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2세기의 박해
: 저스틴, 이그나티우스, 폴리캅
예수 신앙인들에 대한 박해가 진행되는 동안, 개인적 원한을 악용하여 고발하는 자들도 많았다. 기독인에 대한 불공정한 대우를 참지 못하여 불만을 터뜨린 자들도 있었다.
철학자 플라비우스 유스티누스(저스틴)가 대표적인 예다. 저스틴과 황제 안토니누스 피우스는 철학 공부를 함께 한 학우(學友)다. 저스틴은 ‘학문을 사랑하는 사람’이라고 알려진 황태자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에게 로마제국 법정에서 기독인들이 겪는 부당한 처우를 대담하게 알리는 편지를 써 보냈다.
저스틴은 로마에서 있었던 한 억울한 경우를 예로 들었다. 남편의 지시로 술에 취한 상태에서 하인들과 여러 가지 형태의 성행위를 강요당한 여인이 기독교로 개종했다. 개종 후 부인은 남편의 부당한 요구를 거절했다. 그들은 이혼에 직면했다. 증오심에 가득 찬 남편은 아내를 고발했다. 재판관은 그녀에게 한 가지만 물었다. “기독인인가?” 그녀가 시인하자 즉각 사형을 선고했다.
법정에서 방청을 하던 한 남자가 재판관에게 도전했다. “이 재판이 무슨 소용이 있습니까? 왜 당신은 간통자도 아니고, 밀통자도 아니고, 도둑도 아니고, 강도도 아니며, 아무 범죄도 저지르지 않은 이 사람을 다만 기독인이라는 이유로 처벌합니까? 당신의 판결은 황제 안토니누스 피우스에게도, 철학자인 황제의 아들에게도, 신성한 원로원에도 어울리지 않습니다.”
그러자 재판관은 “자네 역시 기독인가?” 하고 물었다. “그렇다”고 대답하자 법관은 그에게도 즉시 사형을 선고했다. 저스틴은 개인의 원한이 빚어낸 고발과 그로 말미암은 죽음을 통분히 여겼다. 자신도 언젠가는 모함을 받아 처형되리라고 예상했다. 학문적 경쟁자들, 이교 철학자들, 견유학파(The Cynic) 철학자들이 그렇게 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예상은 적중했다. 로마에 학교를 세워 ‘진정한 철학’을 가르치던 저스틴은 어느 공개토론 마당에서 경쟁자들을 물리친 적이 있었다. 철학자들은 그를 고발(165년)했다. 그는 다른 여섯 명의 기독인들과 함께 채찍에 맞았고, 로마에서 참수되었다. 로마는 그리스도를 믿고 고백하는 신앙을 반국가적 비밀결사와 불법 종교로 단정하여 법으로 금했다.
로마제국 시민권을 가진 기독인들은 법에 따라 로마로 이송되었다. 시민권자는 즉각 처형되었고, 비시민권자는 원형 경기장에서 구경거리가 되어 오랫동안 고문을 받았다. 이 박해 기간에 안디옥의 노령 감독 이그나티우스가 순교했다. 칠십 세가 훨씬 넘은 나이에 로마 시민들의 오락거리로 이용되려고, 시리아에서 로마의 순교 형장으로 끌려갔다.
로마로 가는 도중에 에베소, 마그네시아, 트랄레, 로마, 필라델피아, 서머나에 있는 교회들과 서머나의 감독 폴리캅에게 보낸 일곱 개의 편지들을 남겼다. 이그나티우스의 비난을 받은 이단자나 그를 시기한 이교도가 관리에게 고발한 것으로 추정된다. 이그나티우스는 로마의 기독인들이 자신을 구출할 방도를 모색한다는 소식을 접했다. 자신이 목숨을 바쳐 예수 신앙의 진실성을 증거할 각오가 되어 있으므로, 순교를 방해하지 말라고 부탁하는 편지를 보냈다.
자기를 구출하려는 방안 모색은 “적합하지 않은 친절”이라고 했다. 인생의 목적은 그리스도의 고난을 본받으며 증인의 사명을 다하고 증거하는 것이다. 짐승들에게 물리고, 몸이 갈기갈기 찢겨지고, 뼈들이 조각나고, 사지가 토막 나고, 몸 전체가 부서지면 한 알의 밀알이 되어, 죽어서도 그리스도의 증인이 될 수 있다고 했다. 이그나티우스는 자신을 하나님의 사자(使者)라고 불렀다. 순교지로 끌려가면서, 서머나 교회의 주교 폴리캅에게 목사의 의무를 다하고 신앙을 굳게 지키라고 권면했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