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회도 가려느냐? (요 6:66-71)
김명도 교수
서론
복음서에는 공관복음과 제4복음서가 있는데 공관복음은 주님의 지상 사역에서의 생애와 가르침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요한복음은 예수님의 생애보다 예수님의 신성을 강조합니다.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에 계신 하나님의 아들을 부각시킵니다. 그래서 믿음이라는 말이 많이 나옵니다. 예수님이 기적을 행하시면 바리새인들이 비방하고 예수님이 진리를 설명하면 그들이 믿게 된다는 것이 요한복음의 내용의 구성입니다. 요한복음에는 비유가 없는 것이 특징입니다. 물론 요한은 사도요한이 기록했고 이 요한은 요일, 요이, 요삼, 그리고 요한계시록을 기록한 그 같은 요한입니다.
예수님 당시에 많은 사람들이 그를 따랐습니다. 요한복음 6장 8절 이하에 보면 오병이어로 5000명을 먹이니 사람들이 그를 왕으로 삼으려 하였습니다.
그러나, 주님은 26절에 보니, “너희가 나를 찾는것 은 표적을 본 까닭이 아니요 떡을 먹고 배부른 까닭이로다“ 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러나 주님은 모인 5000명의 육신의 배를 부르게 하기하여 오병이어의 기적을 행하신 분이 아닙니다. 오병이어의 의미가 참된 의미가 무엇인지 알려 줍니다. "육신의 양식을 위한 것이 아니요 생명을 얻게 하려 함이로다" 예수님의 기적 뒤에는 숨은 진리가 있습니다. 예수님의 비유의 뒤에 깊은 영적 의미가 숨어 있는 것과 같습니다. 이것을 놓치면 복음은 무의미하게 됩니다.
오늘 본문 요한복음 6:66-71에 말씀을 통해서 “너희도 가려느냐?” 란 제목으로 말씀 드립니다. 오늘 세 대지로 나누어서 하나씩 오늘 본문 말씀의 의미가 무엇인지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I. 그릇된 신앙
II. 바른 믿음
III. 주님을 따르는 길
I. 그릇된 신앙
사람들은 믿는다고 자부합니다. 여호와의 증인도 예수를 믿는다고 주장합니다. 몰몬교도 예수를 믿는다고 합니다. 심지어 이슬람교도들도 우리와 같은 하나님을 믿는다고 합니다. 여호와의 증인은 예수님은 인간이며 다른 사람보다 먼저 피조된 인간이라고 믿습니다. 예수님의 신성을 믿지 않습니다. 기원 4세기에 있었던 이단자 “아리우스”의 가르침을 본받고 있습니다. 몰몬교는 인간은 원래가 하나님으로 있다가 인간이 되었다고 하고 죽으면 다시 하나님이 된다고 가르칩니다. 이슬람교는 예수를 믿는다고 하지만 예수를 그들이 믿는 모하메드와 대등한 한 선지자에 불과하며 “알라 신” 을 믿는다고 합니다. 뉴에이지 운동을 하는 사람들도 “예수를 믿는다” 라고 말하지만 그들의 믿는 것은 그들이 spirit guide 즉 촉매의 도움으로 하나님과 하나가 된다고 믿으며 하나가 될 때 우리가 예수가 된다고 믿습니다. 모두 믿는다고 하지만 잘못된 신앙들입니다. 그러기에 “믿는다”란 말을 잘 새겨 들어야 합니다. 모두가 같은 신앙이 아닙니다.
신앙에는 네 가지 종류가 있습니다.
역사적 신앙, 임시적 신앙, 기적적 신앙 그리고 구원에 이르는 신앙 등입니다..
1. “역사적 신앙”이란 성경을 지식으로 믿는 신앙입니다. 머리로 믿고 심령의 변화도 없이 마음으로는 믿지 않는 신앙입니다. 기독교의 진리는 머리로만 알뿐 자신은 그렇게 믿지 않습니다. 자유주의 신학자가 대부분 그렇게 믿습니다. 이런 사람에게 구원이 없다는 것은 자명합니다.
Harvard 대학의 Harvey Cox, Philadelphia 의 Temple 대학의 Paul van Buren 목사, 독일의 Friedrich Bonhoeffer, Rudolf Bultmann 등이 그렇게 믿습니다. 요즘에는 긍정의 힘이라는 책, Your Best Now 라는 책을 써서 수십만권 팔려나간 Joel Osteen 이 신앙을 잘못 오도합니다. Osteen 이 그 책에서 무엇을 가르치는가요? 심리학을 통해서 인간의 의식구조를 고치려는 것입니다. 뉴에이지 사상에 물든 사람입니다.. 심리학이 마치 성경의 가르침인양 사람들을 오도합니다. 그 외에 Rick Warren, Robert Schuller, Richard Foster 등 이 모두 그런 사람들입니다. 오늘 목사들은 대개 심리학이나 아니면 상업성 경영학적으로 교회를 운영하는 일이 보편화 되어 버렸습니다. 슬픈 일입니다. 이것이 잘못된 신앙입니다.
