게 말한 데에는 두 가지 이유가 있습니다.


1) 가장 고삐 풀린 때
우리는 끓어 넘치는 젊음이라는 게 무엇인지 알고 있으며 사람들에겐 그런 열정이 있다는 것과 그것을 붙들어 맬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젊은이들에게 있는 이처럼 끓어 넘치는 감정을 제거한다는 것이 너무도 어렵지만, 다윗은 하나님의 말씀이 좋은 처방이 될 것이라고 명백하게 지적합니다. 그는 마치 이렇게 말한 셈입니다. ‘실로 젊은이들은 길들일 수 없는 야수처럼 길을 잃으며, 대단한 열정을 갖고 있어 끝도 없고 고삐로 묶어 둘 수도 없어, 잡았다 싶으면 빠져나가는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그들이 하나님을 따른다는 생각을 갖는다면, 확실히 잘 길들여질 것이다. 비록 그들의 열정이 넘쳐 난다 할지라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의 열정에서 절제(modestie)도 보이며, 평온하고 온유한 태도도 보일 것이다.’ 그러므로 악은 젊은이들이 하나님께 굴복하기를 원치 않는다는 데 있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모든 말씀 안에서 그들의 모든 악을 충분히 치유할 수 있는 좋은 방법을 발견할 수 있는데도, 그렇게 하기를 원치 않기 때문입니다. 본문의 목적은, 하나님의 말씀 안에는 놀라운 능력이 있어서 사람들에게 있을 수 있는 가장 과도한 정열도 제거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려는 것입니다. 이것이 첫째 이유입니다.


2) 한시라도 빨리 말씀으로 살아야
둘째 이유는, 젊은이들이 될 수 있는 대로 빨리 말씀으로 돌보심을 받아야 할 필요가 있다는 것을 그들에게 보여주시고자 했다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을 경우 그들은 너무도 악에 빠져들 것입니다. 그들은 본성상 주의를 기울이지 않고 신중하지 않을수록 더욱 쉽게 악으로 기울어지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그들을 이 필요성으로 경고하여 그들이 더욱 주의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연구하는 일에 전념하도록 하셨습니다. (요컨대) 그는 우리가 그의 뜻에 따라 교육받기를 원한다면, 일찍부터 하나님의 학생이 되기 시작해야 한다고 일반적으로 모든 사람들에게 경고하려 하신 것입니다. 우리는 솔로몬이 전도서에서 한 말을 알고 있습니다. 즉 덧없는 노년의 때가 이르기까지 기다릴 것이 아니라, (젊어서부터) 하나님을 기억하고 생각하기 위해 육체에 속한 것을 잘라 내고 깨뜨려야 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지각과 분별력을 주신 때부터 즉시 시작합시다. 그리고 이것을 끝까지 지속합시다. 이것이 우리가 주의해야 할 교훈입니다.


사실 우리는 지금 이 세상에는 물론 모든 시대에 군림했던 온갖 지나친 일들과 방종의 근원이 무엇인지를 봅니다. 그것은 하나님께 순종하지 않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그때[하나님께 순종할 때]라야 우리에게 선한 질서를 유지시켜 주기에 충분한 고삐를 갖게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물론 우리가 성경에 담겨 있는 가르침에 굴복되기를 허용한다는 조건하에서 말입니다. 그러므로 사람들이 자진해서 하나님의 편에 가담하는 이 겸손을 갖는다면, 바랄 수 있는 최상으로 세워진 모습들, 곧 천사의 질서를 보게 될 것입니다. 그런데 어떻습니까? 세상은 하나님께 그에 합당한 대로 순종하려 하지 않으며 이런 도리(raison)에 이르지 못합니다. 이런 까닭에 세상일이 이토록 꼬여 있는 것입니다. 


어쨌든 우리는 변명할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우리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자신을 드러내시고, 만일 우리가 그의 말씀을 좇는다면 만사가 형통하며 우리의 길이 순수하고 깨끗하며 우리의 삶에 진정한 완전함이 있으리라고 선포하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이렇게 그의 율법을 증거하실 때, 사람들은 그들을 선하게 인도하시려고 했던 하나님을 배반했음을 알게 될 것입니다. 분명 모든 입은 닫히고 그들은 파멸될 것입니다. 이것이 또 다른 이유입니다.


