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을 읽으십시오. 성경을 연구하십시오. 젊어서 성경을 되도록 많이 외우십시오
늙어서 눈이 침침해 지면 성경을 읽고 싶어도 읽을 길이 없습니다. 귀가 어두워지면 설교를 들을수 없게 됩니다. 모든 것은 기회가 있습니다. 기회 있을 때, 젊을 때, 성경을 가까이 하십시오. 성경은 생명의 말씀입니다. “주의 말씀은 내 발에 등이요, 내 길에 빛이 니이다.”라고 성경은 시편 119“105절에 말씀하십니다. 과연 성경은 캄캄하고 험한 인생길을 걸어가는 우리 앞길에서 빛의 역할을 합니다. 사람이 사는 목적이 무엇일까요? 사람이 사는 제일되는 목적은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고 그를 영원토록 즐거워 하는 것입니다. 그 길은 성경을 읽고, 성경을 연구하고, 성경대로 살면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많은 사람이 불안해하고, 공포에 쌓여 사는 것은 성경을 멀리 하기 때문입니다. 교회는 잘 출석하는데 교회를 나오면 전혀 다른 사람이 되어 불신자와 같이 되어 불신자 처럼 생활하는 사이비 신자들이 많습니다. 이들은 예수를 바로 믿는 사람이 아닙니다. 예수를 바로 믿지 않으면 구원도 없습니다. 성경은 신약, 요한일서 3:9에 “하나님께로 난자마다 죄를 상습적으로 짓지 아니하나니 이는 하나님의 씨가 그 속에 있음이요” 라고 했습니다. 여기서, “상습적으로” 란 말은 번역판에는 없지만 원문인 헬라어의 문법이 그것을 잘 들어 내 주고 있습니다.
성경에는 모를 것이 많습니다. 왜 어려운가 하면, 자꾸 읽도록 하기 위함입니다. 일년에 계획표를 만들어 놓고 창세기부터 계시록까지 읽어 보세요. 자꾸 읽으면 예전에 몰랐던 것들이 희미하게 혹은 환하게 알려 집니다. 성경 읽지 않고는 신앙이 절대로 성장하지 않습니다. 또 성경 읽다가 모르는 것은 교회 목사님에게 물어 보십시오. 목사님은 성도들의 신앙을 돕기 위하여 신학 공부를 전문으로 하신 분이고 생활비를 받으시면서 전적으로 성도를 돕는 분이요 믿을수 있는 분입니다. 절대로 이단자 (異端者, heretic)에게 가서 성경을 공부하거나 그들에게 자문을 구해서는 안됩니다. 세상에는 성경을 잘 못 가르치는 이단들이 있습니다. 신학을 제대로 공부하지 않고 목사가 된 분도 있을수 있습니다. 그래서 참다운 지도자에게 배우라는 말입니다. 여러분께서 출석하시는 교회의 목사님은 믿을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둘째, 예수님을 믿는 사람, 기독교 신자는 기도해야 합니다. 기도란 하나님과의 생명줄이고 전화 줄과 같습니다. 기도는 어렵게 생각할 필요없습니다. 보통 사람과 대화 하듯 내 사정을 하나님에게 경건하고 진실된 마음으로 알리는 것입니다. 전화는 혼자서 말하는 법이 없고, 반드시 두사람이 주거니 받거니 대화 합니다. 기도는 내가 내 영혼에서 울어 나오는 말을 일방적으로 하나님에게 고하면서 하나님의 지혜와 은혜를 구하는 행위입니다. 그러므로 기도는 둘이서 대화하는 것입니다. 비록 육신의 음성은 들려오지 않아도 하나님은 영적으로 나와 교제하십니다. 기도를 마치고 나면 마음에 평안이 오고 기쁨이 옵니다. 하나님의 영이 나를 위로하시고 나를 인도하시기 때문입니다. 앞길이 캄캄할때가 있지요? 기도하십시오. 내 힘으로 도저히 해결 못할 일들이 있지요? 기도 하세요. 사람이 못 한다고 하나님도 못 하신다고 생각하는 것은 큰 잘 못입니다. 하나님은 모든 것을 하실수 있는 분입니다.
성경은 쉬지 말고 기도하라고 데살로니가전서 5장17절에 말하였고, 또한 기도를 쉬는 것도 죄라고 사무엘상 12:23에 말하고 있습니다. 분명, 기도를 쉬는 것은 죄입니다. 기도를 쉬게 되면 하나님과의 교통이 끊어지게 되어 온갖 세상의 염려에 시달리게 되고 마귀가 틈을 탑니다. 마귀는 사탄의 앞잡이로서 구약성경 이사야서 14:12-16절에 보면, 하나님을 옹위하던 천사가 본연의 자세를 떠나 교만하여져서 하나님과 같이 되겠다고 하다가 하나님에게 형벌을 받아 사탄으로 전락하여 하나님에게 복수하기 위하여 에던 동산에 들어가서 인간을 유혹했는데 하나님은 다시 창세기 3:15에서 사탄과의 선전포고를 선언하여 그때부터 하나님의 나라와 사탄의 나라의 싸움이 시작되었고 지금은 "New Age 운동“ 이라고 하는 기독교 파괴 운동으로 펴져 나가고 있습니다. 초기 성도들의 전도를 사형으로 막으려 했으나 실패하자 사탄은 이제 마지막 카드를 꺼내 들었는데 그것이 기독교의 문화를 타락시키자는 술책입니다. ”사탄” 이란 말은 원래가 ”대적하는 자”(adversary)란 의미입니다.
그런 운동은 교회에서 예배에 대한 해이한 의식 구조, 하나님은 거룩하고 두려운 분이라기보다는 사랑 많은 친구라고 하는 안이한 생각, 예배는 하나님을 기쁘게 하는 것 보다는 사람들의 마음을 즐겁게 해주는 오락(娛樂, entertainment) 위주로 서서히 탈바꿈을 해 가고 있습니다. 교회는 극장의 무대같이 되어 버린지 오래입니다. 구약 레위기 10장 1절 이하에 보면, 하나님에게 예배를 잘 못 드리다가 당장 목숨을 잃은 두 사람의 이야기를 기록하고 있는데, 제사장 아론의 두 아들이었던 나답과 아비후 라는 두 인물입니다. 이들은 하나님이 명하시지 않은 다른 향을 드리다가, 다시 말하면, 제멋대로 향불을 드렸다가 하나님의 진노 (震怒)를 사서 그 자리에서 불이 나와서 두 사람이 모두 불에 타서 죽었습니다. 실제로 역사적으로 있었던 일입니다. 무서운 경종입니다. 예배는 자기 멋대로 드려 질수 없습니다. 무엇이든지, 성경에서 언급하지 않는 것은 해서는 안 됩니다. 그러나 오늘날의 아비후와 나답들은 성경에 금하지 않았으면 해도 된다고 생각합니다. 잘못된 생각입니다.
성경에 금하지 않았다고 하라는 말이 아닙니다. 이것이 자유주의와 보수주의의 차이점입니다. 자유주의는 “무엇이든 성경에서 하라는 말이나 하지 말라는 말이 없으면, 해도 된다” 한 생각이고, 보수주의는 “성경에서 하라는 말이나 하지 말라는 말이 없으면 해서는 안된다” 란 생각입니다. 두 생각은 근본적으로 다릅니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