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I. 잘못된 교리들
기독교의 복음은 오늘까지 전해 오면서 여러 가지 수난을 당했습니다. 모두 성경을 성경대로 믿지 아니하고 사람의 생각대로 믿었기 때문입니다. 초대교회에서도 Marcion 이나 Montanus 나 Sabellius Arius 같은 사람들이 잘못된 신학을 전하다가 파문을 당하기도 했지만 오늘도 잘못된 교리를 전하는 목사들은 과거 그 어느때보다 더 늘어났습니다. 저의 교회에 나오다가 사정이 있어서 인근에 있는 다른 교회에 한번 출석한 성도님은 이단적인 설교에 아연실색했습니다. 교회는 많고 모두 진리의 복음을 전한다고 하지만 들을 귀가 있는 자, 즉 성경을 아는 사람이 들을 때는 교리의 오류가 많다는 것입니다.
18세기에는 프랑스 혁명과 함께 Rene Descartes 의 계몽주의가 휩쓸던 이성주의 시대였습니다. 독일에서는 종교사학파들이 등장하여 기독교의 독특한 신학을 원지 종교와 같은 차원에서 연구하기 시작하였고 그런 사상은 미국으로 침입해 들어와서 20세기 초에 미국에 자유주의 신학이 등장하여 자유주의를 막으려는 근본주의와의 사이에 큰 신학 싸움이 일어났습니다. 그래서 1910년에는 근본주의 교리 즉 Fundamentals 라는 10권짜리 책이 나와서 자유주의 신학을 막기위해 피나는 노력을 했고 자유주의에 물든 목사 장로 신학생들을 보호하기 위하여 <근본주의 5대 교리> 도 총회에서 결정하여 “성경의 무오성,” ”예수님의 동정녀탄생”, ”주님의 대속의 죽음”, ”주님의 기적의 역사성”, ”주님의 육적부활” 등을 반드시 믿도록 결정했습니다. 그럼에도 자유주의자들은 1924년 뉴욕의 오번 신학교에 모여서 이른바
오번 선언 (Auburn Affirmation) 을 만들었는데 1,274명의 목사들이 성명했습니다. 지극히 슬픈 일입니다. 이때 Princeton에서 가르치던 Machen 박사가 이들을 막고 교인들을 계몽하기 위하여 쓴 책이 그 해에 나온 Christianity and Liberalism 이라는 책인데 우리말로도
"기독교와 자유주의“ 라는 이름으로 번역되어 팔리고 있는 책입니다.
19세기에 들어오면서 이단의 천국이 되었습니다. 모든 이단은 대개 이때에 우후죽순처럼 나타났습니다. 1830년대 모로몬교, 1840년대 안식교, 1860년대의 여호와의 증인, 1870년대의 Christian Science, 1880년대의 뉴에이지 운동이 시초인 신지학회 등이 그때 일어났고, 여호와의 증인의 교주인 Charles Taze Russell 은 당시 주의 재림 날자를 1883년 10월21일로 예언한 William Miller 에게 심취되어 그의 영향으로 <성겅 연구 모임> 을 시작하여 후에 이혼까지 하며 여호와의 증인이란 교파를 만들었습니다. 물론 이혼은 그가 원한 것이 아니고 그의 부인이 원해서 가정이 파탄된 것이지만 그의 전도열은 대단한 것이었습니다. Pittsburgh에서 Allegheny 까지 주일마다 자전거를 타고 다니면서 “내일은 주일이니 교회에 나가지 않으면 지옥에 갑니다” 라는 내용의 전도문을 집집마다 돌아다니며 붙였다고 합니다.
우리가 경계하는 세대주의 신학도 John Nelson Darby 라는 사람이 기성교회에 대항ㅎ여 1830년대에 태동했고 1880년대에 Plymouth Brethren 교파를 만들면서 본격적인 전도활동에 들어가 미국에도 전파되어 Louis Sperry Chafer 는 Dallas 신학교를 만들었고 1906년 신학교 문턱에도 가 본적이 없는 Charles Ingerson Scofield 는 "Scofield Reference Bible" 이라는 성경을 만들었고 자유주의가 등장하던 시절 이 성경은 대단한 인기를 누려 모든 신학교가 이 성경을 채택했고 이 성경으로 공부한 미국 북 장로교 목사들이 한국에 들어와서 전관서 지방에서 도하니 한국의 신학교는 모두 종말론연구에 몰두하는 세대주의 풍조에 말려들어갔습니다. 1907년 평양에서 일어난 대부흥 운동 때도 길선주 목사는 늘 요한계시록을 주로 강해했습니다.
흔히 미국의 신학운동을 다섯 가지로 분류합니다. 청교도들이 1620년에 건너와서 신앙의 부흥 운동을 이르켰는데 이런 청교도의 신아 운동을 다른 신학자들은 개각성운동에 포함하지 않고 1730년대부터 1760년까지 Massachusetts 주에서 시작된 Jonathan Edwards 와 New Jersey 주 Raritan 의 Jacob Frelinghuysen 목사가 중심이 되어 시작한 신앙운동을 제1차 대각성운동이라고 합니다.
이 여파로 William Tennent 의 Log College (통나무 대학, Pennsylvania 주 Philadelphia에서 New York 으로 가는 길에 있는 Neshaminy 에 소재) 를 만들어 목사를 양성하다가 규모가 커져서 Princeton University 의 전신인 College of New Jersey 를 1746년에 만들에 되었고 이 신앙운동으로 인하여 미국의 독립전쟁의 원동력을 얻게 되었습니다. 이때에 일어난 Jonathan Edwards 의 신앙운동, 흔히 말하는 “제1차 각성운동”은 칼빈주의적 부흥운동이었습니다. 그런데 이런 운동이 나중에 Connecticut 의 Yale 대학을 중심으로 하는 목사들의 오해로 Unitarianism 으로 변한 것은 크게 슬퍼할 일입니다. 오늘 Harvard 대학에 가보면 중앙도서관 꼭대기에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라라‘ 라는 글귀가 선명하지만 그것은 1636년 John Harvard 가 Cambridge 대학을 졸업하고 재산을 모두 정리하여 미국에서 목사를 양성하기 위하여 자기 이름을 따서 그 대학교를 세울 때의 일이고 지금은 그 일대가 모두 혼합주의 신학 또는 Unitarian 교회들이 즐비합니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