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제1강연: 삶의 체계로서의 칼빈주의
첫 번째 강연에서 카이퍼는 칼빈주의를 ‘삶의 체계’(life-system), 즉 포괄적인 세계관(Weltanschauung, wereldbeschouwing)으로 제시하고자 한다. 카이퍼는 “두 삶의 체계, 즉 두개의 세계관이 목숨을 걸고 서로 싸우고 있으며, 지나간 40년 동안 자신은 그와 같은 투쟁에 힘써왔다”고 말한다. 그가 말하는 두 개의 삶의 체계, 혹은 두 개의 원리란 칼빈주와 현대주의를 말한다. 그가 보기에 현대주의란 ‘전 포괄적인 삶의 체계’이므로, 이에 대한 그리스도인의 대항도 전 포괄적인 삶의 체계를 갖추어야 하며, 칼빈주의가 딱 적격이라는 사실을 첫 강좌에서 입증하고자 한다.
2.1. 칼빈주의를 역사적으로 정의하기
카이퍼는 우선 오해를 많이 받고 있던 칼빈주의의 개념을 역사적으로 규정하려고 한다. 그는 이 개념이 분파적인 이름으로, 교의적 편형성을 가리키는 것으로 오해 되거나, ‘칼빈주의 침례교’나 ‘칼빈주의 감리교’ 등과 같은 교파의 이름으로 사용되어 온 것에 반하여, 역사적, 철학적, 정치적 의미에서 학문적 이름으로 사용되는 네 번째 견해를 소개한다.
역사적으로 칼빈주의는 종교개혁이 루터파나 재세례파나 소키누스파가 아닌 방향으로 움직인 경로를 일컫는다. 철학적으로는 칼빈의 지도에 영향을 받아 인생의 몇몇 분야를 지배하게 된 체계이고, 정치적으로는 화란, 영국, 미국에서 입헌적 정치로 국민의 자유를 보장했던 정치적 운동이었다.
그리하여 카이퍼는 ‘전세계적으로 인생과 사유에 독립적 형태를 발전시킨 독립적인 전체 경향’으로서, 즉 학문적 의미에서 칼빈주의를 청중들에게 소개하고자 한다. 카이퍼는 칼빈주의가 “기독교 이념을 훨씬 순수하고 정확하게 구현”하기 때문에, 그런 의미에서 이교(이방종교), 이슬람교, 로마교 등의 거대한 삶의 체계와 함께 칼빈주의를 나란히 놓을 수 있다고 본다.
2.2. 삶의 체계로서 칼빈주의의 세 가지 자격 요건
이제 카이퍼는 칼빈주의가 통일된 삶의 체계를 제공한다는 자신의 주장을 입장하기 위하여 그 증거들을 제시한다. 삶의 체계로서 충족되기 위해서는 인간 생활의 세 가지 근본 관계 즉, ‘하나님과의 관계,’ ‘인간과의 관계,’ ‘세계와의 관계’ 에 대한 출발점이 있어야 한다고 말한다.
첫째, 카이퍼에 의하면 칼빈주의는 이교처럼 피조물 안에서 하나님을 구하지 않으며, 이슬람교처럼 하나님을 피조물과 분리시키지 않으며, 로마교처럼 하나님과 피조물 사이에 매개적 종교단체를 두지 않는다. “하나님은 피조물과 비교할 수 없는 높은 위엄 가운데 계시지만, 성령 하나님으로서 피조물과 직접 교제를 맺으신다.”고 카이퍼는 말한다. 카이퍼에 의하면 “칼빈주의의 예정 고백의 핵심이며 진수” 조차도 “인간과 인간을 구분하거나 개인적 교만을 위한 것이 아니라, 영원부터 영원까지 우리의 내적 자아에게 살아계신 하나님과 직접적인 교제를 보장해 주기 위한 것”이라고 주장한다.
둘째, 카이퍼에 의하면 “하나님과의 관계 속에서 인간과 인간의 관계가 규정된다.” 이교는 하나님이 피조물 안에 거한다고 믿기 때문에, 신적 우월성이 인간 가운데 생겨나 계급을 만든다(일예-카스트 제도). 정반대로 현대주의는 모든 차이를 부인하고 모든 구별을 공통의 수준에 놓으려고 한다. 이에 반하여, 칼빈주의는 “모든 사람을 하나님의 피조물로서 하나님 앞에서 서로 동등한 자로 여기기 때문에, 하나님이 주신 권위와 재능 외에 사람 사이에는 어떠한 차별도 인정하지 않는다.” 그리고 권위와 재능을 주시는 것은 “다른 사람을 섬기고 그 안에서 하나님을 섬기도록 주시는 것”이라고 말한다.
셋째, 이교는 때때로 하나님과 피조물을 동일하게 여김으로써 세계를 너무 높게 평가하고, 이슬람교는 세계를 너무 낮게 평가하며, 로마교는 교회와 세계를 서로 대립하는 관계로 보았다. 로마교에 의하면 “교회는 성화되고 세계는 저주 아래 있다고 보았기 때문에, 세계는 교회의 보호와 훈계를 받아야”한다는 이원론적 사고를 표방했지만 “세계를 구원하겠다는 고상한 목적에도 불구하고, 세상은 교회를 부패시켰고 교회는 세상의 자유로운 발전을 가로막는 방해물이 되고 말았다.”고 카이퍼는 비평한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