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포퓰리즘 뒤에 숨겨진 정체성
지금까지 우리는 레노바레의 대중성과 관련된 세 가지 사실을 언급하였다. 레노바레는 이 운동의 창시자인 포스터의 개인적 명성에 힘입어 별다른 저항을 받지 않고 보다 쉽게 수용될 수 있었으며, 교회의 외적 성장과 상반되는 내적 변화에 대한 갈증을 느끼던 상황에서 소개가 되었으며, 또한 에큐메니칼 정신에 입각하여 교단과 신학을 초월한 운동으로 그 성격을 굳혔다는 것이다. 이로써 우리는 레노바레를 둘러싼 신학적 논쟁이 그치지 않는 근본적인 원인을 알게 되었다. 그것은 리차드 포스터라는 인물의 포퓰리즘 뒤에 레노바레의 정체성이 숨겨져 있다는 것이다.
이런 현상은 미국교회보다 한국교회에서 더욱 심각하다. 실상 레노바레가 한국에 소개된 지 수 년이 지난 오늘에도 그 정체성은 아직도 베일 속에 가려져 있다. 현재까지도 한국 레노바레는 한국교회의 성도들에게 이 운동이 신비주의이며 가톨릭 영성에 근거한 것이라고 밝혀주지 않는다. 심지어 그들의 공식적 입장을 대변하는 웹사이트( )에서도 이렇다 할 언급이 없다. 그러나 미국의 레노바레의 홈페이지( )는 자신들의 기본적인 입장을 밝히고 있다. 이곳에서 한국 레노바레 홈페이지에서 찾아볼 수 없는 중요한 정보를 얻을 수 있는데, 이 운동은 바로 “영적 형성(Spiritual Formation)”을 통하여 하나님과 깊은 관계를 맺는 것을 그 목적으로 한다는 것이다.
우리는 모두 영적인 존재들이다. 우리는 육체적으로 통일체를 지녔지만, 우리의 삶은 대부분 우리의 보이지 않는 부분에 의하여 이끌려 간다. 우리 안에 있는 영적 중심은 우리에게 세상과 우리 자신을 보는 방법을 구체화하고, 우리가 내리는 결정을 지도하고, 또한 우리의 행동을 인도하게 한다. 우리의 영은 우리가 누구인지의 가장 중요한 부분이다. 그러나 우리는 우리의 내적 생명을 발전하는 데 거의 시간을 쓰지 않는다. 이것이 바로 “영적 형성”에 관한 것이다.
“영적 형성”은 하나의 과정이며, 동시에 그것은 일종의 여행인데 이를 통하여 우리는 하나님과 깊은 관계를 맺기 우리의 마음을 활짝 연다. 우리는 우리의 영적 생활의 방관자가 아니며, 변함없이 우리와 관계를 하시려고 우리를 초대하시는 하나님과 함께 적극적으로 참여한다. 예수께서는 ‘내가 온 것은 그들에게 생명을 주고 풍성히 얻게 하려는 것이다“(요 10:10)라고 말씀하셨다. 우리는 레노바레에서 그러한 풍성한 삶이 지금 당장 가능하다는 것을 믿는데, 그 이유는 예수께서 그 길을 우리에게 보이셨기 때문이다. 우리가 예수의 삶을 받아드림으로서 - 그와 같아지고 - 우리는 매일 매일 확실히 새로워지는 생활과 믿음의 풍족함을 경험하게 된다(골3:10).
위의 내용을 자세히 보면 이 운동은 ‘내재하는 영적 중심’, ‘내적 생명의 발전’, ‘내면의 여행’, ‘하나님과 함께 참여’ 등 지금까지 전통적인 교회에서 가르치지 않았던 매우 신비한 방법들을 기본 개념들로 삼고 있다. 레노바레는 매우 생소한 방법과 목적을 가지고 내적 성장을 통하여 교회의 개혁을 이룬다는 당찬 비전에 입각한 프로그램을 가지고 한국교회 성도와 교회를 찾아온 것이다. 홍보 차원에서 지금까지 레노바레는 한국교회의 대표적인 인물과 그러한 위치에 있는 자들을 이 운동에 참여시킴으로써 매우 훌륭한 마케팅을 해왔다. 그러나 포퓰리즘 뒤에 그것의 정체성을 숨겨둠으로써 미성숙한 한국교회의 목회자와 성도들을 혼동 속에 빠뜨리게 한다면, 이는 포스터가 주장한 성도의 성숙과 교회의 갱신의 목적에 스스로 역행하는 일이다.
(계속)