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무조건적 선택(Unconditional Election)
전적 부패를 인간의 본질 상태에 대한 참된 성경적 진술로 받아들이느냐 아니면 거부하느냐에 따라 도르트 회의에서 재검토한 다음 번 교리에 대한 우리의 태도가 결정될 것이다.
무조건적 선택은 1689년의 침례교 신앙고백서에 잘 설명되어 있는데 그것을 여기서 편리하게 요약하여 인용해 보겠다. 그것은 또한 웨스터민스터 신앙고백서와 영국 국교회의 39개조 및 주요 고백서들에서 거의 동일한 용어로 진술되어 있다.
"생명에로 예정되어 있는 사람들을 하나님께서는 창세 전부터 그의 영원 불변하신 목적 및 그 마음의 원한 기쁘신 뜻대로 그리스도 안에서 영원한 영광에 들어가도록 선택해 놓으셨도다. 이는 단지 하나님의 거저 주시는 은총과 사랑에서 나온 것이지, 하나님으로 그렇게 하시게 할만한 어떤 조건이나 이유가 되는 다른 어떤 것이 피조물에게 있어서가 아니다"(3장 5조.)이렇게 침례교 고백서는 말하고 있다
무조건적 선택이라는 교리는 당연히 전적 부패 교리에 뒤따라 나오기 마련이다. 정말로 인간이 죽어 있고, 속박되어 있다고 볼 수 없다고 한다면 이 모든 상태에 대한 치료책은 인간 자신 밖에(즉 하나님에게) 있어야 한다.
우리는 앞 장에서 "죽은 자가 스스로 살아날 수 있을까?"라는 질문을 하였는데 그 대답은 어쩔 수 없이 "물론 그럴 수 없다"는 것이 되어야 한다. 그러나 만일 어떤 남녀 사람들이 영적으로 죽음에서 살아난다면-요한 복음대로 "거듭난다"면- 그들 스스로는 이 일을 성취할 수 없기 때문에 그들을 사리신 이는 바로 하나님이시라는 결론을 내리지 않으면 안된다.
이와 반대로 많은 남녀 사람들이 "살아나지" 못한다 할 경우엔 마찬가지로 그것은 하나님께서 그들을 살리지 않으셨기 때문이라고 결론지어야 한다.
만일 아담의 타락이 전적 타락이기 때문에 인간이 자기 자신을 구원할 수 없다면, 그리고 하나님만이 구원하실 수 있다면, 그래서 모든 인간은 구원받지 못한다면 그때의 결론은 하나님이 모든 사람을 구원하려고 선택하지 않으셨다는 것이 되어야 한다.
이는 맹목적인 철학이 결코 아니다.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에서 도출된, 성경에 입각한, 성경이 입증해 주는, 그리고 성경에 계시된 것이다. 이 문제는 바로 대양(大洋) 만큼이나 광대한 것이지만 그저 몇몇 주요 성경 구절을 인용함으로써 이 망망대해를 헤쳐나갈 해도와 나침반으로 삼고자 한다.
성경의 이야기는 무조건적 선택의 이야기이다. 이 교리에 반대하는 사람들이 이 점을 인식하지 못하는 것은 이상하다. 신자들 중에는 하나님이 어떤 사람은 그냥 지나치시고, 다른 사람은 선택하실 수 있으리라는 것을 믿기 어려워하는 이들이 있다. 하지만 그들은 하나님이 이방 갈대아 우르에서 아브라함을 부르시고, 그 나머지 사람들은 우상 숭배 속에 내버려두신 것을 믿기 어려워하진 않는다.
왜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민족을 그의 "선민"으로 택하셨을까?
그 이유를 심사숙고 할 필요는 없다. 신명기 7장 7절에 분명한 대답이 있으니까 말이다.
"여호와께서 너희를 기뻐하시고 너희를 택하심은 너희가 다른 민족보다 수효가 많은 연고가 아니라. 너희는 모든 민족 중에 가장 적으니라. 여호와께서 다만 너희를 사랑하심을 인함이니라…"
왜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의 가족법을 완전히 무시하시고 장자에서 대신 동생 야곱을 택하셨을까?
로마서 9장11절로 13절을 보자.
"…택하심을 따라 되는 하나님의 뜻이 …서게 하려 하심이라. …내가 야곱은 사랑하고 에서는 미워하였느니라"
예수께서 나사렛 회당에서 설교하신 교리가 무엇인가 하면 바로 무조건적 선택의 교리였다.
