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제국 박해에 ‘순교’로 응답했던 예수 신앙인들
최덕성 박사
예수가 무슨 의미를 지녔기에 왜 기독인들은 그를 자기의 목숨보다 더 귀중하게 여길까? 도대체 예수 신앙이 무엇이기에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 것일까? 로마제국 시민들이 갈릴리 촌사람들의 이야기에 사로잡히는 까닭은 무엇일까? 로마인들은 예수 신앙 운동 가담자들을 비웃고 눈치를 살피고 가까이 하지 않았다. 그러면서도 기독인들의 삶의 고결성, 진실성, 대담성에 감탄했다. 궁금증 때문에 숨이 막힐 지경이었다.
기독인들이 당하는 박해 상황을 겪어보고 싶은 열망에 사로잡혔다. 단순한 복음진리를 듣자마자 즉시 예수를 구원자로 믿었고, 끝이 보이지 않는 긴 터널 같은 참극의 행렬에 가담했다. 로마제국은 기독인들을 이방인 또는 이단자로 여겨 박해했다. 지중해 연안 사람들의 종교, 관습, 문화, 철학, 지식과 불일치했기 때문이다.
로마인들의 눈에는 예수 신앙인들이 신(神)―우상에게 절을 하지 않는 ‘무신론자들’이고, 시민행사―황제숭배에 불참하는 이단자들이고, 나무 위에 달려 처형당한 범죄자를 구원자로 믿는 어리석은 자들이었다. 기독인들에 대한 로마제국의 극심한 박해는 300년 동안 지속되었다. 로마는 외국 종교에 대체로 관용적이었다. 그러나 유독 기독인들을 가혹하게 박해했다.
탄압은 주로 집권자들의 정치적, 종교적 동기에서 비롯되었다. 정치인들은 예수 신앙이 로마의 통치에 위협적인 세력으로 부상한다고 생각하여, 로마의 옛 신들과 황제를 숭배하여 애국심을 촉진시켜 제국의 통일 유지를 꾀했다. 이교 사제들의 미신, 사리사욕, 로마인들의 편견이 박해에 가세했다.
칼과 십자가, 정치 권력과 예수 신앙 공동체, 황제와 ‘나무 위에 달려 죽은 구원자’의 대결은 생사를 건 싸움이었으면서도 처음부터 불공평했다. 칼을 가진 정치 세력과 믿음만을 가진 기독교의 대결은 공정하지 않았다. 그럼에도 공존도 타협도 허락되지 않았다. 관용과 포용이 용납되지 않았다. 어느 한쪽이 다른 한쪽에 굴복해야 했다. 그런데 치열한 전투에서 놀랍게도 칼이 아니라 십자가가 승리했다. 권력이 아니라 믿음이 승전했다.
목숨을 건 전쟁에서 기독인들은 영원한 주(Lord)에게 충절을 바쳤고, 신앙 안에서 공고하게 결속했다. 죽음으로써 자신들이 믿는 진리의 참 됨을 증언했다. 박해가 지속될수록 제국 정부가 감당하기 어려울 만큼 신도 수가 증가했다. 첫 3세기 동안 흘린 기독인들의 ‘피의 세례’는 예수 신앙 공동체의 로마 정착에 이바지했다.
베드로, 바울, 예수의 사도들이 가르친 십자가 구원의 복음과 진리는 성령의 역사 가운데서 사람들의 심혼을 사로잡았다. 삶을 변화시키고 내세 소망을 갖게 했다. 순교자 유스티누스(저스틴)은 기독교 신앙을 변호한 철학자이다. 그는 성직자도, 교회 직분자도 아니며 일정한 거처도 없었다. 이곳저곳을 다니며 예수구원, 영생의 복음을 전했다.
유대인, 그리스인, 로마인에게 진리를 전했다. 당시 감독, 장로, 집사보다 더 유익한 일을 해냈다. 예수 신앙을 지적으로 설명하고 논리적으로 변증했다. 저스틴은 철학자답게 기독교와 그리스 철학의 만남을 시도했다. 그의 사상 일부는 정통신앙과 불일치한다. 신학의 초보도 알지 못하는 철학자에게 완벽한 신학 체계를 기대함은 무리다.
저스틴은 교회에 유익한 사람이었고, 선량하고 고귀한 순교자들 가운데서 명예로운 자리를 차지할 자격이 있다. 순교자 저스틴을 만나면 초대교회 기독인들이 무엇 때문에 박해와 죽음을 마다하지 않았으며, 그들이 믿고 고백한 고귀한 신앙 이야기가 무엇인지를 들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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