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를 믿고, 구원의 감격을 누리는 사람은 남에게 이런 복되신 소식을 전하려는 마음에 불타는 것입니다. 내가 죽을 병에 걸렸다가 어떤 명의 (名醫)의 처방으로 좋은 약을 써서 완쾌 되었다면, 죽을 병에 걸린 다른 환자들에게도 그 명의를 소개하지 않겠습니까? 꼭 같은 이치입니다. 우리는 얼마나 전도를 많이 하는가에 따라서 구원을 받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전도하는 씨만 뿌리면 하나님이 자라게 하시고 열매를 맺게 해 주십니다. 고린도전서 3:6-7을 참고 하십시오. 바울은 그의 디모데라는 청년에게 “기회가 되든 되지 못하든 열심히 전도하라” 고 디모데후서 4:1절에 말하고 있습니다. 우리말에는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로 되어 있지만, 원문의 의미는 “기회가 있든지 없든지” 란 의미입니다. 언제나 전도하라는 말입니다.
가만 따지고 보면, 가장 시급한 것은 예수를 믿는 것입니다. 사람은 언제 죽을지 모르기 때문입니다. 예수 믿기를 뒤로 미루다가 어떤 연고로든지 죽게 되면, 그날이 그 죽은 사람에게는 지옥으로 들어가는 것이 100 퍼센트 보장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내가 가장 사랑하고 가장 아끼는 사람이 누구입니까? 그에게 줄 수 있는 가장 귀한 선물이 무엇입니까? 그것은 예수를 믿게 하는 복음 전도입니다. 저의 경험으로는 예수를 모르다가 저에게 전도를 받고 예수를 믿게 되면 그는 평생에 그 은혜를 잊지 못하여 가장 친근한 벗이 됩니다. 그런 사람이 신앙이 성장하면, 은혜 받고 자신의 남은 여생을 하나님에게 바치겠다고 결심하고 성경 연구원에 입학합니다. 열심히 공부하고 기도하면서 준비하고 나면 정식 미국 신학교에 들어가서 신학을 공부하여 목사가 된 분들이 몇 분 됩니다.
1994년 8월말에서 9월중순까지 러시아 모스크바에 갔을 때, 저의 제자 한 사람이 그곳 우크라이나 지방, "네이쁘로뻬떼르스크 (Dneipropetersk)“에서 열심히 선교하고 있음을 보고 마음이 즐거웠던 일을 지금도 기억합니다. 제가 옛날 필라델피아에서 공부할 때, 안경을 맞추기 위하여 어느 미국 안경점에 들린적이 있었는데, 안경점 주인은 유대인이 었습니다. 인사하는 과정에서 웨스트민스터 신학교에 다니는 신학생이라고 소개했더니, 주인은 반색을 하면서,“Do you know Dr. Philip Hughes? " 라고 묻기에 저는 너무 반가워서, ”Yes, he is my Th.M advisor." 라고 했더니 무척이나 반가워 하면서, “He saved me and my wife." 라고 하면서 안경 값을 반이나 깎아 주었습니다. 그 의사의 이름은 Dr.Frank Foedick 이었는데 지금도 그때 감격을 잊지 못합니다.
당시 Philip Edgecumbe Hughes 교수는 웨스트민스터 신학교에서 신약분야의 석사 과정을 공부하던 저의 지도 교수 세 분 중 한 분이어서 늘 그 분의 학문과 인격에 감화를 받으면서 나도 그 교수처럼 되리라 하는 막연한 기대 속에 꿈을 키우던 시절이 었습니다. Dr. Hughes는 영국 태생이었으나 Australia 의 Melbourne에서 신학을 기르치다가 미국에 청빙되어 제가 공부하던 웨스트민스터 신학교에서 만나게 된 분입니다. 저에게 영향을 주신 분들이 많이 있지만 Hughes교수를 잊을 길이 없습니다. 그는 제가 졸업한 후 몇 년후 천국으로 가셨습니다. 다른 한 지도교수 평생을 독신으로 지나신 Dr. John Skilton 도 소천하셨고, Dr. Richard Gaffin 만 생존합니다.
옛날, 1930년대 우리 나라가 일본 사람들의 식민지로 있으면서 온갖 핍박을 당하던 때, 평안도에 최봉석이라는 전도사가 계셨는데 공부보다도 전도에 더 흥미가 있었습니다. 그 분의 별명은 최권능 전도사 라고 했는데 평양 전차정거장에 서 있다가 전차에 올라타고는 큰 목소리로 “예수 천당” 이라고 외치고는 내려오곤 했습니다. 그 분은 나중에 목사로 안수를 받고 큰 일을 한 분이지만 진정으로 거듭나서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의 눈에는 죽어 가는 영혼들이 보이게 마련이고 그 영혼들을 안고 울게 마련입니다. 우산 장사는 늘 하늘만 처다 보고, 신발 장사는 늘 지나 가는 사람들의 신발만 처다 봅니다. 거기에 관심이 있기 때문입니다. 예수 믿는 성도는 길에 오고 가는 사람들의 영혼을 처다 봅니다. “저 분은 구원을 받은 분인가? 아니면 아직도 구원 얻지 못하고 지옥에 들어 갈 사람인가?” 이런 것들을 생각합니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