"내가 참으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엘리야 시대에 … 이스라엘에 많은 과부가 있었으되 엘리야가 그 중 사람에게도 보내심을 받지 않고 오직… 사렙다의 한 여자에게 뿐이었으며,…또 선지자 엘리사 때에 이스라엘에 많은 문둥이가 있었으되 그 중에 한 사람도 깨끗함을 얻지 못하고 오직 수리아 사람 나아만 뿐이었느니라"(눅4:25-27)
우리 주님께서 그렇게 설교하신 결과 어떻게 되었는가?
"그들은 그를 산 낭떠러지까지 끌고 가서 밀쳐 내리고자 하였다."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을 주권적으로 선택 하신다는 것을 다 기술 하려면 지면이 허락지 않지만, 그 사실 만큼은 명확하다.
"너희가 나를 택한 것이 아니요, 내가 너희를 택하였느니라"(요15:16)
"토기장이가 진흙 한 덩이로 하나는 귀히 쓸 그릇을, 하나는 천히 쓸 그릇을 만드는 권이 없겠느냐?"(롬9:21)
"나는 긍휼히 여길 자를 긍휼히 여기리라"(롬9:15)
"창세 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택하시고" "예정하사 자기의 아들들이 되게 하셨느니라"(엡1:4-5) 등등 이다.
우리는 오늘날 많은 신자들이 생각하고 있는바 "일종의 선택"이 있다는 점을 인정한다.
대충 말하면 이것은 로마서 8장 29절의 "하나님이 미리 아신 자들로… 미리 정하셨으니"라는 말씀에 근거를 두고 있다.
이 경우는 다음과 같은 뜻으로 풀이된다. 하나님은 그리스도를 받아들이려는 자들을 미리 아셨다. 그래서 그들을 영원한 생명에로 "선택하셨다". 이러한 견해에 대해 다음 몇 가지를 지적해 낼 수 있다.
1. 하나님의 예지는 한 민족과 관련해서 말하는 것이지 사람이 행한 어떤 행동에 관해서 말하는 것이 아니다. 성경에는 "미리 아신 자들…"로 되어 있다.
다시 하나님께서는 아모스를 통해 이렇게 말씀하신다.
"내가 땅의 모든 족속 중에 너희만 알았나니"
그 말은 즉 선행이든 악행이든 그들이 행하는 어떤 행동과는 상관없이 하나님께서 그들을 사랑하셔서 자기 백성으로 택하셨다는 의미에서 그들을 "알았다"는 뜻이다. 하나님께서 택한 자들을 미리 아셨다는 것은 이러한 뜻이다.
2. 하나님께서 우리를 택하신 것은 우리가 하게 될 어떤 일-즉 그의 아들을 받아들일 줄 아셨기 때문이라고 말하는 것은 좋지 못하다. 우리가 선택받은 것은 그리스도를 "영접하는" 것과 같은 거룩한 일을 행하기 때문이 아니라, 우리가 그리스도를 "영접"할 수 있게 하기 위해서인 것이다.
"우리는 그의 만드신 바라.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선한 일을 위하여 지으심을 받은 자니, 이 일은 하나님이 전에 예비하사 우리로 그 가운데서 행하게 하려 하심이니라"(엡2:10)
3. 하나님께서는 믿을 사람을 미리 아셨다고 말하는 것도 좋지 못하다.
사도행전 13장 48절에서 이 점을 명백히 하고 있다.
"…영생을 주기로 작정된 자는 다 믿더라"
우리가 믿기 때문에 선택을 받은 것이 아니라, 선택을 받았기 때문에 믿은 것이다. 즉 "영생을 주기로 작정되었기" 때문이다.
4. 다시 반복하거니와 우리가 믿음을 내어 그리스도를 영접하였다. 하나님께서는 이 믿음을 미리 아셨다. 그래서 우리를 선택하셨다고 말하는 것은 우리를 한 단계 더 뒤로 물러가게 만들뿐이다.
우리가 발휘할 믿음은 어디서 얻은 것인가? 성경은 이렇게 해답을 준다.
"그것은 우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고(엡2:8)
우리가 해야 할 것은 이러한 것들에 대해 쟁론할 것이 아니라 성령께서 베드로를 통해 명령하신 바를 행하는 일이다.
"더욱 힘써 너희의 부르심과 택하심을 굳게 하라"(벧후1:10)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