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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21-07-27 20:04
삼위 하나님의 위격의 이해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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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글쓴이 : gopeace
조회 : 1,592  

2. 하나님의 위격의 존재론적 접근

교회는 지금껏 본 바와 같이 하나님의 본질과 위격을 구별함으로써 하나님의 세 위격들을 존재론적 실재가 없는 이름에 지나지 않은 것으로 해석하면서 오직 한 본질의 한 분 하나님만을 고백하였던 사벨리안 양태론을 정죄함과 동시에 세 위격들의 하나님이 서로 다른 본질을 지닐 수밖에 없음을 주장하면서 세 위격들이 신성의 본질에 있어서 서로 동등한 완전한 하나님이심을 부정하였던 아리안주의를 정죄하였다. 

 

하나님의 위격은 본질과 혼동이 되어서는 안 되며 따라서 세 위격들의 하나님이 세 본질들의 하나님으로 이해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을 분명히 하였던 것이다. 교회의 공식 가르침은 언제나 삼위 하나님의 각 위격들의 구별성을 강조하면서도 이 구별성을 본질의 차이와 관련하여 해석하려는 시도를 정죄하였다. 

 

이처럼 하나님의 위격이 존재론적 실재를 결여하고 있는 이름에 불과한 것이 아니며 그렇다고 해서 본질인 것도 아니라면 존재론적 의미에서의 하나님의 위격은 무엇일까? 이러한 객관적 측면에서의 하나님의 위격을 이해하기 위한 동방교회와 서방교회의 주요 신학자들의 노력을 살펴봄으로써 이 질문에 대한 답을 찾아보기로 한다. 

 

* “트로포이 휘파르크세우스”

우선 살펴볼 것은 위격을 구별하기 위하여 갑바도기아 교부들인 바실과 그레고리 닛사가 사용하였던 흔히 존재양식(modes or ways of being)으로 번역이 되고 있는 ‘트로포이 휘파르크세우스tropoi hyuparkseus)’라는 용어이다. 

 

바실은 세 위격들이 영광과 신성에 있어서는 서로 친밀히 하나로 결합되어져 있음에도 ‘트로포이 휘파르크세우스’에 있어서 서로 구별되고 있다고 설명하였다. 말하자면 관계성으로 위격을 구별하였던 갑바도기아 교부들은 후에 이 관계성을 ‘트로포이 휘파르크세우스’로 표현하였던 것이다. 

 

바실의 친구인 암필로치우스(Amphilochius of Iconium)는 “아버지, 아들, 성령이라는 이름들은 그 자체로 본질을 나타내는 것이 아니라 단지 ‘위격의 존재 혹은 관계의 양식’(a mode of hyparxis or relation)을 표현 한다.”라고 하여 바실과 동일한 이해를 나타내 보이고 있다. 

 

요컨데 바실과 그레고리 닛사 그리고 그들의 친구였던 암필로치우스와 디디무스(Didymus, the blind theologian of Alexandria)는 삼위 하나님이 서로 어떻게 다른가라는 질문에 대한 답으로서 세 위격들이 본질에 있어서 다른 것이 아니고 서로의 관계성에 따른 존재의 양식에 있어서(in their mode of hyparxis, being or subsistence) 다르다는 것을 말하기 위하여 ‘트로포이 휘파르크세우스’라는 용어를 사용하였다. 

 

이렇게 하여 출생치 않으심(agennetos), 출생하심(gennetos) 그리고 발출하심(ekporeutos) 등의 표현들은 본질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존재양식을 가리키는 것으로 이해되었다. 여기서 주의할 것은 위격을 구별하여 주는 개념으로서의 존재양식은 하나님의 위격의 개별적 특성들(distinguishing particularities of hypostases)을 가리킬 뿐이지 그 자체가 실재로 하나님의 위격은 아니라는 점이다. 

 

초대 교회 교부들은 위격 자체와 위격의 특성이나 속성을 동일하게 취급하거나 혼동하지를 않았다. 

예를 들어 바실은 각각의 위격의 속성을 ‘고유한 존재의 속성’ 혹은 ‘고유한 존재의 양식’으로 표현하고 있다. 스트라마라(Stramara)는 ‘트로포이 휘파르크세우스’의 뜻을 존재양식(mode of existence or being)으로 이해하기 보다는 존재화의 방식(manner of coming into existence)로 이해하는 것이 보다 더 정확함을 밝힘으로써 트로포이 휘파르크세우스가 위격(hypostasis)과는 다른 것임을 분명히 하였다. 

 

예를 들어 진흙은 토기그릇이라는 적어도 두 가지의 존재화의 방식(two possible manners of coming into existence)을 가질 수 있을 것이다. 도자기 만드는 회전 판위에서 손으로 빚어졌거나 아니면 형틀에 부어져 빚어졌거나 하였을 것이다. 그레고리 닛사가 이 구절에서 가리키고 있는 것은 존재의 현재 양식(the present mode of existence)라기 보다는 존재화의 방식(the manner of coming into existence)을 가리키고 있다. 

 

이처럼 어떤 존재의 모양이나 양식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어떤 존재가 그와 같은 존재의 모양이나 양식으로 드러나게 되는 방식을 가리키는 의미에서 그레고리 닛사는 ‘트로포이 휘파르크세우스’를 사용하고 있는 반면에 그에게 있어서 하나님의 위격(prosopon, hypostasis)은 구체적이며 개별적인 객관적 실체(a concrete individual objective entity)이다. 따라서 ‘트로포이 휘파르크세우스’는 하나님의 위격의 존재론적 지위를 설명하여 주지를 못한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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