2. 두 번째로 “임시 신앙”이 있습니다. 교회에 출석하는 목적이 자신의 오락을 위해서 출석하다가 환난과 핍박이 있거나 집안에 우환이 생기면 교회 출석을 쉽게 포기하는 사람들입니다. 요한일서 2:19 에 보면 “저희들이 우리에게서 나간 것은 원래 우리에게 속하지 아니함이며 우리에게 속하였더라면 떠나지 아니했으리라” 라고 분명이 이들은 하나님의 택함 받은 백성이 아님을 웅변으로 말합니다. 이런 임시 신앙을 가진 분들을 많이 봅니다. 이런 신앙은 구원으로 인도되지 못합니다. 이런 영생이 없습니다. 이런 사람들은 예수를 하나의 사치스런 악세사리로 믿는 사람들입니다. 중생한 사람은 중도에 신앙을 포기하지 않습니다. 신앙을 포기하는 사람은 중생하지 못한 증거입니다.
3. 기적적 신앙이 있습니다. “기적적 신앙”이란 무엇을 보고 믿는 신앙입니다.. 본문의 말씀은 사람들이 예수님이 오병이어의 기적을 행하니 그 기적의 의미를 모르고 기적으로 나타난 피상적인 결과에만 관심이 있어서 예수를 따릅니다. 예수님을 따르면 배가 부르고 무엇이든 자기의 욕망을 채울 수 있다고 생각하고 따릅니다. 육적인 그리스도인들입니다. 심지어 이 사람들은 예수님을 왕으로 삼으려했습니다. 사도행전 8장에 나오는 시몬 마구스 같은 사람이지요. 사도들이 희한한 기적을 행하고 병을 고치니 돈 주고 그런 은사를 사겠다고 말하던 사람입니다.
이런 사람들은 본문 요한복음 6장에서 오병이어의 기적을 보고, 그것이 무엇을 말하는지 모릅니다. 영적 의미를 모릅니다. 예수님이나 사도들이 행한 모든 기적이나 성경에 나오는 모든 기적들은 우리가 그것을 모방하라고 준 것이 아니고 그 이적 뒤에 숨은 하나님의 구원의 역사를 알게 하려는 것이 목적입니다. 모든 기적이나 주님의 모든 비유의 뒤에는 진리의 교훈이 숨어 있습니다. 그 교훈을 모른 채로 기적만 바라본다면 그것은 복음의 멧세지를 알지 못하는 사람들입니다. “썩어질 육의 양식”이 아니라 “생명을 주는 영의 양식”을 위해 일하라고 주님은 가르치십니다.
오병이어의 기적 뒤에는 영적인 의미, 구원의 의미, 구속사적 의미가 있습니다. 주님이 말씀하시기를 26절에 보니 “너희가 나를 찾는 것은 표적을 본 까닭이 아니요 떡을 먹고 배부른 까닭이로다” 라고 했습니다. 기적만 보고 믿으려는 사람들이 옛날이나 지금이나 교회에 너무 많습니다. 성숙하지 못한 믿음입니다.
4. 구원에 이르는 믿음이 있습니다
믿음에는 “구원에 이르는 믿음” 이 있습니다. 속사람이 변화되는 신앙입니다. 생명의 떡을 먹는 사람만 주님의 생명이 있습니다. “썩어질 양식”을 위해서 일하는 것은 무익합니다.
신약성경 골로새 3:1에는 “위의 것을 바라보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요한복음 6장 27절에 “영생하도록 하는 양식을 위해서 일하라” 고 주님이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주님은 바로 그 양식을 주려오신 생명의 떡입니다. 이렇게 28절에 말하니 그들의 질문이 “우리가 어떻게 해야 하나님의 일을 하오리까?” 예수님이 말씀 하시되, “하나님이 보내신 자를 믿는 것이 하나님의 일이니라”라고 대답하셨습니다. “나는 생명의 떡” 이라고 하니 34절에 "주여 이 떡을 우리에게도 주어서 먹게 하소서“ 라고 말하는 군중들은 떡이라는 말에만 관심이 있을 뿐, ”생명의 떡“ 이란 말의 의미를 몰랐습니다. 또 알았다고해도 그런 것에는 관심이 없었습니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