③ 처방: 주님은 마르다에게 실질적인 조언도 하셨다: “몇 가지만 하든지 혹은 한 가지만이라도 족하니라”(42a절).
‘그런 삐딱한 마음으로 대접할 거면 아무것도 하지 마라’라고 호통치신 것이 아니다. ‘됐으니까, 한 가지만이라도 제대로 해서 먹자’라고 비꼬면서 냉소를 보이신 것도 아니다. 마르다의 분주한 마음을 해결하시려는 주님의 실질적인 처방이었다. 우리는 마르다처럼 교회 사역으로 주님과 성도를 섬기면서 자기 기준을 만들 때가 많다. 예수님이 마르다에게 많은 것을 준비해 오라고 요청하신 것이 아니다. 마르다가 주님을 위하여 많은 것을 준비하고 싶었던 것이다. 마르다가 한 가지만 준비한다고 해서 예수님이 실망하실 일도 아니었다. 마르다의 마음에 차지 않았을 뿐.
교회 사역에 깊이 헌신하는 사람일수록 자기 기준을 만들기가 쉽다. 교회 학교, 예배 찬양팀, 특정 부서 등 여러 사역을 모두 잘 해내야만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 수 있다고 생각하다 보니까 그중 몇 개를 놓는 것은 불성실한 것이고, 하나님이 기뻐하지 않으실 것이라고 오해한다. 때론 각각의 사역을 책임지고 돌보는 리더가 노골적으로 그런 말을 하기도 한다: ‘유초등부를 내려놓는 것을 주님이 기뻐하실까?’ 이런 식으로. 하지만, 주님은 많은 일을 하기때문에 우리를 기뻐하시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반대로 우리를 기뻐하시기 때문에 우리에게 일을 맡기시는 것이다. 다 잘해야 한다는 부담을 내려놓으라. 몇 가지만 해도 좋고, 한 가지만이라도 충분하다.
성경은 “누가 봉사하려면 하나님이 공급하시는 힘으로 하는 것 같이 하라 이는 범사에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이 영광을 받으시게 하려 함이니”라고 말한다(벧전 4:11). 교회 사역은 일종의 “봉사”다. 교회에서 하는 모든 봉사는 “하나님이 공급하시는 힘”으로 하는 것이다. 우리는 여기서 “~같이 하라”는 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왜냐하면 교회 사역을 감당하면서 우리는 종종 우리 힘으로 모든 것을 하는 것 “같이 하”기 때문이다. 사역의 성과를 내가 주님을 위하여 이룬 업적으로 여기고, 반대로 사역의 성과가 잘 나지 않을 때 혹은 누가 그 성과를 알아주지 않을 때, 나의 실패로 보고(혹은 남들이 그렇게 볼까봐 염려하면서) 극도의 스트레스를 받는다.
주님은 우리에게 오직 ‘충성’만을 요구하신다. 그것을 잊지 말자. 많은 일이든 적은 일이든. 주님께서 주신 은사와 재능 안에서, 때론 주님께서 허락하신 상황과 환경에 제약을 받으면서, 우리에게 맡기신 것에 충성하면 된다. 그러면 주님은 “그것으로 족하니라”라고 흡족하게 말씀하실 것이다.
④ 우선: 주님은 마르다가 비판한 마리아에 관하여도 이렇게 한마디 말씀을 하셨다: “마리아는 이 좋은 편을 택하였으니 빼앗기지 아니하리라”(42b절). 교회 사역에 헌신하면서 상대적으로 덜 헌신하는(혹은 그렇게 보이는) 사람을 좋지 않은 시선으로 보는 이들에게 예수님의 이 말씀은 참으로 서운하게 들린다. ‘그러면 우리도 좋은 편을 택할 걸 그랬네요, 그럼 누가 실질적인 준비를 할까요?’ 이렇게 즉각적인 반응이 일어난다. 그러나 예수님은 마르다가 선택한 봉사를 평가절하하신 것도 아니고, 마리아에게 마르다를 돕지 말라고 금하신 것도 아니다. 예수님은 다만 이 상황에서 마르다에게 중요한 우선순위를 가르쳐주신 것이다.
주님께 드리는 봉사와 주님께 받는 말씀 중 무엇이 더 우선순위에 있을까? 당연히 주님께 받는 말씀이다. 앞서 말한 것처럼 우리는 “하나님이 공급하시는 힘으로” 봉사하기 때문이다. 드리는 것도 중요하지만, 교회 사역은 결국 우리가 주께 받아서 돌려드리는 봉사라서, 공급받는 것이 더 중요하다. 우리는 말씀을 통해 주께서 우리 수고를 알아주신다는 사실을 발견한다. 우리는 말씀을 통하여 마음의 문제를 바르게 진단하고, 그 원인을 엉뚱한 외부 환경이나 사람에게서 찾지 않는다. 우리는 성경이 증언하는 그리스도를 아는 지식에서 자라갈수록, 주를 위한다고 생각하는 ‘많은 일’이 아니라 몇 가지 혹은 한 가지라도 ‘주님을 충성스럽게 섬기는 것’이 훨씬 더 중요하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그래서 말씀이 우선이다. 말씀이 우리를 번아웃에서 벗어나게 하는 힘이 되기 때문이다. 교회 사역에 전심전력하느라 더 “좋은 편”을 “빼앗기”지 말라. 그러면 하나님이 공급하시는 힘에서 멀어지면서, 당신의 열정이 점점 사그라들기 시작할 것이다.
“번아웃 없는 사역의 비결”이란 제목이 다소 과장된 것을 인정한다. 교회 사역에 헌신하면서 우리는 수시로 지치고, 의무적으로 할 때도 분명 있으며, 게으르고 나태한 자신과 끊임없이 싸워야 한다. 하지만, 교회 사역에 헌신했던 모든 세월을 돌아볼 때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였음을 고백할 수 있기를 바란다. 나 같은 죄인을 구원하시어 당신의 피로 사신 교회를 위하여 사용하여 주신 것 자체가 헤아릴 수 없는 큰 특권이기 때문이다. 부족하고 연약하며 충성스럽지 못할 때도 많은 나를 날마다 새롭게 회복하시고 다시 이 놀라운 섬김의 부르심으로 불러주시는 하나님께 감사를 돌려드리기를 원한다. 교회 사역의 최종 목적이 바로 그것 아닌가!: “이는 범사에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이 영광을 받으시게 하려 함이니 그에게 영광과 권능이 세세에 무궁하도록 있느니라 아멘”(벧전 4:11).
당신의 봉사가 노동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예배가 되기를 간구한다. 우리의 섬김의 대상이신 하나님을 기뻐하는 힘이 바로 우리가 겪는 크고 작은 번아웃을 사라지게 하는 비결이다(느 8: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