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베일에 가려져 있는 포스터와 레노바레의 정체성
1) 포스터의 레노바레
리차드 포스터는 1978년에 출판된 『영적 훈련과 성장』으로 미국의 복음주의 진영에서 큰 명성을 얻게 되었다. 그 후로 그는 전보다 훨씬 바쁜 강의와 목회 일정 속에 살아야 했다. 그러나 1986년 가을, 그는 모든 사역을 중단하고 자신만의 시간을 갖기 위하여 결단하였다. 긴급하고 중요한 일로 빼앗겼던 자신만의 시간을 되찾기 위하여 모든 공적인 일에서 손을 놓은 것이다. 그는 이후로 조용한 시간을 보내면서 성도들의 영적 성장과 교회의 갱신을 도울 수 있는 세계적인 기독교 운동을 새롭게 구상하게 되었다. 그 결과 1988년 11월에 그를 대표로 하는 레노바레가 공식적으로 출범하게 되었다.
그 당시 포스터는 앞서 언급한 Celebration of Discipline 외에도, 그가 1985년에 저술한 『돈, 섹스, 권력』으로 미국 전역에 널리 알려진 인물이 되었다. 이 책은 기독교의 울타리를 넘어 불신자와 타 종교인들도 즐겨 찾는 도서가 되었다. 그 후로 사람들은 그를 이 시대가 귀를 기울여야 하는 선지자와 같은 목소리를 지닌 인물로 추앙하게 되었다. 이런 상황에서 포스터가 레노바레를 소개하자, 그의 책을 통하여 그와 친숙했던 수많은 사람들이 이를 크게 환영하며 관심을 갖게 되었다.
한국에서도 이런 현상이 유사하게 재현되었다. 기독교 서적을 자주 접하는 대부분의 독자들은 포스터가 저술한 서적을 통하여 그의 이름을 잘 알고 있었다. 위에 언급한 『영적 훈련과 성장』, 『돈, 섹스, 권력』이 넓은 독자층을 확보하였음은 물론, 그가 1992년에 저술한 『기도』가 17만권이나 팔리며 그는 한국교회에 큰 영향력을 행사하는 작가의 반열에 오르게 되었다. 이렇게 이미 구축된 그의 명성이 ‘포스터의 레노바레’가 한국에 쉽게 상륙하는 데 일조하였다. 그러나 이런 과정에서 생겨난 중대한 문제가 있었다. 한국교회가 포스터라는 인물이나 레노바레의 정체성에 대하여 정확히 파악하기도 전에 ‘포스터의 레노바레’로 수용된 것이다. 그러나 영성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던 때에, ‘이 시대의 영성을 주도하는 포스터의 레노바레’는 참 좋은 소식으로 여겨지는 분위기였다.
2) 레노바레와 내적 성장
영적 성장과 교회의 근본적인 갱신의 필요성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초대 교회의 시기부터 각 시대별로 교회가 처해있던 상황 속에서 고민하여 온 주제이다. 그러나 레노바레는 그 출현 초기부터 외적 성장이 아닌 내적 갱신을 강조하였다. 그 당시 미국 교회와 한국 교회가 처한 역사적 배경을 살펴보면 그 이유를 쉽게 알 수 있다. 1955년에 『하나님의 다리』라는 책을 출판한 도날드 맥가브란(Donald McGavran)은, 1965년에 미국의 풀러신학교에 세계선교대학(School of World Mission)을 설립하였다. 이 일은 전 세계의 교회가 ‘교회성장학’에 관심을 갖게 되는 계기를 마련해 주었다. 특히 전 세계의 현대복음주의자들은 어떤 방법을 동원해서라도 불신자를 교회로 끌어와야 한다는 새로운 목표를 세우며 교회의 외적 성장을 위하여 최선을 다했다. 심지어 그들은 불신자들에게 맞추기 위하여 교리적 순수성을 희생하는 것도 불사하였다. 예배의 스타일도 전통적인 모습을 버리고 현대인의 구미에 맞도록 새롭게 바꾸었다. 강단에서는 가급적이면 죄와 회개에 대한 부담을 주지 않는 값싼 복음을 외치게 되었다.
그 결과 1970년대에부터 대형 교회들이 속속 등장하기 시작하였다. 이때부터 교회에 속한 교인들의 숫자가 목회자의 능력을 판가름하는 척도가 되었다. 숫자가 성공의 기준이 되기 시작하면서 자연스레 교인의 숫자를 늘리는 데 전력을 다하게 되었다. 이런 상황 속에서 조심스럽게 예견되었던 문제점이 드러나게 되었다. 성도들이 영적으로 갈증을 느끼기 시작한 것이다. 교회의 외적 성장은 성도들의 내적 필요를 충족시켜 주지 못했다. 그 결과 성도들이 영적 성숙에 대한 관심을 잃어갔다. 교회출석이 곧 신앙의 전부라는 생각이 보편화되었다. 이렇게 교회성장은 상대적으로 영적 빈곤을 가져다 주게 된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포스터의 레노바레는 외적 성장을 비판하고 나섰다. 그 대신 하나님과의 깊은 관계를 회복함으로써 내면의 세계를 갱신해야 한다고 외치기 시작하였다. 미국의 레노바레 홈페이지에 ‘레노바레가 무엇인가?’라는 질문과 이에 대한 답변이 간략하게 나와 있다. “레노바레는 콜로라도주(州) 잉글우드에 본부를 두고 전 세계에서 활동하고 있는 비영리 기독교 단체이다. 우리는 기독교인들 그리고 하나님과 깊은 관계를 원하는 자들에게 좀 더 계획적인 삶과 영적 형성을 제공하고, 장려하고, 설계하고, 옹호하는 일을 탐구한다.” 영적으로 굶주리고 목말라 하던 자들은 포스터의 말에 귀를 기울이기 시작하였다.
급성장을 해오던 한국교회는 80년대 말부터 마이너스 성장을 보이기 시작하면서 서서히 침체기에 빠져들기 시작하였다. 그러자 교회 안에는 새롭게 변화되어야 한다는 자성의 소리가 높아졌다. 그러나 그 염려는 중단된 교회의 성장을 지속시키는 방법을 모색하려는 의도에서 나온 것이었을 뿐, 성도들이 영적으로 채워지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에 대해 반성한 것은 아니었다. 2005년, 레노바레가 한국에서 공식적으로 활동을 시작하였을 때의 한국교회는 많이 지쳐 있었으며 영적으로 굶주려 있었다.
부흥회와 철야기도 등 ‘열정적인 신앙훈련’에 익숙해져 있는 한국교회에 ‘영적 형성’이 소개되자, 이것을 ‘조용한 신앙훈련’ 내지는 ‘고상한 신앙훈련’으로 받아들이는 분위기가 조성되었다. 그 당시 사회 전반에 걸쳐 인간의 내면의 세계에 대한 관심이 유행으로 번지고 있던 상황에서, 내적 성숙을 강조하는 레노바레는 이 시대에 걸맞는 훌륭한 새로운 영성 운동으로 받아들여졌다. 특히 포스터의 서적들을 통해서 그의 사상을 접하고 있었던 지식층의 기독교인들은 레노바레가 성장주의 등의 외부 지향적인 병폐들을 치유하고, 진정으로 성숙한 성도와 교회로 세우는 방법이 될 것이라는 주장에 쉽게 동조할 수 있었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