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날 한국 교회는 ‘간증의 시대’에 살고 있다. 유튜브를 장악한 기독 콘텐츠의 대부분은 누가 얼마나 감동적으로 하나님을 체험했는가에 집중된다. 심지어 주일예배조차 간증으로 채워지는 경우가 많다. 이렇게 개인적 체험이 교회의 중심을 차지하면서, 교회의 본질인 신앙고백은 점점 침묵당하고 있다. 한국 교회가 지금 맞고 있는 위기는 단순한 문화 현상이 아니라, 신학 없는 교회, 곧 탈 신학화(de-theologization)라는 심각한 구조적 문제다
신앙고백은 교회의 기초다
사도신조와 니케아신조(381)는 단순한 고백문이 아니다. 두 신조만으로 교회의 핵심 신앙고백과 신학적 기초가 충분히 담겨 있다². 니케아신조는 삼위일체와 그리스도의 참신성을 명확히 규정하여 교회의 신학적 기초를 확립하며, 사도신조는 공적 신앙고백으로 충분하다³. 이러한 신앙고백은 교회의 정체성과 연속성을 지탱하며, 교회의 존재 자체가 이 신조 위에 세워져야 함을 보여준다⁴.
그러나 오늘날 많은 교회에서 신조는 더 이상 제대로 가르쳐지지 않는다. 예배 중 신앙고백의 시간이 생략되거나 형식적인 절차로 전락한 지 오래다. 신자들은 “나는 예수님을 만났고 기쁘다”는 개인적 간증만을 신앙의 증거로 삼을 뿐, 자신이 믿는 내용을 정확히 설명하지 못한다. 신앙은 점점 신학적 기반을 상실한 감정 중심의 체험으로 축소된다⁵. 신앙고백이 사라진 자리는 각자의 체험과 정서적 느낌이 대신 차지하며, 교회는 공적 신앙 공동체의 성격을 잃어가고 있다.
간증의 역효과
간증은 본래 신앙의 열매이자 하나님의 은혜에 대한 감사의 표현이지만 최근 칼 트루먼은현대 교회에서 간증이 개인적 경험에 과도하게 집중되고, 하나님의 계시보다는 ‘나의 체험’을 우선시하는 경향이 강하다고 지적한다. “나는 이렇게 변화되었다”는 말이 곧 “신앙은 이렇게 변화되는 것이다”라는 일반화로 이어지고, 이러한 간증이 교리와 신학보다 더 많은 설득력을 지니며 교회 내 권위를 갖는 현상이 나타난다는 것이다⁶.
오늘날 교회 문화는 ‘체험된 신앙’이 ‘전통적 신앙’보다 더 진실하다고 여기는 풍조를‘체험된 신앙’이 ‘전통적 신앙’보다 더 진실하다고 여기는 풍조를 낳았다. 많은 이들이 자신이 느낀 감정이나 변화가 신앙의 진정성을 보증한다고 생각하지만, 신앙의 본질은 감정이 아니라 진리이다. 신앙의 핵심은 내가 무엇을 느꼈는가가 아니라, 교회가 누구를 믿는가에 있다⁷. 근대 이후 개인주의적 정체성과 감정적 자기표현이 신앙의 기준으로 자리 잡으면서, 신학은 점점 공적 언어로서의 기능을 상실하고 있다. 교회는 더 이상 공동체의 신앙을 고백하는 자리가 아니라, 각자의 체험을 나누는 무대로 전락하고 있는 것이다.
신학적 고백의 회복
이 시대 교회가 회복해야 할 것은 감정적 체험이 아니라 신학적 고백이다. “나는 이렇게 느낀다”보다 “교회는 이렇게 믿는다”는 공적 고백이 중심을 차지해야 한다. 사도신조와 니케아신조는 단순한 암송문이 아니라, 교회의 정통 신학을 압축한 신앙의 표준이다. 이 고백을 통해 신자는 자신의 신앙이 사적인 감정의 산물이 아니라 공교회적 믿음에 근거하고 있음을 확인한다⁸.
신조는 하나님의 구원 역사를 객관적으로 요약한 신학적 선언이며, 복음을 시대의 유행과 감정의 파도 속에서도 지켜주는 방파제다. 간증은 이 신조의 틀 안에서 해석될 때 의미를 가진다. 그렇지 않으면 신앙은 언제든지 왜곡된 감정의 포로가 된다. 교회가 신조를 잃는다는 것은 단순한 형식 문제를 넘어, 복음의 언어 자체를 상실하는 것이다.
오늘날 교회가 위기를 겪는 진짜 이유는 간증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신학이 사라졌기 때문이다.신앙고백이 없는 간증은 결국 ‘나’를 높이고, 신앙을 상품화하며, 진리를 사유화한다. 이제 교회는 다시금 신조의 언어로 복음을 고백해야 한다. 공적 신학 위에 세워진 신앙만이 교회를 교회되게 한다.
‘나의 간증’보다 ‘우리의 고백’을, ‘나의 체험’보다 ‘하나님의 진리’를 붙들 때, 교회는 비로소 복음의 공동체로 거듭날 수 있다. 그 고백 위에서만, 간증은 진정한 증언으로 빛날 수 있다.
[출처] 본헤럴드 (간증의 시대, 교회는 탈신학화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