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교는 처음에 “나는 하나님 앞에서 완전하지 못한 죄인이다” 란 겸손한 태도에서 출발합니다. 성경이 사람은 모두 절대 완전하신 하나님 앞에서 부족한 죄인인 것을 말해 줍니다. 그런데 “죄” 란 말은 참으로 심각하고 무서운 말입니다. “죄” 란 하나님의 완전한 법에 이르지 못하는 것을 말합니다. “죄”를 원어 (原語) 에서는 “하마르티아” 라고 하는데 그 말의 의미가 바로 하나님의 말씀을 과녁으로 비유한다면 그 “과녁을 맞추지 못하는 것” 을 말합니다. 그런데, “죄” 란 아주 무서운 것으로 “죄” 의 값은 “죽음” 이라고 성경이 가르쳐 줍니다. (로마서 6:23). 그러므로 아주 심각한 문제가 아닐 수 없습니다.
죄는 죽음을 요구합니다. 죄를 지은 죄인은 죽어야 합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법도 입니다. 사람은 모두 죄인입니다. 죄를 지어서 죄인이 아니고 죄인이기 때문에 죄를 짓지 않을 수 없는 것이 인간입니다. 그 아득한 에덴동산에서 아담이 죄를 지은 것이 나와 무슨 상관인가? 나는 죄가 없다고 한다면 그것은 착각입니다. 저는 김씨입니다. 내가 김씨인 이유는 우리 집 대대로 깁씨 이기 때문입니다. 아버지, 할아버지, 5대조 10대조 40대조 모두 김씨이므로 나도 김씨입니다. 마찬 가기로 모든 인류의 조상은 한 사람 아담인데 그 분이 죄를 지어 죄인이 되었기 때문에 그의 후손들인 인류는 한 사람도 예외 없이 모두 죄인이라는 말입니다. 죄의 대가는 죽음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법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그리스도가 우리를 대신하여 죽어 주신 것입니다.
죽음! 사람이 제일 두려워하고 무서워하는 것이 죽음입니다. 사람이 병을 앓거나, 어떤 사고를 당하여 생명이 위험할 때는 반드시 죽음을 두려워하는 것입니다. 죽음은 인생의 가장 큰 걱정거리이고 불안의 원인입니다. 사람이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을 수 있다면 얼마나 축복된 사람이겠습니까? 얼마나 부러운 사람입니까? 인생은 태어나서부터 인생의 삶을 마칠 때 까지 늘 불안, 초조, 공포속에 살아가는데 그 근본적인 원인은 바로 죽음이며 죽음의 원인은 바로 죄라는 것입니다. 어떻게 하면, 우리가 죽음의 공포에서 해방될 수 있을까요?
죽음의 공포와 불안에서 해방되는 방법이 있습니다. 예수님을 믿음으로 가능해집니다. 왜 그럴까요? 그 분은 하나님 바로 그분이신데 우리로 하여금 죄에서 해방되어 죄에 대한 두려움이 없고 따라서 마음의 평화를 누리게 하시고 영원히 살수 있는 길을 열어 주시기 위하여 오신 분입니다. 성경 요한복음 14장27절에는 “평안을 너희에게 끼치노니 곧 나의 평안을 너희에게 주노라 내가 너희에게 주는 것은 세상이 주는 것 같지 아니하니라. 너희는 마음에 근심도 말고 두려워하지도 말라” 라고 예수님이 친히 말씀 하셨습니다. 진정한 마음의 평화는 예수님을 믿을 때 오게 됩니다. 그분은 평강의 왕으로 오신 분입니다. 이사야서 9장을 읽어 보세요. 그 분은 우리에게 평안을 주시고 영생을 주시는 분입니다.
이런 마음의 평화는 곧 영생으로 이어 집니다. 예수님은 이 세상에서 우리에게 마음의 평화를 주셔서 두려움 없이 살아가게도 하시지만, 또한 그 보다 더 중요한 것은 사람은 누구나 때가 되면 죽을 수 밖에 없는데 죽은 다음에 어떻게 되는 것인가요? 죽은 다음에도 하나님에게 올라가서 영원히 살수 있는 길, 즉 영생 (永生, Eternal Life)을 주신 것입니다. 영생의 길을 열어 주신 것이 아니라 영생 그 자체를 주신 것입니다. 성경 요한복음 3장 16절에는 “누구든지 저를 믿는 자는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으리라” 라고 하셨습니다. 천당에는 눈물과 한숨이 없습니다. 그곳에는 하나님을 직접 모시고 앞서간 믿음의 형제 자매들을 만나며 기쁨으로 영원을 보내는 곳입니다.
