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외유내강의 인격자
주남선 목사를 알고, 만났던 많은 사람들은 주남선 목사를 온화한 인격의 소유자였으며, 겉은 부드러우나 속이 강한 분이었다고 증언하고 있다. 그는 공석이나 사석 상에는 남을 공격하는 언사를 쓰지 않았다. 옳고 그름은 분명히 하였으나, 남을 헐뜯지는 않았다는 것이다. 그래서 그는 “적이 없는 사람”이었다.
남영환 목사는 “주남선 목사님을 만나 본 사람이라면 대부분 온화한 인격의 소유자라고 말할 것이다. 내가 만났을 때는 환갑을 지낸 2년 후였으니 나보다는 30년이나 선배셨다. 그러나 권위의식이란 털끝만치도 찾아 볼 수 없었다. 언제나 교회에서 장로들과 함께 있을 때도 동역자처럼 대해 주었다. 내게만 아니라 모든 전도사들에게도 그와 같이 대해 주었고 그런 인품이 주목사님과의 거리를 느끼지 못하게 했다.”(남영환, 38)고 술회하고 있다.
또한 어려운 일을 당해도 당황하거나 근심을 띠지 않았으며, 유우머는 없어도, 다가오는 일을 긍정적으로 받아들이는 힘이 있었던 것이다. 그 한 예로 경남노회가 모였을 때에 모 목사가 훨씬 연배인 주 목사에게 입에 담기도 힘든 폭언을 하였어도 시종일관 웃음으로 넘겼던 일이 있었다고 한다(남영환 38).
물론 그에게도 많은 반대자들이 있었다. 그러나 그의 이러한 인격과 포용성 앞에서는 제대로 힘을 쓰지 못했다. “거창교회도 주목사님의 전임이 김길창 목사였으므로 은연중에 조선신학교의 세력이 일부 장로들과 청년들 속에 깊이 자리를 잡고 있었지만 주목사님의 온화한 포용성과 인격에 압도되어 힘을 쓰지 못하였던 것이다.”(남영환, 39)
전성도 목사도 주남선 목사를 “따뜻한 인간미가 넘치는 분”으로 회상하고 있다.(전성도, 36). 오병세 교수 역시 주 목사에 대해서 이렇게 쓰고 있다. “이 어른은 평화스럽고 말씀은 조용히 하였으나 어려움이 올 때에 강철 같은 신앙의 소유자였다. 참 외유내강의 전형적인 인물이었다.”(심군식, 8)
4. 진리를 파수한 사람
주남선 목사를 묘사하는데 있어서 가장 중요한 요소 중의 하나는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그의 충직한 복종이었다. 예배를 인도할 사람이 입게 될 옷의 옷고름이 뜯어졌을 때에도 그는 주일을 거룩히 지켜야 한다는 이유로 바느질을 하지 않고, 그냥 동여매고 예배를 드렸다는 일화는 그가 말씀을 얼마나 중요하고 여기고 있었는가를 잘 보여주는 이야기이다.(심군식, 147).
무엇보다도 신사참배를 반대한 것은 그가 얼마나 하나님의 말씀에 충실한 종이었나를 보여주는 것이다. 주남선 목사는 그가 기록한 옥중기의 초반에서 서론격으로 다음과 같이 쓰고 있다. “신사참배는 일본국신(日本國神)을 숭배하는 일종의 우상예배와 종교의식이다. 유일신(唯一神)종교인 기독교신자로서는 양심으로 생각하나 하나님의 말씀에 비춰보나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서나 생명을 내놓을 지언정 신사참배는 절대로 못할 것으로 나는 각오하였다.”(박윤선a, 22)
주 목사는 신사참배의 강요라는 현실 앞에서 어떤 자세를 취해야 하는가를 생각하면서 기도와 말씀 묵상에 많은 시간을 보낸 것 같다. 특히 그는 요한계시록의 말씀을 묵상하는 가운데, 해답을 얻게 된 것으로 스스로 서술하고 있다.
