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박해, 그 참극
기독인들에 대한 첫 박해는 유대인들이 주도했다. 구원의 복음을 증오한 자들은 예수를 십자가에 못 박아 죽였다. 집사 스데반을 돌로 쳐 죽였고 사도 야고보를 처형했다. 베드로와 요한을 여러 번 감금하고 고통을 주었다.
바울을 거칠게 다루었다. 예수의 친동생 야고보를 살해했다. 예루살렘의 목회자 시므온을 죽음(107)으로 몰아넣었다. 서머나의 감독 폴리갑의 화형을 사주했다. 유대인들은 적개심을 가지고 예수와 예수 신앙인들에 대한 지독한 험담을 유포했다.
저명한 교회사가 필립 샤프(Phillip Sharp)는 유대인들의 기독교 박해를 언급하면서, 그들의 행악과 배은망덕 때문에 거룩한 땅의 토양이 갈아엎어졌다고 지적한다. 존귀한 땅에 우상숭배 종교가 이식되었다. 로마의 감시관에게 입장료를 주고서야, 감람산 위에서 무너진 폐허 예루살렘을 내려다보고 애통할 수 있었다. 유대인들은 자기 나라의 수도를 방문하면 죽임을 당하는 비참한 처지로 전락했다고 한다.
로마제국은 초기 예수 신앙 공동체에 관용정책을 폈다. 억압을 했지만, 신앙을 가로막지는 않았다. 정복지 주민들이 믿는 종교에 제국의 안녕과 이익을 침해하지 않는 범위 안에서 관용을 베풀었다. 기독교가 만민이 신뢰할 만하고 만인을 구원하는 종교라는 소문이 널리 퍼지자, 통치자들은 기독인들이 집단적으로 불법을 저지르고 반역행위를 할 가능성이 농후하다고 생각하여 긴장했다.
주후 64년 경, 황제 네로는 로마의 대 화재의 방화 죄목을 기독인들에게 뒤집어씌우고 그들을 박해했다. 그는 기독인들을 용의주도하며 잔인하게 죽였다. 십자가에 못 박거나 화형에 처했다. 사나운 동물의 가죽을 뒤집어 씌워 개들에게 찢겨 죽도록 했다. 십자가에 매달아 불태웠다. 원형경기장에서 열린 경축일 행사의 오락물로 삼았다.
당시 황제와 원로원은 국민들의 애국심을 과시하려고 대중오락을 지원했다. 무사, 권투사, 레슬링 선수들, 검객들을 고용하여 죄인들을 고문하는 광경을 보여주었다. 로마인들의 증오심을 한쪽으로 몰아 애국심을 고취시켰다. 그들은 기독교인들을 원형경기장에서 공개적으로 처형하여 사회통제 비용을 줄였다. 로마제국의 기독인들에 대한 박해는 4세기까지 지속되었다.
제2차 박해는 주후 95년 경 황제 도미티아누스 통치 때 시작되었다. 황제는 주후 70년, 예루살렘 성전 파괴 후 유대인들이 예루살렘으로 보내고 있는 헌금을 자신에게 바치라고 강요한 적이 있다. 엄격한 법률을 만들고 반항하는 유대인들을 처벌했다. 유대교적 풍습과 비슷한 형태를 가진 기독인들도 동일하게 박해했다.
절대 권력자는 자신의 권좌를 지켜야 한다는 강박관념에 시달린다. 정신적 불안에 시달린 도미티아누스는 권좌를 강화하고 거대한 로마제국을 일사불란하게 통치하는 수단을 모색했다. 주후 92년에 황제로 즉위하면서 예수 신앙 공동체에 대한 탄압을 강화하며 모든 시민들이 황제 자신을 ‘주, 하나님’(Dominus et Deus)으로 숭배하라고 지시했다. 황제 우상화가 시작되었다.
로마 시민들은 도미티아누스 황제의 조상(彫像) 앞에서 향을 피우고 “가이사는 주님이시다(Caesar Kurios)” 하고 외쳐야 했다. 다신론 문화 사회에서 황제숭배 강요는 대수롭지 않은 일이지만, 예수 신앙인들에게는 심각한 사안이었다. 가이사를 정치 지도자로, 한 사람의 인간으로 존경함은 마땅하다.
그러나 ‘주’라고 고백하거나 신으로 여겨 제사를 지내거나 예배하거나 절대 충성 맹세의 대상으로 삼는 것은 예수 신앙에 상충된다. 주는 오직 한 분, 구원자 예수뿐이다. 기독인들은 황제도 그분에게 머리를 숙여야 할 때가 오리라 믿었다. 기독인들은 황제의 상에 절을 하지 않았다. 제사를 바치는 공동체 활동을 거부했다. 국가의 경축 행사 때마다 우상숭배 의식에 참여하지 않았다. 로마제국 군대 복무를 기피했다.
황제와 로마제국의 관점에서 보면 기독인들의 불순종 행위는 로마 사회의 화합을 위협하는 정치적 반역이고, 종교적 이단 집단의 항거이고, 제국 시민의 의무를 저버리는 짓이었다. 기독인들은 세상사보다 영적이고 영원한 운명에 깊은 관심을 가졌다. 형제애로 뭉쳐 자주 모임을 가졌다. 그러자 온갖 가증스런 헛소문이 나돌았다. 예배와 애찬 모임과 관련하여 그들이 근친애자들이며 식인(食人) 인간들이라는 소문이 퍼졌다.
자주 발생하는 재난들을 로마의 신들이 진노로 내린 징벌이며 비, 홍수, 가뭄, 기근, 전념병이 ‘무신론자들’, 곧 예수 신앙인들 탓이라는 헛소문이 퍼져나갔다. 우상숭배 활동에서 수익을 올리던 사제들과 마술사들은 정치인들과 상인들과 결탁하여 군중을 선동하고 기독인들을 험담했다. 자기들의 사업에 손해를 끼친 새 종교를 비난하고 공격하도록 획책했다.
범신론 사상에 젖어 있던 로마인들은, 황제를 신으로 믿지 않고 우상에 절하지 않는 기독인들을 ‘무신론자’로 여겼다. 로마의 옛 신들의 원수로 여기고 혐오했다. 황제는 기독인들의 모임과 결속을 국가전복 음모를 꾀하는 짓이라고 의심했다. 이 시기 박해는 일부 지역에서 일어났다. 황제의 친척을 포함한 많은 기독인들이 순교했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