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I. 우리의 소망
우리의 소망은 무엇인가요? 사람들은 저마다 희망이 있습니다. 젊은 사람들은 웅대한 포부를 가지고 공부합니다. 장성한 사람들도 큰 사업을 해서 좋은 일터를 구해서 돈을 많이 벌어서 좋은 일에 쓰겠다고 높은 희망을 가집니다. 물론 그런 포부를 품는 사람들 모두가 성공하는 것은 아닙니다. 그럼에도 그런 마음을 주입하는 책들이 전 세계적으로 책방마다 홍수를 이룹니다.
요즘에 나오는 책들은 거의 모두가 이런 방면의 책들입니다. 청소년들에게 널리 읽히고 있는 "Secret" 이라는 책도 그런 책입니다. 성공하는 비결입니다. 그 비결이라는 방법들이 모두 비성경적인데 문제가 있습니다. Texas 에서 3만 명을 놓고 목회하는 Joel Osteen 이란 목사도 근자에 책을 썼는데 그 책의 이름이 "Your Best Life Now" 우리 한국말로는 “긍정의 삶” 이라는 제목으로 번역되어서 전 세계적으로 3000 만부라는 어머어마한 매상고를 올렸다고 합니다.
기독교의 바른 복음이 전파되는 일이라면 크게 기뻐하고 장려할 일이지만 문제는 그런 책에는 예수가 사람의 돈을 벌어주고 이 세상에서 성공시켜주는 마법사 정도로 묘사되는데 문제가 있습니다. 얼마 전 한국에서 어떤 분이 연락이 왔습니다. 미국의 어느 대형교회 목사가 한국에 나와서 그가 다니는 신학교에서 수양회를 인도하는데 “성공하려면 예수를 믿어라”라는 것이 그 강사 목사의 주제였다고 하면서 개탄을 금치 못한다고 하는 말을 듣고 참으로 신학교도 이제는 <갈대로 갔구나> 하고 생각한 적이 있습니다. 신학교의 강대상에서 이런 설교를 하는 목사도 문제가 있지만 그런 설교를 하도록 방치하는 학교 당국에게 더 큰 문제가 있습니다. 일반 교회라면 교인들이 무식해서 그대로 넘어갈 수 있겠으나 신학교에서 조직신학을 배우고 교리사를 공부하고 변증학 을 공부하는 학생들이 그런 설교를 듣고 앉았다는 것은 신학교도, 신학생들도 모두 변질되어 간다는 좋은 증거입니다.
“긍정의 삶” 이란 책을 쓴 Osteen 목사도 그 책에서 인생에서 돈 많이 모으며 <성공>하는 법을 가르쳐 줍니다. 심각한 문제는 이 책이 <거짓 복음>을 전한다는 사실입니다. 예수님이 오신 목적은 구원의 도리를 가르치러 오신 것이지 이 땅에서 사람들이 돈을 많이 모으고 성공하고 오래 사는 방법을 가르쳐 주려 오신 분이 아니라는 진리를 외면하는 가장 비성경적입니다. 성경은 창조, 타락, 구속을 가르쳐 줍니다. 그리고 그 구속은 예수님의 십자가와 부활입니다. 무슨 설교이던 무슨 기독교의 서적이든 예수님의 십자가와 부활을 등한히 하는 내용은 성경적이 아닙니다. 우리가 Schweitzer 의 신학을 배척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우리가 Bultmann 의 신학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Osteen 의 책에는 십자가가 없습니다. Bruce Wilkinson 의 “야베스의 기도”와 다를 바가 없습니다. “누구든지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따르라”고 마태 16:24 에 주님이 마태복음 16장에 말씀하시는데 Osteen 에게는 죄에 대한 회개도 없습니다. 구원에 대한 감사도 없습니다. 1967년 에 나온 소위 “Confession of 1967" 우리말로는 ”새 신앙고백서“ 라고 하는 것도 그러합니다. 이 신앙고백서는 미국 북 장로교가 1967년에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의 대용품으로 채택한 저들의 신앙고백이지만 이 신앙고백은 사람과 사람 사이의 사랑과 화평을 주제로 하고 있습니다.
이런 신앙고백서로 양떼를 먹이다가 결국은 점점 교세가 약화되자 일부 교단 내의 신앙이 바로 된 지도자들은 독일의 ”Barmen Declaration" 을 도입하자는 의견이 나왔지만 뜻을 이루지 못 했습니다 “Barmen 선언” 이란 1936년 독일의 Nazi 에 대항하여 독일의 복음주의자들이 작성한 신앙고백서입니다. 이런 책들이 요즘 기독교 책방에 범람 합니다. 지금은 교계가 타락하여 교회 지도자들이 현세적 심리학적 주해로 성경을 해석하여 사람들의 마음을 사고 물질적 이익도 남기려는 운동이 활발해서 너도 나도 이런 책을 사서보게 되니 이런 방면의 설교는 인기를 끌지만 죄를 회개하자는 설교는 인기가 없습니다. 사람들이 듣기 싫어하기 때문입니다.
성경의 예언이 그래도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딤후 4:1절 이하에 “때가 이르리니 귀가 가려워서 진리에서 귀를 돌이켜 허탄한 이야기를 좇으리라” 고 바울이 하나님의 감동으로 말씀하셨습니다. 그대로 이루어지고 있는 것입니다. 요즘의 문제는 교회마다 성경말씀에 순종하지 않고 사람의 생각을 성경의 말씀보다 더 귀하게 여기는 풍조입니다. 부흥 강사라는 사람들이 강대상에서 설교하는 모습을 성경과 대조해 보면 잘 못된 가르침을 알 수 있을 것입니다. 신학교도 마찬가지입니다. 수를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신학교에서 진리의 말씀이 그대로 전파되며 그리스도의 제자로서 그대로 생활하는가 하는 문제입니다.
요증은 기독교에 심리학을 도입합니다. 그래서 요즘 한창 전파되는 것은 소위 “Contemplative Spirituality, 명상영성” 운동입니다. 기독교를 동양종교와 접목시키는 신학운동입니다. Doug Pagitt 같은 사람, Brian MacLaren 목사 같은 분들이 주동이 되는 Emergent Church 운동이 그런 것입니다. Vineyard 운동도 그런 것이었습니다. 그들이 말하는 “입신 slain in spirit" 이 그런 심리학 과 최면술을 이용한 것입니다. 이런 심리학을 성경에 접목시키는 목사들이 늘어만 가는 것이 오늘이 기독교의 추세입니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