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1930년대 이후의 설교
1930년대를 거쳐가면서 한국교회에는 신학적 변화가 일고 있었다. 그 변화를 3가지로 말할 수 있는데, 첫째는 자유주의 신학의 대두였다. 자유주의 신학이 보다 분명한 형태로 나타나는 것은 1930년대이지만 이미 1920년대 후반부터 이 신학은 태동되고 있었다. 소위 자유주의 신학에 근거한 설교가 함경도 지방을 중심으로 나타나기 시작하였다.
두 번째로는 신비주의 혹은 신령주의(神靈主義)의 대두였다. 이 운동은 주로 원산에서 일어났는데, 비신학적 주관적 성경해석, 예언과 방언, 신림(神臨)을 강조하였는데 대표적인 인물이 황국주, 백남주, 이용도 등이었다.
셋째는 무교회주의의 대두이다. 무교회가 일본의 교회에 큰 영향을 주었듯이 한국교회에도 적지 않게 영향을 주었다. 무교회주의는 경남 일우(특히 김해지방)에서는 신진리파(新眞理派)란 이름으로 나타났다. 1960년대까지만 해도 우찌무라 간조의 책이 없는 목회자들이 거의 없었을 정도로 그의 책은 한국인 목회자들 사이에 폭넓게 읽혀졌다.
이상과같은 한국교회의 신학적 변화와 함께 1930년대를거쳐가면서 한국교회의 설교가 그 내용 면에서 다양해지기 시작했다. 그 이전 시대의 설교는 복음적인 성격이 강했고 그 내용이 단순했으나, 이제는 주관주의적인 신비적, 탈교의적 설교들이 나타나기 시작하였다.
4) 해방 후 1950년대의설교
1945년 해방 이후 한국교회에서는 교회재건, 회개, 자숙이 강조되었다. 해방과 함께 교회재건운동이 전개되었는데, 이것은 노회나 총회 등 일제 하에서 해산된 기구적 재건이 아니라 영적 쇄신이었다. 영적 쇄신이란 바로 회개와 자숙운동이었다. 따라서 이 시기 설교는 교회재건과 회개, 자숙을 강조하는 경향이 짙었다.
특히 이런 경향은 1952년 총노회의 조직으로 출범한 고신교회는 더욱 그러했다. 고신교단은 일제하에서의 신사참배 죄에 대하여 철저한 회개를 강조하였는데 그것은 해방된 조국에서의 새로운 교회건설의 기초라고 보았다. 특히 한상동을 비롯한 출옥성도들의 설교 속에는 하나님의 역사 심판에 대한 의식이 설교와 생활, 그 기저에 확연히 나타나 있다. 따라서 그들의 설교는 하나님에 대한 신뢰와 소망, 신전의식, 거룩한 생활을 강조하였다. 한상동목사의 설교집 제목, “신앙세계와 천국”, “고난과 승리”는 하나님의 경륜에 대한 신뢰와 소망, 그리고 역사통치와 심판에 대한 그의 생애적 확신을 대변해 주는 것이었다.
1950년대는 박윤선의 주석이 출판되기 시작한 시기로서 박윤선의 주석은 한국교회 강단에 영향을 주기 시작한다. 동시에 주석에 포함된 설교의 구성과 전개방식, 3대지 중심의 설교 구성은 한국교회 설교자들에게 뚜렷이 나타나게 된다. 이런 점은 박윤선의 영향이라고 할 수 있다. 이 점을 보여주는 것이 이 시기에 대두된 본문설교였다. 비록 제목 설교라고 할지라도, 본문의 의미를 천착하고자 노력하였고, 예화나 사적 경험보다는 성경을 인용하고 성경의 교훈을 제시하려고 힘썼다. 이것은 박윤선의 영향임이 분명하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