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전적 부패(Total Depravity)
칼빈주의 5대 교리 중 맨 처음 것을 생각하게 될 때 우리가 깊이 새겨 두어야 할 것은 이 체계가 구원의 문제에 있어서 근본적인 것임에 틀림이 없는 어떤 것, 즉 구원받을 자의 상태에 대한 정확한 평가에서부터 시작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만일 죄에 대해 불충분하고 관대한 견해를 갖게 되면 죄인 구원에 필요한 방법에 관해서도 불완전한 견해를 갖게 되기 쉽다. 만일 에덴 동산에서 인간의 타락이 단지 부분적인 것에 그친다고 믿게 되면 우리는 구원을 일부는 사람에게 돌리고, 일부는 하나님에게로 돌리고 그것으로 만족할 가능성이 있다.
이 문제에 관한 라일(J. C. Ryle)의 말에는 상식으로 가득차 있음을 보게 된다.
"잘못된 생각과 거짓된 교리치고 그 발단이 인간 본성의 타락에 대한 불충분한 견해에 기인하지 않은 것이 거의 없다. 질병에 대한 견해가 잘못되면 치료에 대한 견해 역시 잘못되기 마련이다. 인간 본성의 타락에 대한 견해가 잘못되면 교정수단에 대한 견해가 잘못되고, 그 타락의 치료에 대한 견해 또한 잘못되기 마련이다"라고 그는 말한다.
이러한 점을 충분히 인식하였기 때문에 종교개혁의 신학자들과 도르트회의에서 개혁주의 가르침을 예의 5대 교리로 공식화한 사람들은 성경에 확고한 기반을 두고서 인간의 자연상태는 전적 부패의 상태라고 선언하였다. 따라서 인간으로선 자신의 구원을 얻는다거나 무슨 기여를 하기에 전적으로 무능력하였다.
그렇지만 칼빈주의자들이 전적 부패를 말할 때, 그 의미는 모든 인간이 악할대로 악하다거나, 또는 인간이 하나님의 뜻을 알 수 없다는 뜻이 아니다. 더욱이 그가 동료 인간에게 어떤 선을 행할 수 없다거나 또는 외면적으로 전심을 다해 하나님을 공경할 수 없다는 뜻은 더 더욱 아니다.
그러면 그들이 의미하는 것은 무엇인가? 그것은 인간이 에덴 동산에서 타락했을 때 전적으로 타락했다는 의미이다. 인간의 인격 전체가 타락의 영향을 받은 상태로서 죄는 능력 전체-의지, 이해, 애정, 기타 모든 것-에 미쳐 있다. 이상은 이제 언급하게 될 하나님의 말씀에서 반박의 여지가 없도록 가르치는 바라고 우리는 믿는다.
다음은 전적 부패에 대한 칼빈주의의 가르침을 확인시켜 주는 성경 구절들을 뽑아 놓은 것들이다.
성경은 인간은 본래가 죽은 자라는 점을 명백히 가르치고 있다.
"이러므로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죄가 세상에 들어오고 죄로 말미암아 사망이 왔나니 이와 같이 모든 사람이 죄를 지었으므로 사망이 모든 사람에게 이르렀느니라"(롬5:12)
성경은 인간이 속박되어 있음을 말해 준다.
"거역하는 자를 온유함으로 징계할지니 혹 하나님이 저희에게 회개함을 주사 진리를 알게 하실까 하며, 저희로 깨어 마귀의 올무에서 벗어나 하나님께 사로잡힌바 되어 그 뜻을 좇게 하실까 함이라"(딤후2:25이하)
성경은 인간이 눈멀고 귀먹은 존재임을 보여준다.
"…외인에게는 모든 것을 비유로 하나니 이는 저희로 보기는 보아도 알지 못하며 듣기는 들어도 깨닫지 못하게 하려 함이니라"(막4:11이하)
성경은 우리가 가르침 받을 수 없는 존재임을 보여준다.
"육에 속한 사람은 하나님의 성령의 일을 좇지 아니하나니 저에게는 미련하게 보임이요, 또 깨닫지도 못하나니 이런 일은 영적으로라야 분변함이니라"(고전2:14)
성경은 우리가 날 때부터 죄인이라고 말한다.
(1) 출생으로: "내가 죄악 중에 출생하였음이여 모친이 죄 중에 나를 잉태하였나이다" (시51:5)
(2) 실상으로: 여호와께서 사람의 죄악이 세상에 관영함과 그 마음의 생각의 모든 계획이 항상 악할 뿐임을 보셨느니라"(창6:5)
이상이 인간의 자연적 상태이다. 그렇다면 다음과 같은 물음을 던져 보아야 한다.
죽은 자가 스스로 살아날 수 있는가? 속박된 자가 스스로 놓여날 수 있는가? 눈먼 자가 스스로 보거나 귀먹은 자가 스스로 들을 수 있는가? 종이 스스로 속전을 낼 수 있는가? 가르침 받을 수 없는 자가 스스로 가르칠 수 있는가? 날 때부터 죄인된 자가 스스로 변화할 수 있는가?
도저히 그럴 수 없다. "누가 깨끗한 것을 더러운 것 가운데서 낼 수 있으리이까?" 하고 욥은 물은 다음 "하나도 없나이다"라고 대답한다.(욥14:4)
"구스인이 그 피부를 표범이 그 반점을 변할 수 있느뇨?"라고 예레미야는 묻는다. "할수 있을진대 악에 익숙한 너희도 선을 행할 수 있으리라"는 것이 그의 결론이다.(렘13:23)
부패가 전체적인 것이고, 구원을 바라거나 얻을 수 없는 우리의 무능력 또한 전체적이라는 것을 이보다 더 명백하게 보여줄 수 있을까? 이것을 그림으로 나타낸다면 죽음-영적 죽음-의 그림이다.
우리는 무덤 속에 있는 나사로와 같은 존재들이다. 손과 발이 속박되어 있으며 부패가 우리를 붙들고 있다. 나사로의 죽은 시체 속에 생명의 빛이 없는 것처럼 우리의 심령 속에 수용적(受容的)인 내적 불꽃이 전혀 없다. 그러나 주께서는-육적으로 죽은 자는 물론 영적으로 죽은 자들에게도-기적을 행하신다.
"너희의 허물과 죄로 죽었던 너희를 살리셨도다"(엡2:1)
구원은 바로 그 본질상 주께 속한 것임에 틀림없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