나아가, 만일 너무나 패역한 마음이 우리에게 있어서 우리의 탐욕이 마치 야수와 같고, 그래서 우리 힘으로 그것을 제거할 수 없다면, 우리 하나님이 우리를 그 자신과 연합시키기 위해 그의 말씀에 힘을 주시리라는 것을 압시다. 물론 우리가 이 목적을 지향한다는 조건으로 말입니다. 그렇다면, 여기서는 (이미 내가 밝힌 대로) 분명 이미 나이 든 사람들에게는 없는 보다 과도하고 넘치는 청년기의 부패에 대해 언급하고 있습니다. 어쨌든 큰 자나 작은 자 모두 그들이 하나님께 합당한 영예를 드린다는 조건하에, 즉 그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좇는다는 조건하에, 그들의 성향과 그들의 방종한 탐욕을 제거하는 데에 이를 수 있을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우리는 내가 이미 언급한 권면에 유의해야 합니다. 즉 다윗이 여기서 사람들에게 지적하고자 한 것은 그들이 일찍부터 하나님의 학생이 되어 그의 지배를 받기를 시작해야 하며, 그의 전생애 동안 이 연구를 지속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 일에 있어 지혜자가 되기 위해 무덤에 이를 때까지 기다리지 맙시다. 이는 “틈 있을 때 회개하러 오겠습니다”라고 하나님을 조롱하면서 낄낄대는 익살꾼들과 다를 것이 없는 일입니다. 오직 선한 갈망만이 있어야 합니다. 사탄이 그들로 하여금 하나님의 인내를 멋대로 남용하는 데로 밀어부치는 것이 확실하기 때문에, 이처럼 미치지 않도록 주의합시다.



3) 절제야말로 참 지혜

이제 우리가 청년 시절부터 하나님의 학생이라고 여기에 기록된 말씀을 좇읍시다. 무엇보다도, 이미 언급했듯이, 젊은이들에게 특별한 교훈이 여기에 주어진다는 것에 유의합시다. 사실 다윗은 다른 사람들에게보다도 그들에게 더욱 바짝 죈 고삐가 필요하다는 것을 지적하고 있습니다. 사실 하나님 앞에서는 우리 모두가 어리석고 어린아이와 같습니다. 물론 나는 오랜 경험이 있으며 사람들 앞에서 제법 진중함을 보이는 노인들에 대해서도 똑같이 말합니다. 이들도 하나님 앞에서는 우매함과 무지투성이라는 것이 너무도 명백합니다. 심지어 우리는 다윗이 다른 구절에서 한 고백을 듣습니다. 그는 자신이 이성도 아무런 신중함도 없는 소와 길 잃은 짐승과도 같다고 말합니다. 


그토록 탁월한 선지자였던 그에게 이런 일이 생겼다면, 하물며 우리는 어떻겠습니까? 그러므로 노인들도 하나님의 지혜의 학교에서 많은 유익을 얻어야 합니다. 그러나 다윗이 여기서 특별히 젊은이들에게 훈계하는 것은 쓸데없는 일이 아닙니다. 어째서 그렇습니까? 그것은 내가 이미 밝힌 대로, 이 시기가 어느 때보다도 무분별한 시기이며, 많은 이들이 사탄과 육체에 굴복하기 때문입니다. 한편 젊은이들이 아무런 판단이나 신중함도 없으며 이처럼 그들의 엄청난 열기를 품어낼 뿐입니다. 더군다나 절제를 갖거나 남이 해주는 훈계를 받아들이기는커녕, 누군가 그들을 책망하고 비난할 경우, 당연히 화를 낼 이유가 있는 사람들보다 더 오만하고 더 반항적으로 나옵니다. 


오늘날 모든 사람들이 이런 정도로 방종하고 있는 것입니다. 사실 절제야말로 젊음이 갖는 올바른 힘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젊은이들이 알아야 할 것이 여기 있습니다. 그들에게는 노인들에게 있는 것과 같은 신중함과 분별력이 없기 때문에 노인들의 말을 들어야 한다는 것과, 자신들의 망상과 자신들의 지각에 빠져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젊은이에게 있어야 할 으뜸가는 지혜입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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