눅13:6-9
무화과나무에 특징이 있다면 관상용으로 전혀 부적절한 볼품이 없는 나무요 이리저리 비틀어지고 제멋대로 퍼져 재목으로 쓸 만한 나무가 되지 못합니다. 게다가 아름다운 꽃도 향기도 없습니다.
이 나무에서 오로지 한 가지 찾을 것이 있다면 그것은 열매입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의 나무는 이 열매까지도 맺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꽃도 재목도 향기도 없는 이 나무가 열매까지 맺지 못했다는 것은 결국 그 존재의 이유가 없어졌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무화과나무의 비유를 통해 새해를 맞이한 우리에게 전달하시고자 하는 하나님의 뜻을 살펴보면서 은혜를 나누도록 하겠습니다.
1. 열매 맺지 못하는 무화과
본문의 무화과가 열매를 맺기 위해 존재하듯이 하나님이 지으신 세상 만물은 그 존재해야 할 목적이 있습니다. 더욱이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 받은 우리 인간에게 목적이 없을 수 없습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무화과 같은 열매를 맺게 하시려는 데 그 목적이 있습니다(골 1:10). 그러나 본문처럼 열매를 맺지 못하는 무화과가 있습니다.
1) 잎만 무성합니다.
대개 잎이란 열매를 맺기 위한 수단으로 사용되어지는 것입니다.
그러나 무화과는 아무리 잎이 많아도 열매를 대신할 수 없습니다.
그런데 사람들이 열매 대신 잎만 무성하게 합니다. 즉 이것은 신앙인으로서의 목적 보다 세상적인 것에 더 목적을 두고 있는 모습이요 신앙의 참다운 실천보다 의식적이며 형식적이요 외식적인 행동이 난무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알맹이 없는 껍질만 가진 믿음이라는 것입니다 (마 23:1-7).
2) 땅만 버립니다.
하나님이 내리시는 하늘의 양분은 무한정이지만 땅의 양분은 한정적입니다. 농사에 관심이 있는 분이면 이 말을 빨리 이해할 수 있을 것입니다. 땅의 한정적이요 천연적인 양분이 다 없어지면 아무리 거름을 주고 기름지게 해도 곡식이 잘 자라지 않습니다. 다른 데서 새로운 흙을 갖다 붓든지 아니면 얼마간 그 땅을 그대로 놀려야 합니다.
이렇게 한 번 땅을 망쳐 놓으면 다시 농사하기가 무척 힘이 드는데, 이것은 신앙 외적인 목적으로 하나님의 교회를 이용하며 그 목적이 충족되어질 때까지 교회의 많은 에너지를 빨아먹는 것과 같습니다. 그래서 결국 하나님의 밭인 교회와 주의 일에 큰 상처를 남기고 다른 곡초나 다음의 농사까지를 망쳐 놓는 것입니다(고전 10:32-33).
2. 과원지기의 은혜를 입은 무화과
본문을 보면 주인이 '삼 년 동안 실과를 얻지 못했다'고 하였습니다. 즉 삼 년 동안을 기다려 주었다는 것이요 참아 주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제는 주인은 이 나무를 찍어 없애버리려 하였지만 과원지기의 만류로 그 생명을 건질 수가 있게 되었습니다. 이처럼 과원지기이신 우리 주님께서 하나님의 진노를 가로막고 중재하셔서 우리를 멸망과 심판에서 건지셨습니다. 이 과원지기의 은혜가 없었다면 우리는 진작 하나님의 진노의 불에 태워졌을 것입니다(엡 2:3-7).
1) 주인의 진노를 막아 주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악하고 교만한 심령들이 회개하고 돌아오기를 기다리고 계시지만 그 기다림의 인내에는 한계가 있습니다. 죄의 경우에 따라 참으시긴 하지만 무한정 사랑으로 기다리시지는 않습니다. 본문 말씀대로 3년을 참았다는 것은 필요한 만큼, 충분히 많이 참았다는 것입니다. 이 한계점은 노아의 홍수요, 소돔과 고모라의 멸망이요, 이스라엘의 멸망이요, 장차 다가올 인류의 심판입니다.
이렇게 사랑의 한계를 지나 진노의 심판 아래 있게 되었지만 과원지기이신 주님은 '금년에도 그냥 두소서 내가 두루 파고 거름을 주겠나이다'라는 말씀으로 하나님의 진노를 막아 주셨습니다 (롬 5:6-11).
2) 새 거름을 주었습니다.
딱딱해지고 길가처럼 굳어진 땅에서는 나무가 바로 자라지 못합니다. 그런가 하면 거름이 없는 땅에서도 나무는 자라지 못합니다. 그래서 과원 지기는 두루 파고 거름을 주어 다시 열매를 맺게 해보겠다는 것입니다(겔 17:8).
이것은 주인의 판단과는 다르게 가망성이 있다는 것이요 소망이 있다는 것입니다. 즉 과원지기는 이 무화과나무가 본래 비관적이라고 보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무엇인가 잘못되어진 것만 보충하고 치료하면 충분히 열매를 맺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의 과원지기이신 주님께서는 지금도 우리의 열매 없는 신앙을 위해 '두루 파시고 기름지게'하십니다.
3. 희생으로 맺게 된 무화과
본문을 자세히 보면 핵심은 과수원지기의 태도입니다. 주인이 찍어버리라는데, 자신이 막고 나설 필요가 없습니다. 왜냐하면 그것은 그만큼의 수고를 더하기 때문 입니다.
그러나 이 과수원지기는 이 수고의 더함을 마다하지 않고 희생을 자초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 희생이 없다면 결코 무화과는 열매 맺지 못할 것입니다.
이 희생이 바로 '아가페'요, 그리스도의 십자가입니다(골 1:22).
우리의 열매 없음으로 해서 그리스도의 이 십자가 희생은 지금도 계속되어지고 있는 것입니다.
올해도 참으시는 하나님의 큰 은혜와 사랑을 기억하면서 나의 부족함을 회개하고 돌이켜 주의 일에 더욱 힘을 쓰심으로 나날이 멋진 그리스인의 열매 맺는 삶을 살아가시는 복된 한 해가 되시기를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축원 합니다(딛 3:14).
Dr. Daniel Ji (YALA 선교회 이사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