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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21-07-25 20:17
삼위 하나님의 위격의 이해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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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글쓴이 : gopeace
조회 : 1,648  

앞서 살펴 본 바와 같이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 하나님의 세 위격들이 각각 고유한 위격의 특성을 지니고 있다면 이러한 위격의 특성들로 인하여 세 본질들이 있게 된다고 말할 수는 없는 것일까? 이러한 의문과 관련하여 교회는 세 위격들의 특성을 하나님의 본질로 이해하려는 어떠한 시도도 옳은 견해로 인정하지를 않았다. 

 

그레고리 닛사는 아블라비우스에게 보내는 편지(Letter to Ablabius)에서 이 의문에 대해 답을 하였다. 우선 그는 하나님의 세 위격들이 원인관계의 측면에서 서로 구별이 됨을 지적하였다. 예를 들어 아버지 하나님은 원인(the Cause)이시며 아들 하나님은 그 원인에 기인하신 자(of the Cause)이시다. 그러나 그레고리 닛사는 이러한 위격의 원인관계성이 하나님의 본질(nature)을 의미할 수도 있지 않을까라는 가능성을 전적으로 부정하였다. 그에게 있어서 이러한 원인관계성(causal relationship)은 존재 방식의 차이(difference in manner of existence)를 가리킬 뿐 결코 본질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었다. 

 

갑바도기아 교부 중 한 사람인 그레고리 나지안주스(Gregory of Nazianzus) 또한 쓰기를 “아버지 하나님을 아버지라 일컬음은 어떤 본질이나 행동을 가리키는 이름이 아니라 단지 아들 하나님에 대하여 아버지 하나님이 갖는 관계를 가리키는 이름이다.”라고 하였다. 따라서 “왜 세 위격의 하나님이 세 하나님이 아니신가?”라는 질문에 대한 갑바도기아 교부들의 대답은 위격을 구별하는 세 특성들이 하나님의 본질과는 상관이 없는 원인 관계성이라는 것이었다. 왜냐하면 위격들의 위격적 개별 특성들이 하나님의 본질의 영역에 속한 것이 아니며 따라서 하나님의 본질의 복수성을 유발시키지 않기 때문이다. 

 

갑바도시안 교부들이 삼위일체론의 형성에 있어서 공헌한 중점은 바로 이와 같은 본질과 위격의 구별을 통하여 하나님이 ‘한 본질의 한 위격’의 하나님이 아니라 ‘한 본질의 세 위격들’의 하나님이시라는 것을 확정한 것이었다. 

 

이러한 갑바도기아 교부들의 결론적인 정리는 이른바 한 본질, 세 위격(mia ousia, treis hypostases)의 표현으로 압축되었으며 이들의 도움으로 콘스탄틴노플 공의회(381년)는 니케아 공의회(325년)가 남겼던 과제 곧 동일본질(homoousios)의 해석과 관련된 하나님의 단일성의 문제를 해결하면서 세 위격의 구별을 분명하게 확정할 수 있었다. 

 

이처럼 세 위격들의 개별 특징들을 관계성으로 이해하는 갑바도기아 교부들의 시도는 어거스틴(Augustine)의 신학에서도 확인이 된다. 예를 들어 아리안주의자들이 하나님께 속한 어떤 것도 우유적(偶有的, accidental)일 수가 없으므로 하나님에 관계된 모든 것은 필유적(必有的, necessary)이며 본질적(substantial)인 것으로 이해하여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이러한 이해를 기초로 아리안주의자들은 세 위격들의 개별 특성들이 하나님의 본질로서 이해되어야 하며 따라서 세 위격들의 하나님은 결국 서로 구별이 되는 세 본질의 하나님이신 것이라고 주장하였다. 

 

이러한 아리안주의자들의 이해에 대하여 어거스틴은 필유적인 본질과 우유적인 것이라는 두 범주 이외에 관계의 범주를 제시하므로 아리안주의의 오류를 비판하였다. 그들은(아리안주의자들) 하나님에 대해서 말하여지는 것이나 하나님을 설명하는 것으로 이해되어지는 어떤 것이든지 우유에 속한 것이 아니라 본질에 속한 것이어야 한다는 이해로부터 자신의 주장을 출발하고 있는 것 같다. 

 

그들은 따라서 아버지 하나님께 속한 출생치 않으심은 그의 본질에 따른 것이며 아들 하나님께 속한 출생하심은 아들 하나님의 본질에 속한 것이라고 주장한다. 이어서 그런데 출생치 않으심과 출생하심은 서로 다른 것이므로 아버지 하나님의 본질과 아들 하나님의 본질은 서로 다르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하나님은 불변하시므로 하나님께 속한 어떤 것도 우유적일 수는 없다하더라도 하나님과 관계하여 말하여지는 모든 것이 다 본질과 관련하여 말하여지는 것은 아니다. 왜냐하면, 아버지 하나님은 아들 하나님과 관련하여 말하여지고 있으며 아들 하나님은 아버지 하나님과 관련하여 말하여지고 있는 것처럼, 우유적이지 않은 어떤 것들이 관계에 따라 말하여 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비록 아버지 되심과 아들 되심이 서로 다르다 할지라도 그들의 본질이 다른 것은 아니다. 왜냐하면 아버지 하나님과 아들 하나님이 그렇게 일컬음을 받는 것은 본질에 따른 것이 아니라 관계에 따른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관계는 변할 수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우유적이지도 않은 것이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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