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일하신 구주 예수 그리스도
결코, 예수님은 위선자가 아니시다. 자기의 본성이 아닌 상황이나 인격을 드러내면서, 연극 무대에서 한 역할을 연기하는 사람처럼, 예수님은 가장하지 않으신다. 예수님은 항상 그분의 이름이 의미하는 분이시다. 그분은 언제나 구원자이시며, 영원히 은혜로 기름 부어진 자이시며, 더불어 즉시 하나님과 사람을 화목케 하시는 분이시다. 그리고 그분의 이름이 의미하는 이러한 것들은 그분의 피가 자기들을 구원하실 것이며 정결케 하실 것으로 믿고 신뢰하는 회개한 죄인들을 위해 그분께서 하시는 일이시다.
현재 비록 교황과 그의 무리들이 예수 그리스도께 이러한 이름들을 준다하지만, 그러나 그들은 예수님에게서 그 결과를 강탈하여, 그 의미들을 자신들의 것으로 만들고는, 마치 그들의 본성처럼, 예수님을 위선자로 만든다. 그들이 바로 적그리스도로서, 아버지와 아들을 부인하는 자들이다. 왜냐하면 그들은 아버지께서 그분의 아들에대하여 밝혀주신 증거를 부인하기 때문이다. 즉 아버지께서 예수님께 주셨던 모든 권력과 영광의 주인이신 그 아들을 그들은 부인한다.
(요일 2:23)“아들을 부인하는 자에게는 또한 아버지가 없으되 아들을 시인하는 자에게는 아버지도 있느니라”
어떤 사람도 아들이 없이는 아버지를 알 수 없기 때문이며, 그리고 사람들에게 그 아들이 아버지를 보이시기 때문이다(마11장). 게다가, 만일 여러분이 하나님께서 그리스도 안에서 여러분에게 보여주신 그 은혜를 알지 못한다면, 여러분은 아버지로서의 그분을 알 수 없다. 예수님 없이는, 하나님을 한 전제자(專制者)로 알게 될 것이다. 그리고 여러분은 고대 철학자들이 그랬던 것처럼, 행위의 하나님만 알 수 있다. 그러나 예수님에 의하지 않고는, 여러분은 결코 하나님의 은혜를 믿을 수 없고, 그분의 법도 사랑할 수 없다. 그 법을 통해서 우리는 성령님 안에서 그분을 섬기는 것이다.
(요일 2:24)“너희는 처음부터 들은 것을 너희 안에 거하게 하라 처음부터 들은 것이 너희 안에 거하면 너희가 아들의 안과 아버지의 안에 거하리라”
만일 우리가 사도들이 가르쳤던 오래된 가르침을 준행한다면, 그리고 새로운 것에 귀를 기울이지 않는다면; 그때 우리는 아들에 대한 믿음을 통해서, 아들과 아버지를 준행한다. 왜냐하면 사도들이 아들 위에 세웠기 때문이다. 그리고 영원한 생명의 상속자들이다.
(요일 2:26-27)“너희를 미혹케 하는 자들에 관하여 내가 이것을 너희에게 썼노라 너희는 주께 받은바 기름 부음이 너희 안에 거하나니 아무도 너희를 가르칠 필요가 없고 오직 그의 기름 부음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가르치며 또 참되고 거짓이 없으니 너희를 가르치신 그대로 주 안에 거하라”
한 진실한 설교자가 가르칠 때, 성령님께서 택하신 자들의 심령에 들어오시고, 그들로 하여금 하나님의 율법의 의로움을 깨닫게 하신다. 그리고 그 율법에 따라서 자기의 부패한 본성의 독을 깨닫게 하시고, 그리고 회개를 통한 은혜 즉 그리스도의 보혈 안에 있는 은혜로 그들을 인도하신다. 연고가 육신을 치유하듯이, 영원히 성령님께서 그리스도의 보혈에 대한 확신을 통해서 영혼을 치료하시고, 하나님의 법을 사랑하게 하신다. 따라서 기름부음 또는 연고라고 불리고, 우리의 성사의 기름에 의해 중요시되는 것이 마땅하다할 수 있다.
그러나 한 표적으로서, 외적인 기름은 결코 영혼을 치유할 수도 없고, 평안을 느끼게도 할 수 없다. 유사하게, 선술집의 한 잔 음료가, 비록 한 인간의 갈증을 풀어줄지언정, 우리의 믿음을 얻지는 못하는 것과 같다. 따라서, 이제 우리가 받은(바울이 말한 것처럼) 성령, 정직한 영의 가르침을 따르자. 성령께서 우리의 심령을 보증하시고,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께 속한 것들을 깨닫게 하신다. 아울러 인간들의 유전에 빠지지 말자. 인간의 유전 속에는 아무런 느낌도 없이, 다만 하나님의 지혜에 따른 것이 아닌, 인간의 지혜에서 나온 영광스러운 교리들을 통해서 자기들의 주장만을 확실히 할 뿐이다.
(요일 2:28)“자녀들아 이제 그 안에 거하라 이는 주께서 나타내신 바 되면 그의 강림하실 때에 우리로 담대함을 얻어 그 앞에서 부끄럽지 않게 하려 함이라”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