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칼빈의 교회론에 나타난 장로교적 특성
1) 교회의 직분과 권세
장로교 교회 정치의 두 가지 핵심 요소는 첫째 하나님의 주권, 둘째 성도의 교역(敎役)과 교정(敎政) 참여에 있다.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 25장과 26장에서는 교회의 무형적이며 유형적인 본질과 성도의 교제를 연이어 다루고 있는데 이는 교회의 수직적 측면과 수평적 측면을 역동적으로 바라보는 장로교적 특성을 잘 보여주고 있다. 이는 칼빈의 교회론으로부터 비롯된다.
칼빈은 교회의 본질을 논하면서 성도가 그리스도와 하나가 되는 수직적인 연합과 성도 상호간에 하나가 되는 수평적인 연합을 함께 강조하였다. 성도의 참여는 단지 수동적이지만은 않다. 성도는 직분에 따라서 주어진 은사와 능력으로 ‘복음의 사역’을 감당하는 기회를 얻는다. 하나님은 직분을 세우실 때 은사를 미리 예비하신다. 성도들은 직분에 봉사함으로써 그리스도의 몸에 참여한다. 그러므로 그리스도를 머리로 고백하는 자마다 교회의 사역에 참여한다.
교회의 통상직은 목사, 교사, 장로, 집사로 구성된다. 목사의 직분은 “그리스도의 교리로 사람들을 가르쳐서 진정한 경건에 이르게 하고, 거룩한 성례들을 거행하며, 올바른 권징을 지키고 시행하는 것”이다. 설교는 진리에 대해서 증언하는 것이 아니라 진리 자체를 전하는 것이다. 설교자는 자신의 주관적 입장이 아니라 하나님의 음성을 실어 나르는 나팔수와 같아야 한다. 교회가 진리의 터 위에 서 있듯이, 설교는 그 터의 고리가 되어서 성도들을 하나님께 묶고 나아가서 상호간에 하나가 되게 한다.
교사는 가르치는 교회를 구현하기 위하여 필히 요구된다. 교사는 성경을 바로 해석할 뿐만 아니라 ‘순수하고 건전한 교리’를 변호하는 직분을 수행한다. 칼빈은 목사를 ‘하나님의 비밀을 맡은 자’(고전 4:1)로서 특별히 부각시키는데 이는 그가 가르치고 권고하는 일을 함께 수행하기 때문이다.
장로와 집사는 이러한 일을 돕는 직분으로서 나타난다. 장로의 직분은 ‘다스리는 자’(롬 12:8)로서 ‘다스리는 것’(고전 12:28)이다. 장로는 목사의 설교를 바로 이해하고 그것을 충분히 새겨서 성도들을 권면하고 그들을 바로 세우기 위해서 ‘도덕적인 견책’과 ‘권징’을 시행하는 직분을 감당한다. 집사는 재정과 구제하는 일 그리고 긍휼을 베푸는 일을 감당한다.
이러한 네 가지 직분은 서로 유기적으로 연결된다. 선포하는 것과 가르치는 것과 다스리는 것이 서로 구분되나 분리되지 않고 긴밀성을 갖는다.
칼빈에 따르면 교회의 권세는 주님으로부터만 주어지고, 주님 안에서만 작용한다. 이는 ‘교리권(敎理權)’ ‘입법권(立法權)’ ‘사법권(司法權)’으로 나누어진다. 이러한 삼권은 특정한 사람에게 집중되지 않는다. 오직 그리스도만이 선지자, 제사장, 왕으로서 이러한 모든 권세의 주(主)가 되신다.
교리권은 말씀을 선포하고 가르치는 권세이다. 하나님의 감동으로 기록된 말씀은 성령의 감화 가운데 전달되어야 한다. 듣지 않고, 배우지 않은 것을 가르치려고 해서는 안 된다. 교회는 그리스도의 신부로서 무엇보다 순수하고 바른 진리에 서 있어야 한다. 성경의 권위는 그것이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사실에 있다. 성경은 스스로 증거, 즉 자증(自證)한다. 그러므로 교회의 교리권은 오직 성령의 감동에 순종할 때에만 참되게 작용한다.
입법권의 기원은 친히 법을 조성하셔서 수여하시는 하나님에게 있다. 하나님은 법을 통하여 자신이 누구시며, 자신의 뜻이 무엇인지를 알게 하신다. 하나님이 교회에 주신 법은 몸을 움직이는 ‘근육’과 같다. 그것은 교회를 세워서 머리이신 그리스도께로 자라게 하는데 근본 목적이 있다. 그러므로 교회의 법은 세상의 법에 종속되지 않으며 오히려 본질상 그보다 앞선다.
재판권은 권징의 책벌을 의미한다. 권징은 하나님의 말씀을 내적으로 받아들이기를 거부하는 자들을 돌이키기 위하여 시행된다. 교회의 권징은 영적인 재판권이기 때문에 세상적인 방식을 사용할 수는 없다. 지상에서의 심판은 그것이 교회의 이름으로 이루어졌다고 하더라도 종국적이지 않다. 그러므로 언제든 긍휼히 여기는 마음을 버리지 말 것이며 하나님의 자비의 손에 맡기는 기도의 자세가 필요하다. 권징의 본질은 세우는데 있는 것이지 무너뜨리고자 함이 아니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