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왜 삼가고 깨끗케 해야 하는가 - 훈계는 곧 심판의 경고이기에
그런데 어떻습니까? 오늘날 젊은이들은 끝까지 뻔뻔스럽습니다. 이점에서 우리는 세상이 거의 완전히 절망적이며 모든 악의 절정에 이르렀음을 봅니다. 사실 우리는, 흔히 말하듯, 아직도 코를 풀 줄 모르는 더러운 아이들을 볼 것이며, 누군가가 그들에게 말하는 것을 전혀 고려하지 않고 오히려 제멋대로 하기를 바라는 이런 더러운 젊은이들은 지금부터 십 년 정도는 회초리로 맞아야 할 것입니다. 그런 사람들 속에 있는 걷잡을 수 없는 교만을 볼 때, 그들이 사탄에 사로잡혀 있어서 스스로 결코 치유될 수 없는 자들로 드러났다는 말 외에 무슨 말을 하겠습니까?
그러므로 그가 “청년이 무엇으로 그의 길을 깨끗케 할까요, 주님 당신의 말씀을 지키는 일일 것입니다”라고 말씀할 때, 더욱 우리는 이 구절에 유의해야 합니다. 물론 이 훈계를 들을 필요가 있는 많은 사람들이 뚫린 귀를 가지려 하지 않는 것은 사실입니다. 왜냐하면 그들은 성전을 멀리하고, 갖고자 하는 것을 가지며, 술집과 오락실과 도박장에 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어떻습니까? 하나님이 그들을 꾸짖으실 때, 이 교훈은 그들을 정죄할 것입니다. 이는 마치 그가 솔로몬을 통해 다음과 같이 주장하신 것과 같습니다. 그는 지혜를 끌어들여 “내가 길거리에서 부르며, 큰 자들과 작은 자들 모두에게 내 말을 들으라고 권했지만, 아무도 나를 영접하지 않았고, 내가 머물 곳을 찾지 못했다”라고 말씀했습니다.
따라서 하나님께서 그의 말씀을 지킴으로써 우리의 삶이 단정해질 것이라고 선포하셨다는 것은 이 교훈과 훈계를 회피하는 모든 이들이 마지막날 계산을 치러야 할 것을 의미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이 그들을 부르셨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그들은 막힌 귀를 가졌을 뿐만 아니라 이 악을 첨가했습니다. 즉 하나님이 그들을 이탈했던 구원의 길로 되돌리기 위해 말씀으로 행하신 훈계를 그들이 회피했다는 것입니다. 분명히 “주의 말씀을 따라 삼갈 것”이라고 기록되었습니다. 다윗이 표현하고자 했던 사실은, 사람들이 스스로 믿기를 자신이 얼마든지 조심스럽고 신중하다고 할지 모르나, 이미 기록된 말씀을 좇아 하나님이 지배하시도록 맡기지 않는 한, 그런 것들이 아무 소용이 없다는 것입니다.
4. 왜 전심으로 구해야 하는가 - 가만있으면 세상에 휩쓸리기에
이제 이어지는 것은 “내가 전심으로 주를 찾았사오니 주의 계명에서 떠나지 말게 하서”라는 말씀입니다. 다윗은 여기서 모든 사람에게 공통되지 않은 아름다운 고백을 합니다. 즉 그가 전심으로 하나님을 찾았다는 것입니다. 사실, 비록 우리에게 하나님께로 갈 다소간의 욕망이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것은 너무도 약해서 가련하기 그지없습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수많은 허영으로 넋빠져 있으며, 우리 안에는 세상이 지배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우리가 선한 헌신을 여전히 위대한 것으로 느낀다 하더라도 가만히 있으면, 자동적으로 그것을 포기하는 것이 됩니다. 그러므로 다윗의 모범을 따라 전심으로, 즉 삶의 주목적으로 이 목적을 지향하는 데서 이탈하지 않는 완전함으로, 하나님을 찾았다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은 별로 없습니다.
물론 다윗이 자신의 육체의 가시와 싸우지 않아도 될 정도의 그런 완전함을 갖지 못했음도 사실입니다. 이는 성 바울이 그가 마치 절뚝거리면서 하나님께 나아간다고 고백하는 것과 같습니다. 그는 자신이 원하고 바라는 선을 행하지 않고 그의 본성적 악에 붙잡혀서 자신이 정죄하는 악을 행한다고 말합니다. 다윗에게도 그런 유혹이 없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어떤 유혹에서도 그가 지향한 목적은 하나님을 섬기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이 모범에서 멀리 떨어져 있습니다. 오늘날 가장 열심이 있는 자들도 많은 악과 이 세상의 헛된 염려 및 많은 육체의 탐욕에 붙들려 있기 때문에, 그들이 매일 한 걸음씩 움직여 단 한 발자국이라도 전진한다면 그것만으로도 대단하며, 때로는 전진하기는커녕 후퇴하는 일도 생길 것입니다. 어쨌건 다윗은 그가 하나님을 전심으로 찾았다고 고백한 뒤 그가 계명에서 벗어나는 것을 허락하지 말아 달라고 요구합니다.
이점에서 우리는 하나님께서 강한 손으로 우리를 붙드시기까지 얼마나 그에게 부르짖을 필요가 있는가를 봅니다. 비록 이미 그가 우리 안에서 힘있게 활동하셨고, 또 그가 우리에게 큰 은혜를 베푸셨음을 우리가 안다 해도, 그것이 전부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본성상 너무나 악하고 불완전하며, 또한 우리는 너무도 허약하고 나약해서 우리가 그의 계명에서 떠나지 않도록 해 달라고 날마다 하나님께 기도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다윗이 전심으로 하나님을 찾았다고 고백한 뒤,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님, 내가 잘못되는 것을 허락하지 마소서”라고 덧붙였다면, 하물며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하겠습니까?
그러므로 조심스럽게 길을 가는 법을 배웁시다. 사실 우리에게 선한 의지를 주시고 또한 그것을 행할 능력을 주시며 그의 은혜를 따라 모든 것을 주시는 이가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사탄이 불시에 우리를 사로잡지 못하도록 그리고 그가 우리 안에 결코 들어오지 못하도록 두려움으로 행하며 철저히 감시해야 합니다(라고 성 바울은 말합니다). 이것이 어떤 이들이 한동안 절반은 천사와 같은 선한 모습을 보이다가 방탕하는 이유입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그들을 절망 상태로 내버려두실 때 끝까지 그들이 타락하는 것을 봅니다.
그들이 왜 그렇게 됩니까? 그들이 스스로 생각하기를 ‘이 정도면 충분하다, 완전하다’고 하는 이 미지근함 때문입니다. 성 바울은 정반대로 말합니다. “나는 끝에 도달하지 못했고 다만 노력한다.” 그가 “나는 노력한다”고 말하는 것은 곧 그의 안에 겸손함이 있는 것입니다. 이 겸손은 우리로 하여금 다윗의 모범을 따라 하나님께 부르짖도록 하게 합니다. 그가 이 구절에서 우리에게 보여주듯이 말입니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