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2.3. 교회가 땅에 나타난 목적
카이퍼는 이 땅 위에 교회가 존재하는 것은 “오직 하나님을 위해서 존재한다”고 말한다. 중생은 선택받은 사람이 자신의 영원한 운명을 확신하게 하는데 충분하지만, 하나님의 영광을 만족시키기에는 충분하지 하기 때문에 중생 다음에는 회심(conversion)이 있어야 하며, 이를 위하여 교회는 말씀을 선포하여야 한다.
중생한 사람에게서도 불꽃이 빛나지만, 회심한 사람에게서 비로소 타오르는 불이 된다. 회심과 선한 행위로 타오르게 된 불은 이렇게 교회로부터 세상에 비친다. 그렇지만 우리는 구원의 보장으로서가 아니라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것으로 회심과 성화를 드러낸다.
카이퍼가 말하는 바 교회의 다른 목적은 “성도의 교제와 성례를 통하여 이 작은 불꽃들을 하나로 모아 더욱 더 하나님의 이름의 영광을 드러내는 것이다.” 동일한 방식으로 순전한 경배와 신령과 진정으로 하나님을 예배하는 영적 예배, 그리고 하나님의 언약의 신성함을 보존하고 이를 외부세계에 지속적으로 새겨두기 위한 ‘교회 권징’도 있어야 한다.
마지막으로 교회는 집사 제도를 통해서 ‘박애(philanthropy)의 봉사’를 해야한다. 집사 제도는 구제하는 자를 영화롭게 하는 것이 아니라 오직 사람의 마음을 관대하게 하시는 그분의 이름을 영화롭게 하는 것이다. 우리가 그들에게 위임하는 것은 그분의 소유를 맡은 청지기로서 단순히 그리스도께 돌려드리는 것일 뿐이다.
3.3. 실제 생활에서 종교의 열매(도덕)
흔히 칼빈주의는 도덕적 자극의 칼날을 무디게 하고 위험천만한 도덕적 방종을 만들어낸다는 비난을 받아왔다. 이것은 실제 생활에서 맺는 종교의 열매로서 칼빈주의를 생각할 때 줄곧 지적되는 것이다. 그러나 칼빈주의 교리가 부주의하고 불경건한 생활을 낳고 있다는 이러한 비난에 대하여, 카이퍼는 먼저 참된 칼빈주의자의 전형을 소개한다.
그 영혼에서 개인적으로 전능자의 위엄에 놀라고 그 영원한 사랑의 강력한 능력에 복종하여 하나님께 선택받았고 따라서 영원히 하나님께만 감사할 것을 개인적으로 확신하고서 이 위엄에 찬 사랑을 사탄과 세상의 자기 마음의 세속적 태도에 맞서서 선포하는 그 사람 만이 참된 칼빈주의자이며, 칼빈주의의 기치를 높일 것이다. 그런 사람은 하나님의 말씀을 생활에서 지킬 하나님의 최고 행동 원리로 받아들이는 결과로 하나님의 능력과 위엄 앞에 떨지 않을 수 없다.
카이퍼에 따르면 칼빈주의는 율법주의를 표방하지 않는다. 모든 구원의 공로를 그리스도와 그분의 대속 열매로만 돌리기 때문이다. 칼빈주의는 “모든 윤리적 연구를 시내산의 율법에 기초”한다. 이는 “모든 사람의 심비에 거룩한 뜻을 심어주시는 하나님 자신의 참된 요약으로서 시내산의 율법을 존중하기 때문이다.” 칼빈주의자가 “하나님의 규례를 믿고 말하는 것은 모든 삶이 창조에서 실현되기 전에 하나님 안에 먼저 있었다는 확신에 의한다. 따라서 모든 피조된 세계는 필연적으로 창조하신 하나님의 존재에 대한 법칙을 가지고 있다.”
칼빈주의자는 ‘자연의 법칙’이나 ‘일반 도덕 규례’, 그리고 좀 더 특별한 ‘기독교적 계명’ 간의 근본적인 차이를 구별하지 않는다. 이는 “하나님은 유일하시고 영원하신 불변자이시기 때문에 우리는 하나의 동일한 도덕적 세계 질서 말고는 다른 것을 상상할 수가 없”기 때문이다. 카이퍼는 “우리가 가진 양심 안에 종교와 윤리의 두 가지 실체를 구별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임재하심에 모든 것을 두는 것”이며, “임재하시는 하나님께 대한 거룩한 경외는 하나의 현실로서 모든 생활에, 즉 가정에, 사회에, 학문과 예술에, 개인 생활에, 정치 활동에 덧붙여진다”고 설명한다.
카이퍼에 의하면 “나쁜 세계”와 “좋은 세계”가 있는 것이 아니라, “저주로 고통 받고 타락 이후로 일반 은혜에 의하여 보전되고 그리스도 안에서 구속되어 심판의 공포를 지나 영광의 상태에 이르게 되는 …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하나의 동일한 세계”가 있을 뿐이라고 말한다. 따라서 칼빈주의자는 “교회에 갇혀서 세상을 그 운명에 내버려 둘 수 없”다고 보는 것이다. 칼빈주의자는 이 세상의 발전을 훨씬 높은 단계로 밀고 올라가되, 하나님을 위하여, 그리고 하나님의 규례에 따라 올라가며 좋은 소식이 될 만한 모든 것을 지탱하려고 한다. 이러한 불굴의 힘으로 인간 활동의 모든 분야에 스며들어, 상업과 무역, 수공예와 산업, 농업과 원예, 기술과 학문에까지 새로운 추진력을 갖게 한다고 카이퍼는 주장한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