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사적 관점에서 본 정암 박윤선의 설교
이상규 교수(고신대학교 역사신학)
서론
정암 박윤선(朴允善, 1905-1988)은 한국교회가 낳은 가장 우수한 개혁주의 신학자라는 점에 의의가 없을 것이다. 그는 신학자이자 설교가였고 성경주석가였다. 그는 성경신학자이자 조직신학자였고, 또 변증신학자였다. 그는 신학의 전 분야를 교수하고 그 가르침을 실천하는 선한 모범을 보여 왔다.
박윤선 박사는 한국교회에 엄청난 영향을 끼쳤지만 특히 한국교회 강단과 설교에 결정적인 영향을 끼쳤다. 그의 성경해석은 그의 주석의 근간을 이루었고, 그의 주석은 설교자들의 안내서였다. 그 주석 속에는 1천편이 넘는 설교가 포함되어 있었다. 그래서 그의 주석은 한국교회 강단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
이런 사상적 혹은 정신적 영향을 정량적 수치로 확인하거나 제시하지는 못하지만 어떤 점에서 그의 영향력은 박형룡의 영향보다 앞섰을 것이다. 박형룡 박사의 교의신학은 그 난해성 때문에 독자들의 사상이나 삶에 착근하기 어려워 ‘상징성’은 지니고 있었으나 실제 한국인 목회자들의 신학과 목회, 설교에 착근하기 어려웠다. 그러나 박윤선의 경우 그의 주석은 광범위하게 읽혀졌고, 목회적 현실에 쉽게 용해되고 착근되어 ‘선언적’ 의미 그 이상의 현실성을 지니고 있었다. 그래서 박윤선은 한국교회와 목회자들, 그리고 그
들의 설교에 실제적인 영향을 끼쳤다.
1. 박윤선의 삶과 신학적 여정
1) 학문의 길
박윤선은 화란 개혁주의 신학자들의 글을 섭렵하고 한국교회에 소개한 최초의 학자라고 할 수 있다. 그가 화란학자들의 글을 접한 것은 화란 유학 시절이 아니라 1935년 웨스트민스터신학교 유학시절이었다. 그는 이때 화란의 개혁주의 신학에 심취하여 독학으로 화란어를 해독할 수 있게 되었고, 바빙크의「교회교의학」(Gereformeerde Dogmatiek)을 접했는데, 그는 이 책을 가장 애독했다고 한다. 박윤선이 보수주의 신학자 박형룡(朴亨龍, 1897-1979)과 다른 한 가지는 박형룡은 미국의 구 프린스톤신학(Old Princeton Theology)을 한국장로교회의 전통으로 확립하고 이를 보수하려는 입장이었으나, 박윤선은 화란에서 발전된 개혁주의 신학도 적극적으로 수용하였다는 점이다.
즉 그는 구 프린스톤 신학에서 웨스트민스터신학교로 이어지는 미국 장로교 전통의 개혁주의 신학과, 특히 19세기 화란에서 발전된 개혁주의 신학, 이 두 흐름을 적절히 종합하였고, 이를 한국교회 현장에 이식하고 개화케 하였다는 점이다. 박형룡은 정통주의, 보수주의 혹은 근본주의라는 용어를 선호이고 이를 혼용하였으나, 박윤선은 개혁주의 혹은 개혁파라는 용어를 선호하고 이를 빈번히 사용하였다.
2) 구 프리스톤신학과 화란 개혁주의신학의 수용
박윤선은 일생동안 개혁주의 신학의 확립을 위해 일관된 생애를 살았는데, 한국교회를 위한 그의 중요한 봉사는 성경주석 집필이었다. 그의 주석 집필은 1938년부터 시작되었는데, 이때로부터 40년 간의 노고 끝에 1979년 신구약 66권의 주석을 완간했다. 그의 첫 주석은 1949년 3월에 출판된「요한계시록」주석이었고, 마지막 주석은 1979년에 출판된「에스라. 느헤미야. 에스더주석」이었다. 그의 주석은 분량으로 보면 구약은 총 7,347쪽, 신약은 총 4,255쪽에 달해 신구약 주석은 총 11,602족에 달하며 매년 약 240쪽의 주석을 집필한 샘이다.
주석 외에도「영생의 원천」(1970),「응답되는 기도」(1974),「주님을 따르자」(1975) 등의 설교집과,「성경신학」(1971),「헌법주석」(1983), 유고집「웨스트민스터신앙고백서」(1989) 등을 남겼다. 단행본 외에도 고신대학이 발간했던 ▩파숫군▩에 218편, 총신대학의 ▩신학지남▩에 40편, 합동신학교의 [신학정론]에 12편의 논문을 발표하였다.
그는 개혁주의 신학을 구체화하였을 뿐 만 아니라 개혁주의 신학 위에서 신정통주의나 자유주의 신학을 비판하고, 성경의 절대적 권위, 하나님의 주권, 그리고 하나님의 영광을 추구한 진정한 개혁신학자였다. 그는 한편으로는 개혁주의가 아닌 신학을 비판했고, 다른 한 편으로는 개혁주의 신학을 천착하려고 힘썼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