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이 주신 은혜로운 선물인 은사로 성도를 섬기는 일이 전혀 기쁨이 안 되고 무거운 짐만 되는 것을 하나님은 절대 원하지 않으신다. 교회 사역은 무기력하고 우울하게 억지로 끌고 가는 것이 아니라 즐거이 헌신하는 예배와 아름다운 섬김이 되어야 한다.
그러면 당신의 심신이 지쳤다는 것을 어떻게 알 수 있는가? 교회 사역에 힘쓰면서, 당신의 마음이 분주해지거나 다른 이를 향하여 불평이 흘러나올 때, 단순히 지친 것이 아니라 지친 마음에 불필요한 스트레스가 쌓이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 쌓인 것을 해소하기 위하여 많은 이들이 택하는 자책과 회피는 올바른 해결책이 아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여전히 당신을 교회를 세우는 중요한 지체로 사용하기를 기뻐하시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교회 사역으로 지칠 때, 우리는 어떻게 번아웃에서 해방될 수 있을까? 어떻게 지친 상태에서 건강하게 회복할 수 있을까?
3. 교회 사역으로 지칠 때 올바른 해결책
많은 일로 염려와 근심에 빠진 마르다가 동생과 함께 예수님에 관한 불평을 터뜨렸을 때, 예수님은 그녀에게 이렇게 말씀하셨다:
마르다야 마르다야 네가 많은 일로 염려하고 근심하나 몇 가지만 하든지 혹은 한 가지만이라도 족하니라(41-2a절)
① 인정: 먼저, 예수님은 “마르다야, 마르다야”라고 두 번 부르시면서, 긴급하고 진중하게 그녀의 지치고 상심한 마음을 공감하시고 위로하셨다. 교회 사역으로 지칠 때, 한두 사람이 알아주는 것으로 큰 위로와 힘을 얻는 경우가 많다. 교회 학교 교사로 십수 년을 섬기면서 처음 뜨거웠던 열정이 점점 식어가는 것처럼 느껴질 때, 성도나 목회자가 개인적으로 찾아와 ‘지금까지 많이 수고한 것을 잘 알고 있어요. 우리 아이들이 영적으로 너무 큰 복을 얻었어요. 수고한 모든 것에 하나님께 진심으로 감사드려요’라고 진심으로 말해준다면, 아마도 큰 격려를 받고 새로운 힘으로 더욱 기쁘게 섬길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무기력할 때, 주님께서 모두 아신다는 사실에 큰 위로를 얻지 못할 때가 많다. 주님은 모두 아신다. 주님은 수고한 교회에게 “내가 네 행위와 수고와 네 인내를 알고…또 네가 참고 내 이름을 위하여 견디고 게으르지 아니한 것을 아노라”라고 칭찬하셨다(계 2:2-3).
예수님이 감당하신 공적인 사역은 누구라도 번아웃 증후군이 올만하다. 살인적인 일정 그리고 쏟아지는 비방과 조롱, 지겹도록 좇아다니는 방해꾼과 귀신의 세력들. 그나마 적지 않은 사람이 예수님을 칭송하고 믿음으로 그분의 사역을 인정해 주었는데, 중요한 건 예수님이 그것에 전혀 마음을 두지 않으셨다는 것이다: “예수는 그의 몸을 그들에게 의탁하지 아니하셨으니 이는 친히 모든 사람을 아심이요”(요 2:24). 사람의 인정을 기대하고 의존하기 시작하면, 결국 실망하기 마련이다. 사람은 언제든지 칭찬했다가 비방으로 돌아설 수도 있고, 그것으로 우리가 주님을 위한 사역의 동기를 삼는 데 턱없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예수님은 그래서 사람에게 인정을 바라지 않으셨다. 다만, 아버지의 인정을 구하셨다.
“아버지여, 아버지의 이름을 영광스럽게 하옵소서” 하시니 이에 하늘에서 소리가 나서 이르되 “내가 이미 영광스럽게 하였고 또다시 영광스럽게 하리라” 하시니(요 12:28)
주님의 인정을 구하라. 당신이 맡은 교회 사역으로 아버지 하나님의 이름을 영광스럽게 해달라고 구하라. 그러면 주님께서 응답하실 것이다: ‘내가 이미 너를 통하여 영광을 얻고 있고, 계속해서 영광을 얻으리라.’ 그것으로 충분하지 않은가? 하나님의 인정은 최종적이고 영구적이다.
② 진단: 주님은 이어서 마르다의 마음이 분주한 이유를 정확히 진단하셨다: “네가 많은 일로 염려하고 근심하나”(41b절). 주님은 그녀가 심신이 지쳐버린 이유를 엉뚱한 곳에서 찾지 않기를 바라셨다. 그녀가 번아웃을 겪는 것은 동생 마리아의 무관심 때문이 아니었다. 그것을 내버려둔 예수님의 무심함 때문도 아니었다. 그녀는 “많은 일” 때문에 “염려하고 근심”하게 된 것이었다. 외부 환경이나 다른 사람의 문제가 아니라 마르다 마음의 문제였다는 말이다.
자책과 회피가 교회 사역으로 지친 우리가 자가 진단에 실패한 결과라면, 주님은 올바른 진단을 내리도록 우리를 도우신다. 자기 자신을 건강하지 않은 방법으로 탓하거나 다른 사람에게 책임 전가하는 것으로는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 성경은 우리의 싸움은 일차적으로 마음에서 일어난다고 분명히 말한다: “너희 중에 싸움이 어디로부터 다툼이 어디로부터 나느냐 너희 지체 중에서 싸우는 정욕으로부터 나는 것이 아니냐”(약 4:1). “정욕”은 매우 강한 원함, 바람, 의지를 말한다. 마르다는 주님께 제대로 대접하고 싶은 마음이 강했을 것이다. 그 마음 자체가 잘못된 건 아니다. 그러나 많은 것을 준비하면서 어쩌면 시간 안에 혹은 생각한 모든 것을 완벽하게 해낼 수 없을지도 모른다는 염려와 근심이 깊어지면서, 그녀는 자기 정욕을 따라 분노하게 되었다. 말씀을 전하고 계신 예수님께 잘못이 있던 게 아니었다. 그 발아래 앉아 말씀을 듣던 마리아의 잘못도 아니었다. 문제는 마르다의 마음속에서 발생했고, 그러니까 그 문제의 올바른 진단도 마음 속에서 일어난 것을 다루는 것이 되어야 마땅하다.
교회 사역으로 지칠 때, 당신의 마음이 왜 무기력하고 우울한지 깊이 생각해 보라. 분명히 당신이 원하는 간절한 바람이 있을 것이다. 그 자체로는 선하고 아름다운 바람일 수도 있다. 문제는 그 갈망이 마음 중심을 차지하고 있다는 것이다. 내적 전쟁에서 잠시 승리하여 마음을 지배하고 있는 그 욕심을 발견하고,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과 성도를 사랑하는 마음으로 그 욕심을 정복해야 한다. 당신의 원수는 밖이 아니라 안에 있다. 마음을 차지한 원수를 밖으로 몰아내는 것이 번아웃과의 싸움에서 승리하는 비결이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