“1938년 4월부터는 거창경찰서로부터 나와 교회에 대하여 신사참배를 강요하므로 거절하였으며 6월경에 이르러서는 거창 가조리 기도실에서 2일간 금식기도 하면서 묵시록을 수십독 하는 중 신사참배는 말세에 나타난 바벨론 우상예배로 더욱 인식이 되며 배격할 용기를 얻는 남아에 그해 9월에 이르러서는 평양서문외예배당에서 모인 총회에서까지 신사참배를 결의하고 즉시 각 노회대표로 평양신궁에 봉고제를 실행하게 된 것을 본 나로서는 오호라 조선교회의 전도를 생각하여 눈물의 탄식기도를 아니할 수 없었다.”(박윤선a, 22-23)
그의 옥중기를 보면 요한 1서 4장을 중심으로 한 “하나님은 사랑이라”는 제목의 설교 요지가 나타나고 있다. 이 설교는 세 개의 대지로 구성되어 있는데, 하나님은 우리를 사랑하심으로 독생자를 주셨고, 성신을 주셨고, 사랑의 계명을 주셨다는 것이다. 따라서 신자는 하나님의 계명을 지켜 우상예배인 신사참배를 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역설하고 있다(박윤선a, 24)
옥중기에 보면 그가 검사로부터 받은 심문의 내용을 스스로 정리해 주고 있는데, 1941년 12월, 1944년 12월, 1945년 5월에 있었던 심문의 내용이다. 이것을 대화식으로 다시 구성해 보면 다음과 같이 정리될 수 있을 것이다.
검 사: 일본 역대 천황은 현인신인 줄 아느냐?
주 목사: 일본 역대 황제는 하나님께서 일본국가를 통치하라고 낸 통치자로 압니다.
검 사: 역대 천황의 신을 어떻게 아느냐?
주 목사: 사람의 죽은 신은 사람의 죽은 신인 고로 사신일 줄 압니다.
검 사: 천조신은 여호와와 같은 신인데 왜 다른 신인줄 알고 신사참배를 거부하느냐?
주 목사: 여호와의 신은 천지만물을 창조하시고 인생의 생사화복을 주창하시는 참신이시며 그 외의 모든 신은 사신이요 거짓 신이라.
검 사: 예수가 재림하여 천년왕국이 되면 천황폐하가 통치권이 있겠느냐?
주 목사: 천년왕국 시대에는 예수 믿는 사람만이 통치권이 있을 것이니 천황폐하는 회개하고 예수 믿으면 통치권이 있을 수 있다.
검 사: 일본은 신사참배를 숭배하는 국가인데 천황폐하가 예수는 않 믿을 터이니 어떻게 되겠느냐?
주 목사: 물론 예수 안 믿으면 통치권은 없을 것이다.
검 사: 예수 재림시에는 일본국가가 파괴되겠느냐?
주 목사: 물론 일본국가 뿐만 아니라 전세계 불신국가는 망할 것이다.
검 사: 전번 심문한 사실대로 재심을 하고도 지금도 아무런 변동이 없느냐?
주 목사: 하등의 변동이 없다.(박윤선a, 25-27)
진리를 파수하는 일에 그는 칼날처럼 예리하였다. 성경말씀에 어긋나는 일을 그는 받아들일 수 없었던 것이다. 그는 온유한 자였으나, 말씀 앞에서는 엄숙하며, 진실하였던 것이다. “어쩌만 이와 같은 면 때문에 조선신학교를 지지하던 배성근 목사나 손순열 목사의 눈에는 무서운 독재자로 비쳤을지도 모른다.”(남영환, 39)
해방 후에 남 목사는 국기경배에 대한 문제를 그의 설교에서 언급했는데, 우리는 그 기록을 가지고 있다. 이를 인용하면 다음과 같다. “정치적으로는 국기 경배문제가 또한 그 하나이다. 총회에서도 이 문제를 해결지우기 위하여 정부에 교섭위원을 파견하였다. 신문지상․․․의 발표에 의하건대 안호상 문교부 장관은 ‘국기 경배는 당연히 하여야 한다’고 언명하였다.
이 문제를 인연하여서 경향 각지를 막론하고 교육계에는 심대한 영향이 미치고 있으니 그 내용인즉 학교당국자들이 국기에 경배하지 않는 학생에게 대하여 퇴학처분을 내리는 해괴한 처사를 단행하는 그것이다․․․ 패망한 일본이 강요하든 교육노선을 우리나라의 교육계가 답습할 이유는 무엇인가? 실로 통탄하지 않을 수 없다.”(주남선b, 9)
우리는 이런 기록들을 보면서, 고신측 인사들이 가졌던 성경에 대한 충직성과 어리석게 보일 수도 있는 충직한 말씀에의 복종을 읽을 수 있게 된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