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브라함 카이퍼의 생애와 사상 개관 (1)
이상웅 교수(총신대학원)
1. 들어가는 말
서거한지 100주년이 차가는 화란 신학자요 정치가인 아브라함 카이퍼(Abraham Kuyper, 1837-1920)는 헤르만 바빙크(Herman Bavinck, 1854-1921), 벤저민 워필드(Benjamin B. Warfield, 1851-1921) 등과 더불어서 현대 3대 칼빈주의자로 꼽히운다.또는 ‘제2의 칼빈’이라고 불리기도 했을 만큼 개혁주의 서클 안에서 그의 기여는 매우 컸다고 할 수가 있다.
우리가 그의 생애와 공적이력을 소상하게 살펴 보고 나면 왜 사람들이 그에 대해 “10개의 머리와 100개의 손들을 가진 사람”이라고 까지 평가했는지를 짐작할 수 있게 된다. 그는 자유주의 신학이 기승을 부리고 있던 19세기 중반의 네덜란드에서 활동하기 시작해서, 개혁주의 신학과 교회를 부흥하도록 이끌었 뿐 아니라, 정치, 교육, 언론 등 모든 삶의 제 국면에서 개혁주의적 원리에 따른 개혁을 추구했고 일정한 개혁을 성취하는데 성공한 사람이었다.
그는 주간지와 일간지의 편집장이었고, 반혁명당을 공식적인 당으로 창설했고, 개혁주의 원리에 기초한 학문 활동을 장려하기 위해 자유대학교를 설립했고, 교회개혁을 위해 힘쓰다 돌레안치(Doleantie) 운동을 일으켰고, 마침내는 화란개혁교회(Gereformeerde Kerken in Nederland)가 출범하도록 지도했다. 뿐만 아니라 국회의원으로서 입법 활동을 비롯하여 정치 개혁에 혼신의 힘을 다하였고, 1901년에는 화란 수상이 되기도 했다. 이렇게 공사다망한 중에도 무려 260여권에 달하는 크고 작은 저술들까지 남겼으니 도대체 카이퍼라는 사람이 누구이며, 어떠한 사상을 가졌으며, 얼마만큼 영향을 미쳤는지 그리고 지금도 미치고 있는지에 대해서 개관하는 일은 쉬운 일이 아닐 것이다.
이러한 서론적인 언급만으로도 우리는 카이퍼의 이력과 사상의 전모를 간략하게 개관하는 일이 쉽지 않은 일이라는 것을 알 수 있을 것이다.더욱이 한 사람이 다 썼다고 하기에는 너무 많은 다작들 속에서 표현된 카이퍼의 신학사상은 특이한 면모들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카이퍼 당시에도 많은 논쟁을 불러 일으켰고, 그의 사후에는 교단 분열에까지 이르게 했다는 것을 고려할 때에는 카이퍼의 사상을 정확하게 이해하는 일이 쉽지 않다는 것을 더욱 더 절감하게 된다. 그러나 그의 사상의 공과 과를 분명하게 가려내야 하는 것이 학문적인 과제라고 생각된다.
그의 방대한 저술들 가운데 어디에서 부터 논구를 시작해야 할까 망연자실한 연구자들에게는 그의 신학사상을 포함한 개혁주의 사상을 개괄적으로 보여주는 『칼빈주의 강연』(Lectures on Calvinism, Het Calvinisme, 1898)이 최상의 출발점이 된다고 할 수가 있다. 비록 화란국교회 신학자였던 헨드리꾸스 베르코프(Hendrikus Berkhof)는 이 책을 ‘카이퍼 사상의 요약’(a summary of Kuyper’s thought)으로 여기는 자들에 대해 비판적으로 말했지만, 독일의 종교철학자 에른스트 트뢸치(Ernst Troeltsch)는 ‘근대 칼빈주의의 선언문’(Manifest des modernen Calvinismus)이라고 명명한 바가 있다.
그리고 카이퍼의 『칼빈주의 강연』을 역사적인 관점에서 논구한 박사논문을 출간한 피터 헤슬람은 본서의 중요성과 가치를 충분히 검토한 후에 “카이퍼 사상에 대한 가장 완전하고, 일관성있고, 비전이 넘치는 표현”을 담고 있는 책이라고 평가하기도 했기 때문에, 더욱더 이 강연문에 대한 연구가 중요하다는 것을 알 수가 있다.
본고에서는 카이퍼의 개혁주의 사상의 요약이 담긴 『칼빈주의 강연』을 분석하고 논구해 보려고 한다. 이어지는 본론(2절-7절)에서는 카이퍼의 여섯 개의 강연에 담긴 내용을 정리해 보려고 한다. 본고는 카이퍼의 사상의 개요가 무엇인지를 개관하려고 하는 목표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논쟁적인 관점에서 접근하기 보다는 이해하고 공감하려는 자세로 접근할 것임을 밝힌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