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의 영혼은 죄로 인하여 어두워 졌습니다. 인간은 하나님을 선천적(先天的)으로 싫어합니다. 이것이 인류의 최대의 불행입니다. 하나님을 떠나면 불행해집니다. 인류 시조 아담은 죄짓기 전에는 행복했습니다. 동산의 모든 짐승을 다스리고, 자연을 다스리고, 힘들게 일하지 않아도 먹을 수 있었고, 하나님을 순종하면서 사는 동안은 얼마나 행복했는지 모릅니다. 그러나 그가 하나님의 명령을 순종하지 않고 죄를 범한후로는 사정이 달라 졌습니다. 그렇게 좋기만 하던 하나님이 두려워 졌고, 마음속에 불안이 찾아 왔고, 뿐만 아니라 “죽음” 이라는 인류 최대의 적이 찾아 와서 늘 위협합니다. 불안의 나날을 보내게 되었습니다.
사람은 짐승과 다릅니다. 사람은 이 땅에 사는 동안 자기가 행한 것에 대한 심판을 하나님에게 받도록 되어 있습니다. 악한 사람이 잘된다고 부러워 할 것 없습니다. 악한 사람이 짧은 이 세상에서는 성공할지 몰라도 하나님은 반드시 존재하시고, 그 하나님은 오래 참으시면서 그 악한 사람이 하나님에게 돌아오기를 바라지만 그 사람이 죽을때까지 뉘우치지 않고 회개함이 없으면 죽은 뒤 반드시 심판이 있습니다. 성경 요한복음 5장 28절에는 그날이 있을 것을 말하고 있고, 또한 히브리서 9:27에는 앞서 인용한대로 “사람이 한번 죽는 것은 정한 것이요 그 다음에는 반드시 심판이 있다” 라고 했고, 고린도후서 5장10절에도 “우리가 우리 육체로 행한 대로 반드시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 서야 하리니” 라고 했습니다.
물론 여기 고린도후서 5:10 의 말씀은 예수를 이미 믿고 있는 사람들에게 하늘나라에서의 상급을 말한 것이지만, 그 무서운 심판의 날이 서서히 다가오고 있습니다. 예수님이 이 땅에 다시 오시는 날이 그 심판의 날입니다. 초림의 예수님은 복음을 전하며 하늘나라를 전파하러 오셨고 죄인들을 불러 회개시키려고 오셨으니 다시 오시는 예수님은 무서운 심판주로 오심을 알아야 합니다.
그러나 주님이 오시는 심판날 만이 아니라, 엄밀한 의미에서, 내가 죽으면 그 죽는 날이 그 사람에게는 무서운 심판의 날이 됩니다. 많은 사람들이 세상의 종말을 말하지만, 세상의 종말이 문제가 아니라 개인의 종말이 더 시급합니다. 아무도 자기가 죽을 날을 알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준비되어있는 분들, 즉, 예수를 믿는 분들에게는 언제 죽어도 문제 될 것이 없고, 언제 세상의 종말이 온다 해도 아무 두려울 것이 없습니다. 오리려 예수를 잘 믿는 사람들은 “주 예수여 어서 오시옵소서” 라고 기도하면서 주님의 재림을 고대하면서 천국의 소망 가운데 살아 기쁨으로 살아갑니다. 우리의 궁극적인 소망은 하늘나라이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고향은 하늘나라이기 때문입니다. 여행길을 떠난 나그네는 늘 고향에 돌아갈 날을 생각하는 법입니다. 인생이란 이곳에 얼마를 살고 나면 반드시 갸야 합니다.
돌아갈 고향이 없는 사람은 얼마나 불상합니까? 저녁 노을이 붉게 물드는데 낙엽이 한 잎 두입 소리 없이 떨어지는 공원의 벤취에 앉아서 물그럼이 서산에 넘어가는 해를 바라보는 노숙하는 사람을 본 적이 있습니까? 모두 여기서 열심히 주어진 인생을 60년이건 80년이건 살다가, 하던 일을 고스란히 둔 채로 갈 수 밖에 없는 것이 인생입니다. 세상에서 부귀 영화를 누리며 일신의 영달을 위해 살았어도 갈 때는 그 모든 부귀영화를 가지고 갈수도 없어 무척 외롭게 떠납니다. 친구도 친척도 자식들도 동행해 주지 못하는 무척 외로운 나그네 길입니다. 세상 살아가는데 급히 해야 할 일들이 많이 있지만, 갈 준비를 하는 일은 무엇보다 가장 시급한 일입니다.
사람은 누구나 생명에 대한 애착이 있습니다. 불치의 병에 걸린 사람에게 올바른 진단을 해주고 처방약을 주어도 건강하다고 고집한다면 그 사람의 결국이 어떻게 될까요? 세상 사람들이 이와 같습니다. 우리를 영원한 지옥의 고통으로 인도하는 죄 문제를 신앙으로 해결하시라고 간절히 전도하면 모두 싫어합니다. 아담 이후의 모든 사람은 누구나 처음에는 하나님을 싫어합니다. 하나님 없이 혼자 살수 있을 것처럼 교만해 집니다. 사실 따지고 보면, 예수님을 믿지 못하는 이유는 내속에 도사리고 앉아 있는 교만한 마음 때문입니다. 스스로가 똑똑하여 하나님보다는 낫다는 식의 사고방식입니다. 그러기에 성경은 “십자가의 도가 멸망하는 자에게는 미련스럽게 보이지만 구원얻는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이라“고 고린도전서 1:18에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런 교만한 마음들이 예수를 믿고 나면 전혀 다른 사람으로 변합니다. 겸손해져서 자신의 지난날들을 회개하고 자신을 하나님 앞에서 보잘 것 없는 죄인으로 인정하고 예수님에게 나아오게 됩니다. 그것은 하나님이 하시는 일입니다. 생각해 보십시오. 그렇게도 완악한 내 마음을 내가 마음대로 통제할 수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아닙니다. 사람은 언제나 하나님을 싫어합니다. 하나님은 내가 어려울 때 잠시 도움을 받는 마술사 정도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런 사람이 전혀 달라지고 자신의 부족함을 느끼고 하나님을 위해 살려는 마음이 생기는 것은 우연도 아니고 스스로의 힘으로 되어 지는 것도 아니고, 순연히 하나님이 하시는 일입니다. 성경은 모든 사람이 하나같이 죄인으로 치우쳐서 죽었던 사람들인데 사랑이 많은 하나님이 창세전에 그의 기쁘신 뜻대로 지옥에서 건져 주시고 싶은 사람들을 택해서 예수님을 믿을 마음을 주셨다고 가르쳐 줍니다 (에베소서 2장1-8절). 여기에 기적이 있고 하나님의 참 사랑이 있습니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