저는 비행기를 자주 타는 편인데 비행기 안에서 옆 좌석에 앉은 승객에게 곧 잘 묻습니다. "Where are you going to spend your eternity, is it going to be in the Heaven or in the Hell? There is nothing in between, you know. I thought you might want to know" 라고 합니다. (당신은 어디서 영원을 보내기를 원하십니까? 천당입니까 혹은 지옥입니까? 중간 치기란 없다는 것을 아시는지요?) 우리는 모두 어디서 영원을 보내는가가 중요합니다. 사람은 이 세상에서는 영원토록 살수 없습니다. 아무리 힘이 장사 같아도 때가 되면 가야하고, 아무리 부귀영화를 누려도, 아무리 높은 권세를 갖고 재물이 많아도 성경은 시편 90편10절에 인생의 수명은 70이고 길어야 80인데 그나마 쏜 살같이 지나고 수고와 슬픔뿐이라고 말씀합니다. 짦은 인생은 그 자체가 수고와 슬픔뿐입니다.
이세상에서 우리의 소망이 어디 있습니까? 자식에게? 품안의 자식이 장성해서 집을 나간 후 부모의 마음을 헤아려 효도하는 자식이 몇이나 됩니까? 재물? 재물은 덧없는 것입니다. 오늘 있다가도 내일 모두 잃어 버릴 수도 있습니다. 명예? 마찬가지로 정치가 판을 치는 마당에 오늘의 명예가 내일의 실직자로 전락할지 누가 장담합니까? 이 세상에는 아무것도 우리의 마음을 주고 살만한 것이 없습니다. 이 세상에 사는 목적은 예수를 통해서 하나님을 알고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준비를 하는 나그네가 여관방 신세를 지는 것과 같은 것입니다. 그래서 하늘나라에 들어 가기전에 이 땅에 살 때부터 하나님에게 영광을 돌리며 하나님 기뻐하시는 일을 하면서 천당에 갈 준비를 하면서 살아가는 것이 지혜 있는 사람들입니다. 성경 잠언 6장에 보면 개미들의 일하는 모습이 나옵니다. 개미는 누가 뭐라고 하지 않아도, 감독하는 이가 없어도, 스스로 닥아 올 겨울을 준비하며 열심히 일을 합니다. 인생은 개미에게서 배워야 합니다. 인생에도 겨울이 있기 때문입니다.
인생에도 봄, 여름, 가을, 겨울이 있습니다. 봄과 여름에는 열심히 일해야 할 때입니다. 일하지 않으면 가을에 거두어 드릴 것이 없게 됩니다. 거두어 드릴 것이 없으면 쓸쓸한 겨울을 맞습니다. 굶어 죽게 됩니다. 이 말은 이 세상에 살 동안 기회가 있을 때에 예수를 믿어 영생의 축복을 이미 받아 놓아야 이 다음 노년이 되어서, 아니면, 언제라도 이 세상을 떠나게 되면 영원한 천국에서 영원히 행복을 누릴 수 있다는 말입니다. 사람이란 늙어서만 세상을 떠나는 것은 아닙니다. 젊은 사람도 하나님이 원하시면 언제라도 우리의 곁을 떠나지 않습니까? 여러분의 곁에서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이미 떠났습니까? 또 지금 떠나고 있습니까? 그 다음이 내 차례가 되지 말라는 법은 어디 있습니까? 사람의 생명은 하나님이 주셨고, 그 하나님은 그가 원하시는 떄 에 우리의 생명을 거두어 가십니다.
눈에는 보이지 않아도 이 세상은 하나님이 지배하시고 또 개인의 생명도 개인의 일생도 하나님이 지배 하십니다. 내가 오늘 밤 잘못 된다면 나는 어떻게 되는가? 하고 한번 생각한 적이 있는지요? 사람은 짐승처럼 이 세상에 태어나서 아무렇게나 먹고 자며 살다가 죽으면 그것으로 끝나는 그런 무책임한 존재가 아닙니다. 사람에게는 영혼이 있습니다. 하나님은 최초의 인간을 흙으로 만드시고 다시 코에 입김을 불어 넣어서 비로서 영혼을 가진 사람이 되었습니다 (창세기 2:7). 그런데 하나님이 주신 그 영혼은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하지 않아서 타락하여 죄에 빠지게 되었고, 결국은 죽음을 불러왔습니다. 모든 육체는 죽어야만 하고 인생이 사는 땅에는 엉겅퀴와 가시덤불이 나서 사람을 괴롭히고, 사람들은 힘들게 일해야 먹게 되었고, 약육강식(弱肉强食) 의 세상이 되어 버렸습니다. 모두 죄가 불러 온 무서운 결과들입니다. 죄의 결과가 얼마나 무서운가를 보십시오. 죄를 지으면 죽어야 합니다. 죄는 세상을 이 지경으로 만들어 버렸습니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