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장로교회 목사인 마이클 호튼(Michal Horton)은 <미국제 복음주의를 경계하라> 라는 책을 써서 우리에게 경종을 울린바가 있다. 실용주의는 기독교에 신앙에 있어서 공산주의 보다 더 위험한 존재이다. 실용주의를 잘 이해하고 경계하지 아니하면 ‘교회의 세속화’를 막을 길이 없다.
실용주의(pragmatism)는 19세기 후반 미국을 중심으로“실제 결과가 진리를 판단하는 기준”이라고 주장하는 철학사상이다. 행동을 중요시하며, 사고나 관념의 진리는 반드시 실험적인 검증을 통하여 객관적으로 타당한 것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주님 말씀처럼 나무와 열매가 모두 중요하지만, 나무는 반드시 열매를 통해서 검증 받아야 한다는 것이다. 대표적인 학자는 윌리암 제임스(1842~1910)와 존 듀이(1859-1952) 이다. 실용주의사상이 대세를 이루게 된 것은 산업혁명의 영향이었다. 우리가 실용주의 영향으로 기술적으로는 거인일지 몰라도, 도덕적으로, 지성적, 영적으로는 ‘난장이’에 불과하다. 역사가 토인비의 예고대로“현대문명의 위기는 물질문명이 토끼걸음으로 달리는데 비하여, 정신문명이 거북이걸음으로 걷는데 있다”인류는 지금 정신문명의 큰 위기를 맞이하고 있다.
오늘의 기독교가 큰 위기를 맞이하고 있는 것 역시 실용주의 영향이다. 교회의 세속화는 실용주의의 산물이다. 교인 수가 느는 것이 복이나 성공으로 간주되고 있으며, 교회가 이 목적을 이루기 위해서는 어떤 일을 취하든지 정당화 되고 있는 현실이다. 목회자들 대부분이 ‘바른 교회’와 ‘거룩한 생활’에 우선순위를 낮게 두기 때문에 오늘의 교회 영적인 상태는 부실하기 짝이 없다.
긍정적 사고나 적극적인 사고를 주장하는 로버트 슐러나 오스틴 목사 등이 실용주의 신앙의 좋은 례이다. 이것이 나쁜 것은 아니지만, 지나치게 강조 하다보면 복음이 가려지는 잘못을 범하게 된다. 로버트 슐러가 목회하던 수정교회가 팔린것도 실용주의 신앙의 결과를 잘 보여주는 하나의 실례이다.
올바른 신앙이란 ‘마음으로 믿고 입으로 시인’하는 것이다. 그러나 감정중심의 신앙은 주로‘입’으로만 표현하는 쪽으로만 발전이 되어있다. ‘마음’으로 믿는 바를 ‘입’으로 표현하는 신앙고백은 놀라운 능력이 있다. 그래도 미국의 교회가 지금까지 지속되어오는 것은 그들의 ‘거룩한 조상. 청교도들의 신앙바탕’ 때문이다.
그리스도다운 삶이 불가능 한 것은 실용주의 영향 때문이다. 기도, 찬양, 예배 모두가 실용주의에 젖어있다. 하나님께 영광, 헌신 섬김, 나눔 사랑은 입에 달린 구호일 뿐 실제로 그러한 행위의 열매는 없다. 마지막 날에 많은 사람들이 주님 앞에 와서 주님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고, 많은 능력을 행하며, 주의 일을 많이 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주님 앞에 와서 칭찬과 상급은커녕 호된 책망과 더불어 버림받게 될 것이라고 하였다. (마7:22-22)
좋은 열매를 위해서는 먼저‘좋은 신앙의 사람’이 되어야 한다. 요한복음 15:4에서 구체적으로 잘 가르쳐 주고 있다. “내 안에 거하라 나도 너희 안에 거하리라 가지가 포도나무에 붙어 있지 아니하면 스스로 열매를 맺을 수 없음 같이 너희도 내 안에 있지 아니하면 그러하리라”
인간 스스로는 선한 열매를 맺을 수가 없다. 인간은 본능적으로 ‘이기적’이고 ‘자기중심적 존재’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일을 하려면 철저하게 하나님의 인도를 받아야 한다.
실용주의와 감정에 치우친 미국 교회의 신앙을 답습하는 것은 사약과 같다. 교회가 살아나기 위해서는 하루 바삐‘세속화’의 주범 실용주의 신앙사슬에서 벗어나야 한다.
출처: 기독교헤럴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