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שָׁלוֹם עֲלֵיכֶ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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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21-07-26 19:39
삼위 하나님의 위격의 이해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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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글쓴이 : gopeace
조회 : 1,365  

아리안주의자들이 주장하는 삼위 하나님의 세 본질론을 비판함에 있어서 갑바도시안 교부들이 그러하였듯이 어거스틴 또한 원인관계성에 근거하여 삼위 하나님의 복수성을 설명하였던 것이다. 갑바도시안 교부들과 어거스틴에 관한 이러한 관찰은 벨레키(Velecky)가 말한 대로 갑바도기아 교부들의 사상이 어거스틴을 통해 라틴신학에로 전승되어졌음을 보여준다. 


예를 들어 아퀴나스(Thomas Aquinas)는 하나님의 복수성을 관계로서 풀이하였다. 아퀴나스는 주장하기를 하나님 안에는 관계의 실재가 있으며 이러한 관계는 하나님의 본질과 관련하여 구별되는 것이 아니라 관계자들 간의 관계적 대립 안에서 구별된다고 하였다. ‘아버지 하나님’은 아버지 되심으로부터 ‘아들 하나님’은 아들 됨으로부터 일컬어진 이름이다. 그런데 아버지 되심과 아들 됨이 하나님 안에 있는 관계의 실재가 아니라면 하나님이 실재에 있어서는 아버지도 아니시며 아들 또한 아니시며 단지 정신적으로만 하나님을 그렇게 인식하기 때문이라는 결론에 이르게 된다. 

 

이것은 사벨리안 이단의 가르침이다. (그러므로) 하나님 안에는 구별이 실재하고 있어야 한다. 이것은 물론 완전히 단일하며 순일(純一, simple)한 하나님의 본질의 절대적인 실재를 고려할 때에 그렇다는 것이 아니라 관계에 의하여 생각할 때 그렇다는 것이다. 아퀴나스에 따르면 삼위일체 하나님 안에는 관계들이 존재하며 이 관계들은 실재적이다. 이 실재성을 부정하는 것이 바로 사벨리안 양태론의 오류였다. 

 

아퀴나스는 삼위일체 하나님의 각각의 위격은 신적 본질에 있어서는 아무런 차이가 없으며 무한성, 창조의 권능, 섭리 등과 같은 절대 개념에 속한 것에 관련하여서도 아무런 차이가 없다고 이해하였다. 오직 관계의 개념만이 하나님 안에서의 구별을 설명하여 주는 유일한 원리라고 말하였다. 

 

결국 이상의 관찰을 통해 살펴본 신학자들의 견해들은 삼위일체론에 있어서 하나님의 위격의 복수성을 본질과 관련하여 이해하는 것은 옳지 않으며 위격이 셋이라고 하여 본질 또한 셋이어야 한다는 아리안주의자들의 주장들은 오류임을 밝혀 주고 있다. 

 

요컨데 교회는 삼위일체론을 정립함에 있어서 하나님의 본질과 위격을 혼동하거나 동일시하는 어떠한 이론도 부정하고 이들의 명확한 구별을 확고히 하였던 것이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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